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선 충북의사회공보이사(유진선정형외과원장)

유진선 충북의사회공보이사(유진선정형외과원장)

(동양일보) 최근 모 한의원에서 봉침을 맞고 사망한 사건이 벌어졌다. 사인이 아직 규명되지는 않았으나 아나필락틱 쇼크사로 보인다. 해당 한의원에서 사용한 봉침의 시술과정이 자세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봉침투여 직후 환자는 아나필락틱 쇼크 반응을 보였고, 초기 응급저치에 실패해 안타깝게 사망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봉침은 쇼크를 비롯해 전신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어 매우 유의해야 할 약물이다. 그동안 일부의 한의사들은 정제되지 않은 봉침 약물을 통증치료의 명목으로 환자들에게 시술해왔으며, 크고 작은 부작용과 피해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 봉침 사망 사고를 계기로 한의계는 봉침시술의 실태에 대해 철저한 진상 조사에 나서야 하며 스스로 자정노력을 해야 한다.

하지만 한의계는 현대의학적인 응급 약물 치료를 못해서 봉침 사망 사고가 일어난 양 여론을 호도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전문 의학 응급키트를 적극 사용할 것을 선언하겠다고 발표했다. 봉침의 안전성과 위험성 문제는 덮어둔 채 책임회피를 위해 응급키트 사용문제를 들고 나와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 요지는 안전성, 유효성을 확보하지 못한 한방 봉침 시술에 대한 문제이지 전문의약품으로 이루어진 응급키트를 허용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정부는 이번 봉침 사망사고를 계기로 국민건강을 위협하고, 안전성과 효과성을 확인하지 않은 채 이뤄지고 있는 한방시술과 한약재에 대해 전면적인 조사와 철저한 검증에 나서야 한다. 자신만의 비법이란 미명하에 같은 업계 종사자들끼리도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여러 치료법과 한약은 물론 약침이란 이름으로 행하는 수많은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철저히 조사해야한다.

대한한의사협회에서 응급키트를 사용하게 해 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법 위반을 떠나 한의학 치료법에 대해 스스로 신뢰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앞에서는 국민건강을 내세우지만 결국 민·형사상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다.

안전성과 효과를 검증하지 않은 한의학계의 일탈행위를 근절해야만 황당한 사고로 인한 국민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단순히 응급키트의 에피네프린주사를 한의사 손에 쥐어준다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의료법에 따라 의사는 ‘의료’와 ‘보건지도’를, 한의사는 ‘한방의료’와 ‘한방 보건지도’를 하도록 구분하고 있다. 응급키트의 전문의약품과 의료적 처치는 ‘의료행위’이지 ‘한방 의료행위’가 아니다. 한의사들이 꼭 전문의약품 응급키트를 사용하고 싶다면 정식으로 의대를 나와서 의사국가고시에 합격하면 된다.

응급키트를 사용한다고 해서 과도한 전신 알러지 반응에 모두 대처할 수는 없다.

한의사들이 응급키트에 있는 에피네프린을 투여한다 하더라도 그 다음엔 무엇을 할 것인지 의문이다. 기관 삽관과 후속적인 여러 응급처치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 이쯤 되면 한의사인지 의사인지, 한방 의료인지 면허를 구분할 이유가 사라진다.

봉침 시술 자체의 위험성과 안전성 문제를 덮어둔 채 응급키트를 사용해야 한다는 한의계의 주장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신 부작용 가능성까지 있는 위험한 봉침 시술을 전면 중단해야 한다. 아울러 봉침 약물이 과연 안전한지, 효과는 있는지 과학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그게 올바른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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