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용 전 금강유역환경청장

이경용 전 금강유역환경청장

 ‘호모 사피엔스(Homo Samience)’의 어원은 라틴어로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뜻이다. 생물학에서 호모(Homo) 속(屬)에 속하는 생물 중 현존하는 인류를 가리키는 말이다. 인류 진화과정에서 최종단계를 의미하며 현대인의 직계 조상이다. 스스로에게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이름을 붙인 호모 사피엔스는 정말로 지혜로운 존재였을까? 이스라엘의 젊은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가 쓴 『사피엔스』는 이 질문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를 정복하는 과정은 엄청난 인종 학살과 동·식물 생태계의 파괴과정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도 유사한 생태계 파괴가 진행 중이며, 그 마지막 끝은 호모 사피엔스 자신의 파멸일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첫 번째 파괴는 기원전 1만년 이전 수렵 채집인 시절에 자행되었다. 인간 종은 250만년 전 동부 아프리카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진화했고, 각기 다른 장소로 퍼져나가 환경에 적응하며 다양한 인종으로 진화하였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네안데르탈인), 호모 에렉투스, 호모 솔로엔시스, 호모 데니스바 등이 그들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사촌인 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모두 멸종했다. 7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동아프리카를 떠나 아리비안 반도를 거쳐 유럽과 아시아, 아메리카로 뻗어나간 시기와 일치한다. 유발 하라리는 인종청소가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또한 메머드, 대형사자 등 대형 포유류의 멸종시기와 호모 사피엔스의 대륙간 이동시기를 비교하며, 이들 대형 포유류의 멸종도 호모 사피엔스의 짓이라는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두 번째 파괴는 기원전 1만년 이후 수렵 채집인으로 떠돌며 살던 생활을 청산하고 한 곳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자행된다. 농업혁명이 그것이다. 이 때부터 호모 사피엔스는 삶의 거의 모든 시간을 몇몇 동물과 식물을 조작하는 데 바친다. 그 결과 밀, 쌀, 수수, 감자, 사탕수수 등 20여종의 식물을 작물화 하는데 성공하였고, 이들을 경작할 농경지를 확보하기 위해 산림을 끝없이 개간하고 있다. 지금도 해마다 산림 120만 ㎢가 농경지로 개간되고 있다. 동물의 가축화는 또 어떤가? 호모 사피엔스가 동물성 단백질 확보를 위해 가축화한 소, 돼지, 양, 닭 등의 개체 수는 다른 동물 종을 압도한다. 가축화된 소, 돼지가 각각 10억 마리에 달하지만, 야생에서 자라는 코끼리, 침펜지, 기린 등은 겨우 20만에서 8만 마리에 불과하다. 가축화 및 작물화 된 한 줌도 안 되는 동․식물이 야생의 타 생물종을 압도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는 생물종의 다양성 측면에서 지구 생태계에 치명적이다. 인구 70억에 달하는 호모 사피엔스 자신이 가장 압도적 과 우점종인지도 모르겠다.



세 번째 파괴는 산업화와 함께 현재 진행 중이다.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증기기관이라는 새로운 동력을 개발하며 시작된 산업화는 최근 인공지능, 나노, 바이오 기술 등 새로운 과학기술과 결합하며 ‘제4차 산업혁명’으로 발전하고 있다. 산업화는 우리들의 일하는 방식이나 소비 행태를 포함한 생활방식 전반에 거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고, 그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풍유의 시대를 이끌고 있다. 그러나 막대한 대가도 치루고 있다. 각종 오염물질과 유해 폐기물을 처리하는데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고, 매일 매일 쏟아지는 새로운 화학물질은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생물종 감소는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지구온도가 상승하는 기후변화는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문제는 그 파괴의 속도와 강도를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만약 그 속도와 강도가 지구 생태계의 자정능력을 초과할 때 종국에는 파국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우리 스스로를 ‘지혜로운 인간’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할까? 우리 선조들은 약육강식의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또는 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지구 생태계를 구성하는 각종 동․식물들을 이웃으로 생각하지 않은 우리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최선의 노력은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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