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동양일보 김영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이변은 없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새로운 당 대표로 선출된 이해찬(66·세종) 의원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여론조사 초반부터 줄곧 우위를 점한 그는 송영길·김진표 후보를 여유있게 따돌리고 당권을 거머쥐었다.

그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배경엔 강력한 리더십을 통한 당의 안정적 운영을 바라는 당심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중심엔 이 대표의 캐릭터도 자리한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카리스마는 청와대에 끌려 다니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주기에 충분했다.

민주화에 몸 바친 그의 인생 여정을 보면 그가 왜 강성 이미지인가를 알게 해 준다.

충남 청양 출신인 이 대표는 1972년 유신 선포로 휴교령이 내려지자 고향 청양으로 내려갔다. 일본 유학을 갔다 오고서도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해방 후엔 청양면장을 지낸 아버지 이인용 씨로부터 “나라가 이 모양인데 학생들이 데모도 하지 않느냐”는 꾸중을 듣고 다시 상경, 학생운동에 뛰어든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돼 1년을 복역했고 1980년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2년 6개월동안 옥살이를 하다 크리스마스 특사로 석방됐다.

이후 재야 운동에 본격 투신한 이해찬은 군사독재정권의 요시찰 인물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했다, 입학 14년만인 1985년 8월 서울대(사회학과)를 졸업했고 1988년 서울 관악구에서 평민당 후보로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내리 5선을 지냈다.

김대중 정부 시절 교육부장관에 오른 그는 교원정년을 65세에서 62세로 파격적으로 단축해 지금도 퇴직교원을 비롯한 교원들 사이에선 원성을 들을 정도다. 노무현 정부때 국무총리에 임명된 그는 ‘실세 총리’라는 평에 걸맞게 할 말은 한 국무총리로 불렸다. 정두언 전 국회의원은 ‘최고의 총리, 최악의 총리’라는 책에서 “역대 총리 가운데 ‘밥값’을 제대로 한 사람은 이회창, 이해찬 정도다. 대부분 법에 정해진 권한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의전총리, 대독총리에 그쳤다”고 비꼰 적이 있다.

그만큼 이 대표는 뚝심있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그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구미에서 29일 첫 현장 최고위원회를 여는 것만 봐도 통합과 협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그러면서 ‘20년 집권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어 국민들에게 평가를 받고 재신임을 받겠다고 선언,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런데 그의 여당 대표 등장에 좋아만 할 수 없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세종에서 두차례 국회의원에 당선돼 여당 최다선(7선)인 그는 KTX세종역 신설을 20대 총선 공약으로 걸었다. 그의 밀어붙이는 성격에 여당 대표라는 막강한 ‘힘’까지 보태졌으니 오송역이 있는 충북으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공주역과 서대전역이 소재한 충남과 대전 역시 마음 편할 리 없다. 세종역이 들어서면 불과 20~30㎞ 안에 KTX역이 빽빽이 세워져 ‘고속철이 아닌 저속철’로 전락, KTX의 가치를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 뻔하다.

일각에선 지난해 4월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시행한 ‘세종역 신설 타당성 조사연구용역’ 결과 비용 대비 편익률(B/C)이 0.59로 나오면서 이미 물 건너 간 게 아니냐고 쉽게 생각한다. 0.59는 통상 사업추진을 가능케 하는 기준 ‘1’에 한참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사업추진 불가로 받아들일 태세다.

여기서 간과해선 안될 일이 있다. 이 대표는 2030년까지 세종이라는 80만 계획도시가 완성되면 KTX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그는 당 대표 선거기간 청주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충북의 반대여론을 의식한 듯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는 곧 추진의지를 ‘함구’로 대신했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20여년 전 필자는 국정을 펴는 정부 고위 관료가 총선에만 눈이 어두워 주말만 되면 청주에 내려와 지인들을 만나는 것을 수차례 목격하고 칼럼을 통해 “동네 일 그만보고 국정에 전념하라”고 일침을 놓은 적이 있다.

이해찬 대표에게 당부한다. 다음 총선 불출마도 선언했으니 KTX세종역 놓고 충청권 주민 분열시키지 말아 달라. 일각에선 불출마가 되레 역 신설 고집을 공고하게 하지나 않을까 우려하지만 30년 이상 정치무대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이해찬 표 통 큰 정치’를 보여줘라. ‘집권 20년 플랜’을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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