(동양일보) 비서 성폭행 혐의를 받아온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조병구 부장판사)는 지난 14일 “간음과 추행 상황에서 업무상 위력의 행사가 없었다”며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사건의 가장 큰 쟁점이었던 업무상 위력의 존재를 재판부가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유력 정치인인 안 전 지사가 수행비서의 취약성을 이용해 저지른 중대범죄라며 검찰이 징역 4년을 구형한 점을 감안하면 다소 뜻밖의 판결이다. 더욱이 미투와 관련해 나온 첫 번째 주요 판결에서 무죄 선고가 내려지면서 앞으로의 미투 운동에 적지 않은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재판 과정에서 검찰은 사건의 본질을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여겨지던 안 전 지사가 헌신적으로 일한 수행비서의 취약성을 이용한 중대 범죄”로 규정했다. 피해자 진술에 나선 전 충남도 정무비서 김지은씨도 “피고인의 행위는 권력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한 성폭행이었다”면서 “피해자는 저 혼자만이 아니다. 숨죽이고 말 못하는 여러 명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전반적인 사정을 고려할 때 안 전 지사가 어떤 위력을 행사했다거나 하는 정황이나 구체적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김씨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법원이 그동안 피해자가 성인인 경우 업무상 위력 여부를 다소 엄격하게 해석해 온 것과 같은 맥락이다.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 성폭력의 핵심 문제는 힘의 차이와 기울어진 권력구조에 의한 폭력으로 지적됐다. 때문에 피해자에게 더 엄격한 입증 책임을 지운 이번 판결이 미투 운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가해자 처벌이 어렵고 되레 피해자가 인격살해와 다름없는 불이익을 받는다면 미투 운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미투는 한국 사회의 숨겨진 억압과 착취, 위선과 폐습을 폭로하는 변혁 운동이다. 무엇보다 이번 판결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 중인 미투 운동의 폄하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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