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석 충북의사회장

안치석 충북의사회장

대한민국에는 의료전달체계가 없다. 환자 마음대로만 있을 뿐이다.

올해 초부터 선택진료비 폐지, 상복부 초음파 건강보험 적용, 상급병실 급여화를 포함한 ‘문재인 케어’가 시작되었다. 소위 ‘병원비 걱정 없는 든든한 나라’를 표방한 정부의 보장성 강화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서울의 빅5 병원을 포함한 상급종합병원으로 환자가 몰려가고 있다. 1차의료를 담당하는 개원가는 유례없는 폭염과 휴가철이 겹쳐 환자 그림자도 보이질 않는다. 9월부터 뇌 MRI가 급여화 되면 대형병원으로 환자 쏠림과 의원의 공동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병원 쇼핑으로 악화된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정부와 의료계가 머리를 맞대고 오래전부터 뒤틀린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수차례의 회의와 격론 끝에 작년말 수도권 환자 쏠림을 막고 병의원 종별기능을 재정립하기 위한 초안이 나왔다. 하지만 의료전달체계 개선 권고안은 의협과 병협의 입원실 존치 여부를 두고 이견이 있었고, 의협회장 선거와 맞물려 집행부와 비상대책위의 갈등으로 결국 채택되지 못한 채 폐기되었다.

내과계와 외과계, 개원의와 병원, 중소병원과 요양병원, 의협과 병협, 정부와 시민단체 모두 고성만 지르고 있다. 의사 직역별 이해관계는 감정의 선을 넘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문재인 케어의 부작용이 생각보다는 빨리 나타났다. 서부개척시대 골드러쉬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서울로 큰 병원으로 환자가 몰려간다. 같은 값이면 싸고 시설 좋은 대형병원을 원한다. 내과계와 외과계 개원의는 물론 정부도 당황했다. 1차의료의 몰락이 눈에 보이고 문재인 케어의 재정고갈과 좌초가 걱정이다.

권고안이 무산된지 6개월 만에 의협은 의료전달체계 개선 재추진 TF를 구성했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는 완전히 무너진다. TF는 의료계 내부 의견을 모으려 한다”며 재개 배경을 밝혔다. 일각에서 “밥상을 걷어차 놓고 이제와 무슨 소리냐”며 비난의 목소리가 당연히 나온다. 떠난 마음을 잡기가 어렵다. ”각 과간 갈등을 봉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설령 내부 합의가 되더라도 시민사회, 정부가 동의할지는 미지수”라며 부정적인 말이 난무한다. 환자는 차이가 없으니 이왕이면 마음대로 골라 가길 원한다. 지금대로 라면 상급종합병원으로의 환자 쏠림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지방 중소병원도 암울하다. 내 돈 내고 차린 1차 개원의는 환자고갈에 죽을 맛을 곧 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1·2·3차 의료전달체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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