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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서 신라 관도 유적 발굴
옥천서 신라 관도 유적 발굴
  • 임재업
  • 승인 2018.08.16 2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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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도 문화재연구원 발굴단
옥천군 옥천읍 서대리 옥천의료기기 2단지 건설현장 문화재 발굴단이 신라시대 관도로 추정되는 도로 유적 현장. 동물이 수레를 끈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 하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동양일보 임재업 기자) 충북도문화재연구원(원장 장준식)이 작년 6월부터 올해 8월까지 조사하고 있는 옥천 제2의료기기 산업단지(충북 옥천군 옥천읍 서대리 431번지 일원) 부지 내 유적에서 7세기 신라 고대 도로가 확인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번에 확인된 도로는 남동-북서 방향으로 진행하며 산 정상부근 사면과 계곡부를 이어지면서 노면을 조성한 것으로, 약 320m가 넘게 확인됐다. 노면의 폭은 약 5.6m에 달하고 도로의 표면에는 수레바퀴 자국과 수레를 끌었던 짐승의 발자국도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이 도로는 1886년경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목적으로 작성한 지형도에도 ‘소로(小路)’로 표시돼 있다.

도로 발굴 과정에서 7세기 신라토기·기와부터 조선 전기에 해당하는 백자 등이 출토되었다. 이 도로는 신라에서 조선 전기까지는 교통과 군사상 도로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도로 외에도 신석기 시대 주거지, 청동기 시대 주거지·구덩이(수혈)유구, 삼국 시대 주거지, 고려 이후의 토광묘, 조선 시대 주거지·구덩이·도랑유구 등이 발견되었으며, 고려 시대 청자조각, 조선 시대 백자 조각과 청동 숟가락 등도 발견됐다.

'삼국사기'신라본기에 의하면 옥천 관산성은 554년 신라가 백제 성왕이 이끄는 3만의 군사를 궤멸시킨 곳이다. 이후 백제와 신라가 이 지역에서 치열하게 싸웠고, 660년 백제 통합 전쟁 시에도 신라의 진군로에 위치한 군사거점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도로에 대한 발굴조사 성과를 고려할 때, 이 도로는 늦어도 7세기 이후 신라가 백제를 공격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성된 관도(官道)로 추정되며, 더 나아가 '삼국사기'신라본기 671년 기록에 등장하는 보은·옥천 방면에서 대전·유성을 거쳐 공주(웅진)에 이르는 신라의 중요 군량 운송로인 웅진도(熊津道)의 일부로 추정할 수 있다.

신라의 관도가 발굴조사를 통해서 확인된 예는 대부분 서라벌(현재의 경주)과 그 인근지역에서 발견되었으며 서라벌과 지방을 연결하던 관도가 확인된 사례는 거의 없었다. 이번에 확인된 고대 도로는 왕경이 아닌 지방에서 신라의 관도가 확인된 최초의 예로서 주목된다.

또한, 신라와 백제의 각축지인 옥천지역에서 조사된 고대 도로를 통해 신라 왕경과 지방을 연결하는 관도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신라의 도로문화 전모에 다가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충북도문화재연구원은 오는 20~ 21일 오전 10시~오후 3시 사이에 현장 설명한다. 임재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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