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거리는 병아리 몰고 다니던 암탉을 잡아 숯불에 구운 닭꼬치. 수제 맥주 안주로는 으뜸이다. 머잖아 오토바이가 배달해 줄 치맥에 군침이 돈다.

(동양일보 ) 천연 유기농 음식 천국인 쿠바에도 배달용 오토바이가 나타났다. 메뉴라고 해야 피자나 파스타, 햄버거와 돼지고기, 닭고기를 밥에 버무린 게 전부다. 값싼 먹거리를 배달해 주고 따로 돈을 받지 않는다면 오토바이 유지비는 어떡하는지 궁금하다. 영수증엔 도냐 알리시아라고 적혔는데 언제 오픈했는지 물어보니 8년 넘었다고, 그건 처음 정한 가게 이름인데 조카 요엔드리스 오르따스 모레혼이 물려받아 망고 아바나로 바꿨다며 간판을 가리킨다.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목돈 들여 오토바이 다섯 대를 장만했고, 이제야 트렌드에 맞추게 되었다고 주인이 어깨를 으쓱한다. 전화로 주문해서 먹어본 사람 얘기로는 양도 많은 데다 맛 또한 여느 식당 못지않다는 평이 나돈다. 쿠바에서도 프랜차이즈 풍 오토바이 배달이 시작됐지만 바꿔 단 간판이랑 영수증이 다르다는 건 뜬금없다. 한국이라면 고급 레스토랑에 가야 먹을 수 있는 랍스터, 까사에서 전화로 주문해서 먹고 만 원을 지불하면 되니 여기 아니고선 누릴 수 없는 호사다.

신문 보도에 1976년 이후 42년 만에 사유재산을 인정하게끔 법을 바꾼다는 소식이 들린다. 공산당 총서기인 라울 카스트로와 새로 국가평의회 의장이 된 미구엘 디아스카넬이 합의한 개헌안은 국가평의회 의장에게 권력이 기우는 걸 방지하기 위해 총리직을 신설하고 대통령 임기를 제한해서 5년 중임제로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개인 재산을 시장에 내다 팔거나 외국인도 투자 한도 내에서 부동산을 사 들일 수 있게 한다는 것도 들어있다. 이번 개헌안은 7월 2일 출범한 국회 개헌위원회에서 안을 짜서 전국인민위원회인 국회 표결을 거쳤고 11월에 공청회를 거친 다음 국민투표에 붙여 확정지을 거라고 한다.

브리가다 캠프에는 일본-쿠바 교류협회 소속 회원이 매년 참가한다. 도미토리에서 지낼 때는 철저하게 개별 행동하던 그들은 모이라는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똘똘 뭉쳐 한 목소리를 낸다. 나라별 장기 자랑 시간에도 가장 체구 작은 도모짱이 나서서 국민체조를 선보이고 뒤에 선 사람은 그녀 행동을 따라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온 각양각색의 대원에겐 색종이를 바지 모양으로 접고 속에다 오 엔짜리 동전을 넣어 건네며 행운이 깃들라는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50년 넘게 쿠바와 교류하는 동안 얼굴 익힌 정부 요인과 접촉하다보면 막아놨던 문호가 언제 열릴지 먼저 알게 될 테고, 잽싸게 수집한 정보로 자본주의 불모지에 그들 거점을 마련할 것 같다. 관세가 800%나 되는 일제 오토바이가 도냐 알리시아 가게 앞을 버젓이 메우는 것만 봐도 미래가 점쳐진다. 60년 된 자동차나 오토바이의 대체 수요만 하더라도 엄청날 테니 그들에게도 쿠바는 블루 오션이 틀림없다. 코트라나 삼성을 앞세워 쿠바 시장이 열리기만 기다리는 우리는 일본 따라가기엔 버거울 것 같다. 쿠바 공산당과 오래 교류해 온 그들은 일본-쿠바 교류협회이며 소속 회원을 해마다 여기에 보낸다. 나리타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는 경우에는 더 많은 일본인을 만난다. 은퇴 후 여행 삼아 들른다는 그들이지만 투자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려는 눈빛이 은연 중 읽힌다.

스페인 영향을 받은 쿠바 식습관은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격식 갖춰 먹는데 길들여졌다. 샹들리에 불빛 드리운 원탁에 고급 테이블보가 깔린 식당, 밴드 연주가 이어지는 속에서 순서에 맞춰 날라져 오는 요리를 먹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게 스페인 음식 문화다. 그런 분위기라면 스페인에서 건너 온 요리 문화인 어린 돼지 바비큐, 레촌이 빠지지 않는다. 예전 농경사회 제사 의식에서 썼던 요리 레촌은 낳은 지 4~5개월 된 새끼 돼지를 재료로 삼는다. 내장을 뺀 뒤 꼬챙이에 끼워 24시간 동안 숯불 위에다 코코넛 기름이나 과즙을 발라가며 돌리면 겉은 바싹하고 살은 부드럽게 익는다. 바비큐 된 어린 돼지 속살을 포크로 긁어내면 닭 가슴살 비슷하게 떨어져 나온다. 입맛에 따라 준비해 둔 소스에 찍어 혀에 닿는 부드러운 식감을 느끼려면 눈을 지그시 감아야 한다. 어르신이나 귀한 손님에게는 껍질을 먼저 대접한다는데 파삭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어린 돼지를 도살해서 얹어둔 걸 보고 폰을 들이댄 순간, 요리사가 눈을 부라린 채 달려와 나무란다. 말 못하는 짐승이 인간 먹잇감으로 죽은 것도 애처로운데 사진까지 찍는 건 너무하지 않느냐는 거다. 그의 얘기에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선 뒤에도 한 동안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 배달 음식이 생겨난 쿠바지만 레촌은 워낙 귀한 요리여서 오토바이로 날라다 주진 않을 것 같다. 어린 돼지 요리 레촌은 변형을 거친 뒤 필리핀에도 전해져 꽤나 이름을 떨치고, 소스만 달라도 전혀 다른 요리로 바뀌는 게 식문화여서 거기서도 고급 요리의 대명사로 이름이 굳어졌다.

동 서양을 따지지 않고 요리는 진화를 거듭해 나간다. 돼지를 가장 많이 기르는 중국은 말 할 것도 없고, 애저찜 요리도 레촌 못지않을 만치 식감이 뛰어나다. 뱃속에서 꺼낸 새끼를 식재료로 쓴다는 것 땜에 미식가들이 꺼려선지 정읍 지역의 명물로만 알려져 있는 게 안타깝다. 무슬림을 뺀 여러 민족의 제사에 두루 쓰이는 돼지는 이래저래 인간을 위해 태어난 짐승인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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