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 아메리카 출신 가난한 학생들을 불러들여 6년 동안 먹이고 입히고 용돈까지 줘가며 공부시켜고국에서 의사로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산타클라라 의과대학. 의사와 학생과 환자가 어우러진 합창은 몹쓸 벙조차 너끈하게 물리칠 듯하다.

(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가난해서 의료 혜택 못 받는 라틴 아메리카 학생을 뽑아 의사로 키운 뒤 돌려보내는 산타클라라 캠퍼스 학예제 열린다는 소식이 들렸다. 의과대학 축제와 브리가다 캠프 기간을 겹치도록 조정해서 대원들을 병원으로 불러들인 모양이다. 인솔자 얘길 듣고서 캠프에서 지낼 때랑 딴판으로 다들 말끔하게 차려 입었다. 하지만 산에서 막 내려 온 듯 수염을 기르고 도포 차림에 지팡이까지 든 남자도 보였다. 그와 늘 함께 다니는 빡빡머리 남자도 민소매 두루마기를 입고 가슴엔 말콤 X 얼굴이 새겨진 배지를 달아 웃음을 자아냈다. 범상치 않은 차림새가 궁금해서 물었더니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무슬림이라고 대답했고, 오바마와 라울 카스트로가 손을 맞잡은 뒤 오래 막혀 있던 미국 항로가 열린 걸 기회로 캠프에 참가했다고 한다.

인솔자를 따라 시동 건 채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자리 잡았다. 호기심 탓에 절절 끓는 폭염이 카리브해를 달구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습식 사우나에 들어선 듯 숨이 턱 막히는 쿠바의 5월, 불화살 맞은 듯 정수리가 따가웠다. 허름한 가운 걸친 남자가 다가와 인솔자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누군가 싶어 물었더니 의과대학 총장이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그를 뒤따라 둘러 본 병원은 회색빛 세월의 더께가 유리 깨진 아날로그 저울에 묵직하게 내려 앉아 있었다.

총장과 대원 간에 병원 운영에 관한 질문과 대답이 이어지는 동안 더러 들은 적 있는 의학 용어가 섞여 친밀감이 느껴졌다. 뒤이어 들어선 소아과 병동. 복도는 칭얼거리는 아기 안은 어린 엄마들이 메우고, 병실에는 휴대용 오락기를 쥔 아이가 침대에 기댄 채 삐융삐융 소리에 몰입하고 있었다. 애들 있는 곳이라면 빠지지 않는 거지만 엄마가 아이 고통 덜어주려고 사 준 듯해서 측은함이 더해졌다. 복도를 지나치는 동안 허리까지 오는 가운 걸친 학생들과 마주쳤다. 가난한 나라 학생들을 데려와 공부시키고 먹이고 재우고 용돈까지 줘 가며 6년 동안 키워내긴 하지만 생필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인지 활기 없는 얼굴이 푸석해 보였다. 그들과 돌아가며 사진을 찍고 난 대원들은 힘내서 무사히 학업 마치라고 어깨를 토닥거렸다.

총장의 병원 소개가 끝나고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아담한 정원에 흩어진 3백 명 대원들은 야자나무 그늘 따라 줄지어 차려 둔 바자회 행사를 둘러봤다. 라틴 아메리카 여러 나라 먹거리며 수공예품이 좌판 위에 펼쳐진 걸 살펴보고 차려놓은 음식도 맛봤다. 떠나온 고향을 그리며 손 맞춰 그걸 만드는 동안 부모 형제 생각에 울컥했을 순간을 상상해 봤다. 여러 나라 중에서도 쿠바와 정서적으로 유독 가까운 베네수엘라 학생이 많았다. 그래서일까. 완장에 베네수엘라 국기가 그려진 여학생은 유난히 돋보였다. 수실로 수놓아진 찻잔, 꽂힌 금속 빨대로 차를 마시는 모습은 시가 피워 문 체 게바라를 연상시켰다.

저만치서 인솔자가 나타나 대원들을 손짓해서 불러 모으고, 공연이 곧 열릴 거라고 손가락으로 강당을 가리켰다. 바자회 열었던 학생들이 좌판을 하나 둘 걷었고, 오백 개 넘는 객석이 갖춰진 강당은 몰려 든 학생들과 대원들이 뒤섞여 빼곡해졌다. 베네수엘라 완장 찬 여학생 뒤에 자리 잡은 나는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봤다. 여학생들이 주로 마시는 건 다이어트에 좋다는 마테차다. 먹을 것도 부족한 곳에서 굳이 다이어트를 할 필요가 있는지, 그녀는 옆에 앉은 여학생에게 방금 입에 물고 있던 금속 빨대를 넘겨줬다. 그걸 본 나는 교육을 제대로 받은 의학도가 맞나 의아해 하다가 레즈비언일지도 모른다며 생각을 접었다. 뜰을 가득 메웠던 학생들이 몰려든 강당은 좌석이 턱없이 모자랐다. 뒤편에는 공연이 시작되길 서서 기다리는 학생들도 숱했다.

붉은 커튼에다 쿠바 국기가 장식의 전부인 무대, 총장 인사는 반갑다, 고맙다로 끝났다. 기악 합주에 이어 피아노 연주를 곁들인 독창과 중창이 잇따르던 무대는 누군지 분간하기 어려운 사람들로 메워졌다. 청바지 차림인 그들은 대 여섯 살부터 서른 살 남짓까지 고루 섞였다. 일렬횡대로 늘어선 그들에게 대 여섯 개의 마이크가 나눠졌다. 피아노 반주에 이어 율동을 곁들인 노래가 터져 나온 순간 객석에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환자와 의학 공부하는 학생과 그들을 치료하거나 가르치는 의사로 꾸려진 게 틀림없다. 리더가 된 단원이 앞으로 나서서 악보 세 마디쯤을 열창하면 나머지가 코러스를 넣고, 마이크는 리더 자격을 얻은 또 다른 단원에게 넘겨지길 되풀이했다. 환자와 학생과 의사가 꾸린 삼위일체의 합창이라면 약으로 치유되지 않는 병마저 씻은 듯 물리칠 수 있을 게 틀림없었다. 병이 낫고 나서라도 환자는 병원을 떠나지 않으려 뻗댈 게 뻔하고, 의사는 정이 든 환자를 놔 주기 안타까워 막 의사가 된 학생들을 딸려서 내 보낼 것 같았다. 일본에서 창의적 사회복지 정책인 양 의사의 방문 진료를 활성화한다지만 그건 쿠바 의료 제도를 본 뜬 것뿐이다. 그보다 환자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시스템을 먼저 본받아야 하는 게 아닐까. 그들 합창을 지켜보며 다른 나라가 쿠바 국민건강증진법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눈 부릅뜨고 살피는 까닭을 비로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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