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하여튼 골칫거리다. 그놈이 또 무례하고 망측한 일을 저질렀다. 요즘 같은 사나운 무더위에 몸을 식히고자 아녀자들이 뒷산구렁 도랑에 모여 등목을 하는데 이걸 몰래 본 것이다. 보았으면 저 혼자나 알고 있든지 이걸 온 동네에 퍼뜨리고 다닌다. ‘얼라리꼴라리 아무개엄마는 잔등이에 개떡만한 점이 있대요. 얼라리꼴라리 아무개엄마는 뒷목덜미아래 조그마한 혹이 있구요, 얼라리꼴라리 아무개엄마는 젖꼭지가 너무 커서 탁구공만 해요….’ 이렇게 떠들고 다니니 여간 민망스런 게 아니다. 그래도 이름이나 택호를 대지 않고 ‘아무개엄마’라고만 하니 당사자나 내외끼리가 아니면 또는 현장의 또래아낙들이 아니면 누가 누군지를 모르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 자식 그거 고등학생이니 알건 다 알고 철들만도 한데 참….” “먼저 번엔 그래두 제 친구들의 거기에 털나구 안 나구를 떠벌려댔지만 그때도 그 애들의 이름을 안 밝혀서 그냥 유야무야 넘어갔잖여.” “하여튼 그러한 망측한 걸 까발리는 일이 한두 번여 그래, 그놈은 그게 재민가벼.” “안 되겠어 이참에 단단히 버릇을 고쳐놔야지. 여게 이장, 동판사 어른하고 한 번 상의를 해봐 어떡했으믄 좋은가를.”

‘동판사 어른’이란, 노인회장이 동네에서 가장 학식이 높을 뿐만 아니라 동네사람들의 옳고 그름을 잘 따져 판가름해 주는 판사 같은 어른이라고 해서 붙여진 별호다. 해서 이장이 동네대표의 임무를 띠고 동판사 어른을 찾아갔다. “어르신, 이번에 또 그놈이 떠벌리고 다니는 일 아시지유?” “그 발쇠꾼 말인가?” “발쇠꾼요?” “남이 알지 못하는 걸 알아내서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는 사람을 말하는 게야.” “예, 바로 그 발쇠꾼이 한 짓 말이예유. 당사자들이 알면 오장이 뒤집힐 일 아니겄어유. 한두 번이 아니니 이번엔 단단히 좀 혼내줘야겠어유 어떠셔유?” “글쎄, 근데 그놈 원래 오죽잖은 놈 아닌가?” “그렇지유, 밤비에 자란 놈 같이 좀 어리석고 덜 된 놈이지유. 그렇기는 해두 그 하는 짓거리를 보믄 소견은 멀쩡한 놈 같잖어유.” “그려 그래서 하는 말인데, 하는 짓이 변변찮은 업숭이 같이 보여도 자네 말따나 딴에는 제가 하는 일이 그리 나쁜 짓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녀석여. 그러니께 뭣이냐. 오이를 거꾸로 먹어도 제멋이라고 여기는 거재.” “오이를 거꾸로 먹어도 제 멋요?” “남의 눈에 벗어나는 이상한 짓이라도 제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상관할 것이 못 된다는 생각이제.” “그래도 남의 눈이 있고 생각도 있잖어유. 저 혼자만 생각해유?” “오죽하면 ‘오입쟁이 헌 갓 쓰고 똥 누기는 예사’ 라는 말이 있을까?” “건 또 뭔 소리여유?” “되지 못한 자의 못된 짓거리야 놀랄 바가 아니라는 말이제” “그러니께 어르신 말씀의 본 뜻은 뭣입니까유. 도대체 헷갈리네유.” “잘 새겨듣게나.”

이래서 결론을 못 보고 이장은 다시 동리 남정네들의 모임을 가졌다. 자리가 몹시 시끄럽다. “아니 기껏 그놈 짓거리 해결하려고 이장 자넬 보냈더니, ‘발쇠꾼’ 이라는 말하구 그런 놈이라는 걸 인제 알았느냐 소리만 듣고 왔단 말여?” “잘 새겨들으라니 그냥 올 수밖에. 그래서 그 말뜻을 여럿이서 새겨보려고 다시 모였지!” “새겨보구 자시구 할 것두 없어 직접 그 발쇠꾼 아버지를 만나서 다시는 그런 짓 못하도룩 다짐을 받는 수밖에 없네. 다들 일어나게 들!”

이래서 발쇠꾼 아버질 만났다. “자네 아들이니께 자네가 다그쳐서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못하도록 해주게 오죽해야 자넬 동네사람들이 찾아왔겠나.” “알지 알아, 그 동안 우리 내우도 동네사람 볼 면목이 없어 그 놈을 얼매나 닦달했는지 모르네. 그래도 막무가내야. 그러니 하나밖에 없는 아들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어 이제 내뻔져 두고 있는 걸세. 내 아들이래도 내는 인제 안 되겠으니 동판사 어른을 찾아가보게 그 어르신이 판결해 주시는 대로 무조건 따르겠네.” 하여 다시 동판사 어른을 뵙도록 했다. “어르신, 확실한 판결을 내려주십시오. 그 녀석을 어떡하면 좋겠습니까요?” “허어, 오죽한 도깨비 낮에 날까!” “예?” “하는 짓이 늘 무례 망측하지만 오죽 못났으면 그러겠는가. 그러니 그냥 내버려 두자는 말일세.” “아니 한두 번이 아닌 그 녀석을 그냥 내버려두자구요. 오죽하믄 동네 남정네들이 이렇게 몰려오지 않았습니까요.” “여보게들, 여기 온 사람 누구 할 것 없이 내가 다 어릴 적부터 보아 왔네. 자네들 그 녀석 만했을 적엔 다들 망나니들이라고 했어. 그런데 지금은 다들 의젓하지 않은가. ‘오지자웅(烏之雌雄)’ 이라는 말이 있네. 까마귀는 암수의 구별이 어렵다는 뜻으루 선악과 시비를 가리기가 어렵다는 말일세. 그러니 그 발쇠꾼도 더 크고 철들면 달라지겠지 두고 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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