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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숨겨진 이야기5. 괴산 쌍곡구곡
우리동네 숨겨진 이야기5. 괴산 쌍곡구곡
  • 변광섭
  • 승인 2018.08.30 1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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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경속에 더욱 빛나는 신화와 전설 길 위의 도파민, 삶의 여백 찾아 떠나는 길
피서객들이 괴산의 명물 올갱이를 잡고 있다.
피서객들이 괴산의 명물 올갱이를 잡고 있다.

 

(동양일보) 숲은 스스로 그러하다. 사람의 얄팍한 지식이나 인공의 잣대로 잴 수 없는 그들만의 언약이 있다. 나무들의 밑동이 물안개에 잠겨있는 새벽 숲은 비밀이 많다. 그 비밀은 가깝지만 멀리 있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스스로가 그 비밀을 말하지 않는데 물안개 사라지고 햇볕 든다고 알 리 없다.

마른 숲에 들어가면 제각각의 냄새를 토해낸다. 늙은 숲은 그 냄새가 깊고 젊은 숲은 가볍지만 선명하다. 계곡 깊이 들어갈수록, 숲이 우거질수록 음이온과 테르펜과 피톤치드가 가득하고 징징거린다. 음이온은 폭포나 계곡의 물가에서 분자가 격렬하게 운동할 때 생긴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스트레스를 없애주는 테르펜은 식물체의 조직속에 들어있는 정유 성분이다. 소나무나 잣나무처럼 바늘잎에 많이 들어있다. 피톤치드는 다른 미생물로부터 자기 몸을 방어하고자 발산하는 식물성 살균물질이다.

숲에 들어가면 이것들을 온 몸으로 마시고 뒤집어쓴다. 시리고 아픈 사람들, 괴로움에 뒤척이는 사람들에게 숲은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인가. 근본없는 사내는 다시 길을 나선다. 자연 속으로, 삶의 본질을 찾아,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앞에 서면 앙가슴 뛴다. 그래서 내 가슴에 ‘사랑’이라고 쓴다.

쌍곡계곡의 소금강 풍경은 구곡 중 으뜸이다.
쌍곡계곡의 소금강 풍경은 구곡 중 으뜸이다.

 

괴산군 칠성면 쌍곡마을부터 제수리재에 이르기까지 10.5km가 쌍곡구곡이다. 이곳엔 호롱소, 소금강, 병암(떡바위), 문수암, 쌍벽, 용소, 쌍곡폭포, 선녀탕, 장암(마당바위)라는 아홉 개의 마디가 서로 벗 삼아 사계절을 품고 있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조선시대 퇴계 이황, 송강 정철 등 수많은 유학자와 문인들이 이곳의 산수경치를 사랑하며 소요하였겠는가. 보배산, 칠보산, 군자산, 비학산의 웅장한 산세에 둘러쌓여 있고, 수많은 신화와 전설이 너의 애틋한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기암절벽과 노송과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숲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하여 사람들은 소금강이라는 애칭까지 주었다.

너를 만나러 가면 제일 먼저 호롱소가 마중나와 있다. 계곡물이 90도 급커브의 아찔함을 연출하며 흐르고 있고 늙은 소나무와 바위가 오붓하게 앉아있지 않던가. 이곳의 백미는 누가 뭐래도 호롱불처럼 생긴 큰 바위, 호롱소다. 이어 만나는 소금강은 아름다움의 절정이다. 높게 솟은 봉우리는 하늘과 맞닿아 있고 잘 뻗은 소나무들이 아슬아슬한 자태로 오가는 방랑자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마음의 짐을 풀어놓는다. 바위 모양이 시루떡처럼 생겼기에 떡바위라고 부르는 병암은 가난했던 시절에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사오면 근심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전설이 남아있고, 인근의 문수암은 보살을 모신 암자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깎아 세운 듯한 바위가 서로마주보고 있는 쌍벽 앞에서는 마음의 짐을 풀어놓아도 좋다.

쌍곡계곡에서 자연을 벗삼아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쌍곡계곡에서 자연을 벗삼아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용이 승천하였다는 전설을 간직한 용소는 명주실 한 꾸러미를 다 풀어도 모자랄 정도로 그 깊이를 알 수 없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쌍곡폭포는 그 자태가 수줍은 촌색시처럼 부드럽고 유연하며 여성적인 향취 물씬 풍긴다. 그 아래로 여인의 치마폭처럼 드넓은 호수가 펼쳐져 있으니 시원하다 못해 간장을 서늘케 한다. 선녀들이 달밤이면 목욕하러 내려왔다는 선녀탕은 아름다움과 신묘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고, 마당바위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장암은 바위가 갖고 있는 시간의 이끼와 남성적인 매력을 품고 있다.

그러고 보니 너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과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도 위세 떨거나 자만하지 않고, 군말 한 마디 하지 않으며 오롯이 그렇게 서 있으니 잠시나마 내가 너를 탐하려 했던 것이 부끄럽다. 세속의 삿된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언제 철이 들는지, 이러는 내가 야속할 뿐이다. 결기가 대쪽같은 선비도 춥고 배고프면 밥 한 그릇에 비굴해질 수 있지만 자연은 정직하고 한결같다.

괴산의 특산품 대학찰옥수수
괴산의 특산품 대학찰옥수수

 

괴산의 맛 중 여름의 것은 단연 옥수수다. 옥수수밭이 지천에 널려 있다. 키 큰 옥수수밭에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수수’하다. 옥수수로 하모니카를 만들던 옛 추억을 그리며 찰지고 달달한 맛의 세계에 빠져본다. 여름도 끝물이다. 질기고 지루한 더위가 한풀 꺾였으니 떠나자. 잠시나마 매체와 활자에 빗장을 걸고 오로지 자연에 기대보자. 문명으로부터 벗어나면 삶의 여백이 넉넉해진다. 길 위의 도파민을 찾아, 내 안의 나를 찾아 떠나자.



글 변광섭 <문화기획자, 에세이스트>

사진 송봉화 <사진작가, 우리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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