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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 고령화를 축복으로
풍향계 / 고령화를 축복으로
  • 유영선
  • 승인 2018.08.23 1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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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선 상임이사

(동양일보 유영선) ‘뭉치’는 이웃에 사는 동생네 반려견이다. 13년째 살고 있으니 사람의 수명으로 치자면 70이 된 고령견이다. 그래서인지 이 녀석은 예전처럼 행동도 빠르지 않고, 산책을 나가도 나무밑이나 풀잎 냄새만 맡지 걸으려 하지 않는다. 이 녀석 행동이 가장 달라진 것은 놀러 왔다가 밤이 늦으면 주인을 따라가려하지 않고 아무데서나 잠을 자려 한다는 점이다. 심장병이 생겨서 약을 먹여야 하고, 눈도 잘 안보이는지 주인을 찾을 땐 뚜릿거린다. 최근엔 제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어서 동물병원엘 데려 갔더니 귀가 잘 들리지 않는거란다.

사람에게 오는 노화현상이 개에게도 차례로 생기나 보다.

올해 91세가 되신 어머니도 ‘뭉치’처럼 순서대로 노화현상을 겪고 계신다. 혈압이 높아 매일 약을 드시고, 역류성 식도염으로 툭하면 어지럽다고 자리에 누우신다. 보청기를 낀 것은 이미 오래 전 일, 정기적으로 이비인후과를 다니지만 청력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60대 때만 해도 매일같이 학교운동장을 돌며 새벽 운동을 하셨었는데, 골다공증이 심해진 이젠 행여 혼자 외출하셨다가 도로의 턱에 걸려 넘어지면 어쩌나, 미끄러지진 않을까 걱정이 돼서 가족들이 외출을 말린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나이가 들면서 몸의 곳곳에 노화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가 고령화 사회로 바뀌면서, 노인을 쓸모없는 사람처럼 취급하는 사례들이 종종 보이는 것은 서글퍼진다. 노동력이 떨어지니 경제에서도 밀려나고 보는 것 듣는 것 행동이 느려지니 판단하는 데서도 제외시킨다. 그러다보니 가정이나 사회에서도 노인의 의견을 듣거나 결정을 기다리기보다는 노인의 의견을 배제시키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다.

그래서 요즘 노인들은 슬프다. 노인들이 젊은이들에게 말한다. “너는 늙어봤니? 나는 젊어봤다.”

옛날부터 모든 사람들이 오래 살고 싶어했다. 장수는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과 더불어 오복중 하나다. 5가지 복중에 장수, 건강, 평안하게 살다가 천명(天命)을 마치는 것 등 3가지가 생명과 관계가 있는 것을 보면 오래 잘 사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큰 소망이 아닐까.

동양일보는 올해 ‘동양포럼’의 주제를 ‘노년철학의 정립’으로 정하고 한일 국제회의를 열고 있다. 지난 8월초 개최한 첫 번째 국제회의에서는 ‘한국인과 일본인은 삶과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대해 토론을 했는데, ‘한국인의 생사관’과 ‘일본인의 사생관’이 약간의 차이를 보였지만 결과적으로는 같은 공감대를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삶과 죽음을 바라볼 때, 한국인은 삶을 중심으로 죽음을 생각하고(생사관), 일본인은 죽음에 무게를 두고 삶을 생각한다(새생관)는 점이 달랐지만, 공동체 안에서 삶과 죽음이 일체화되고, 죽음의 불안과 공포를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포럼의 주제를 노년철학으로 정한 것은 노인들이 점점 많아지는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노년생활을 더 인간답게, 더 자유롭게, 더 생태적으로 아름답게 살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해보자는 취지에서였다. 생로병사의 과정에서 누구나 노화과정을 겪는다. 이때 젊음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면서 사람들은 기가 죽고 의기소침해진다. 눈이 어둡고, 귀가 안들리고, 이가 빠지고, 잘 걷지 못하며 공동체로부터 소외되는 것을 느낄 때 죽음이 두려워진다.

그러나 어차피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는 것. 미리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살아있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 나이를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노인이 지닌 삶의 무게와 지혜의 깊이를 모른다.

비록 반려견 ‘뭉치’처럼, 내 어머니처럼 노화의 길에 서 있다해도 품위를 지닌 웰리빙(well-living)은 지속돼야 한다. 그럴 때 고령화는 축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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