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논설위원 청주대명예교수

박종호/ 논설위원 청주대명예교수

남북의 이산가족 172명이 8월 20~26일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만난다. 상봉 행사는 전례에 따라 두 차례로 나눠 진행되게 된다. 8월 20일부터 22일까지 사흘간은 남측 상봉단 89명이 북측의 가족들을 만나고, 이어 나흘간은 북측 상봉단 83명이 남측 가족들을 찾는 식이다. 이번의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1985년 10월, 남측 35명, 북측 30명의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의 역사적인 첫 만남’ 이후 2015년까지 972명이 20차례에 걸쳐 이루어졌고 그로부터 2년 10개월 만이다. 1950년 북에 의해 통한의 6⦁25 사변이 발발한 후 68년, 1953년 휴전 협정 이후 65년의 긴 세월이 지나는 동안 1천만의 이산가족은 5만 6890여명으로 줄어들었고 이 중 63.2%에 해당하는 3만 5960명은 산수(傘壽)의 나이인 80세를 넘은 고령이다. 그러니까 상봉이 성사된 가족은 569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셈이다. 그래서 로또 당첨만큼의 행운을 얻은 것이라는 씁쓸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은 경상남도에 살고 계시는 김금녀(82세) 노인의 “헤어진 세 언니를 못 만날까 봐 피가 마른다”는 말에서처럼 더없이 절박한데도 이렇듯 무성의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더구나 이번 만남은 2018년 4월 27일, 세계가 주시하는 가운데 판문점에서의 역사적인 남북 정상 간의 만남 뒤에 해빙무드를 타고 이루어지는 행사라는 점에서 크게 기대하였는데 그 내용을 보면 기대와 달리 규모나 폭이 너무 작고 인색하다는 판단을 지울 수 없다. 비록 이념과 사상을 달리하는 사람들끼리라지만 남북은 울타리를 접하고 사는 동족인데 실제로는 태평양보다 멀고 먼 거리가 되었고, 아무리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금단(禁斷)의 땅이 되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남북이산가족 상봉은 더 이상 미루거나 핑계를 대어 지연시켜서는 아니 된다. 생명을 주고받은 부모와 자식 간이고 같은 기(동기:同氣)를 타고난 형제와 자매들인데 누구 때문에, 무슨 이유로 만나지 못한단 말인가. 이는 천륜을 무시하는 일이고 사람으로서의 도리인 인도(人道)를 배척하는 일이다. 한마디로 인권몰살 행위다. 인간은 누구나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 이를 천부인권이라 한다. 사회적 정상질서 안에서 자기의 의사대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고 이것은 세상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이다. 천리(天理)인 것이다. 천하 만고의 진리이고 하늘의 지엄한 명령인 것이다. 세계 어느 누구나 국가도 이에 역행할 수 없는 절대가치인 것이다. 그렇기에 어떠한 경우도 이 가치에 대치되는 행동이 용납되어서는 아니 된다. 지구촌의 모든 인류, 사회 및 국가들은 모두 이에 순종하여야 한다. 그 누구도 어떤 사회나 국가도 이를 거역하여서는 아니 된다. 그런데도 북은 반세기가 넘도록 이에 제한적으로 응하고 있고 선심을 쓰듯, 반대급부를 조건으로 걸며, 상품화하고 있다. 천륜을, 인권을 기분 나는 대로 재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인권과 세계 펑화를 목적으로 조직된 국제연합(UN)도 미온적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인권의 방치 및 방관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인권을 유린하고 있는 나라의 만행에 가슴 졸이며 신음하고 있는 선량한 인류들에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북측의 이와 같은 인권유린 행태가 잔존하고 있다는 것은 지구촌 모든 국가나 인류의 불행이다. 세계는 이러한 불행이 더 이상 계속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인권을 부정하고 외면하는 비정상 행위를, ‘나의 일’이 아니라 하여 외면하지 말고 적극 관여,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정상사회로 복원시켜야 한다. 최소한 천륜으로 맺어진 가족끼리는 자신들의 의사대로 얼마든지 상봉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피를 나눈 천륜끼리 마음대로 만날 수 없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북은 이 점을 깊이 성찰하고 인권보호와 평화구축에 앞장서야 한다. 말로만 종전 및 평화 구축을 외치지 말고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이산가족끼리의 상봉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음을 실천으로 보여야 한다.

그렇다. 이산의 상봉은 따지거나 계산을 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글자 그대로 인도주의의 대상이다. 이제는 머뭇거리거나 조건에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 오로지 인간의 자리에서 인도만 생각하여야 한다. 단 한 사람에게도 같은 핏줄끼리 만날 수 없는 한을 갖게 하지 말아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행위를 취하는 것은 동족에 대하여 죄를 짓는 일로 북은 이 죄의 굴레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이산의 상봉은 절체절명(絶體絶命)의 과제이다. 생존해 있는 동안에 만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하루빨리 569대 1의 비율이 0 대 0이 되게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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