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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치비화 / ■이강공(李堈公) 탈출사건의 진상(2)
조선통치비화 / ■이강공(李堈公) 탈출사건의 진상(2)
  • 박장미
  • 승인 2018.09.02 2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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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이강공(李堈公) 탈출사건의 진상(2)



●탈출 전후의 양상(2)

▷지바 “여기서 우리는 일당에게 눈치 채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자동차를 창의문 밖에 버려두고, 산길을 따라 17~8명의 형사가 빠른 걸음으로 그들이 있는 집을 향해 수사망을 좁혀 들어갔습니다. 우메다(梅田), 미나미(南) 이외 3명의 형사가 선두에 서서 길을 재촉했고, 얼마 안 있어 그 집에 도착할 수가 있었으나, 조선 경찰관으로 오랜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경찰 제군이 말한 대로 십 수 명의 형사․순사가 산길을 따라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재빨리 눈치 챈 마을 청년들이 밀회장소에 있는 그들에게 이 사실을 전한 탓인지 불온 조선인들은 이미 도망하고 없었습니다. 그러나 집주인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총독부 정운복(鄭雲復) 촉탁이 이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말씀드리겠지만, 그는 불온 조선인에게 이용당한 자로 촉탁 자신은 조금도 악의가 없었다는 것이 판명됐습니다. 문 앞에서 세 명의 형사에게 말하기를 ‘온한 무리들은 전부 도망 가버렸다. 그러나 그 중 한 사람이 저 쪽 산 넘어 길로 덤프차를 타고 도주 중에 있으니 즉시 체포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정보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에 세 사람의 형사가 산으로 뛰어 올라가 뒤쪽에서 세 개의 피스톨을 겨누고, 불온 조선인을 포위, 체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자는 이미 사태가 어쩔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고 거기서 순순히 체포에 응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불한당이야말로 음모사건의 중심 역할을 담당했던 창률(昌律)이라는 사나이였는데, 체포 당시 그는 정교한 피스톨 1정과 타환 수십 발을 허리에 찬 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음모의 장본인

▷지바 “그리해 창률(昌律)과 정운복(鄭雲復)을 경찰서에 연해할 수 있었고, 취조한 결과 그들의 계획을 상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분명히 파악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 음모의 장본인은 전협(全協)이라는 사나이로 전협 자신이 전라남도 갑부인 석동(錫東)씨의 대리인이 라고 자칭하고, 3만원을 전하께 융통해 드린다는 구실로 이민하(李敏河)를 이용해 전하의 유괴를 계획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 석동이라는 갑부는 완전한 가공의 인물이었습니다. 또한 전협이라는 자가 경성에 잠복해 있다는 단서가 잡혔기 때문에 전협이 가 있을 만한 곳에는 빠짐없이 형사를 잠복시켜 두었습니다. 때 마침 불온 조선인으로 보이는 자가 수색망에 걸려들어왔음므로 체포했다. 그자가 전협일 것 같다는 정보가 들어왔기 때문에 모리 경부(森 警部)가 출동해 인물 대조를 해보니 그가 바로 전협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범인들을 경성 내에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단 1주일 만에 전부 체포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반 주거지에서 도망친 나창헌(羅昌憲) 및 그 이외의 사람들은 상하이까지 건너가 대동단(大同團)이라는 결사를 만들어 여러 활동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녹천정(綠泉亭)에서의 아강공 전하의 기거(起居)



▷지바 “한편 전하께는 경성으로 되돌아오실 것을 청한 후, 사건의 경과에 대해 상세하게 말씀해 주실 것을 요청했고, 범죄에 대한 조치에 대해서도 상당한 고려를 해 드렸습니다. 앞으로는 전하의 금후의 기거에 불온 조선인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만전을 기할 것이며, 전하 자신 또한 만의 하나라도 실수하시는 일이 없도록 철저히 해주실 것을 고심 끝에 당부 드렸습니다. 먼저 전하가 돌아 오시 후, 기거하실 장소에 대해서 경무국장과 상담을 해보았는데, 경무국장은 전하가 종전의 저택으로 다시 들어가시게 되면, 또 다시 불온 조선인이 접근할 위험이 있으므로 일시적으로나마 다른 장소에서 조용히 요양하시도록 하는 것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때 마침 정무총감이 상경 중에 계시므로 총감 저택이 비어 있으니 일시적으로 총감 저택에 기거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있어 사이토 총독을 뵙고, 이 취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사이토 총독은 총독관저 위쪽에 녹천정(綠泉亭)이라는 작은 집이 있는데, 그 곳은 이토히로부미공 시대에 여러 차례 주연(酒宴)을 개최했던 유명한 집으로 잘 돼 있었으므로 좋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내정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고모다 경시가 전하를 모시러 가서 경성으로 돌아오실 것을 청하게 됐고, 경성에서 도착하시게 되면, 불온 조선인으로부터 또 다시 어떤 음모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걱정해 후지다(藤田) 경부에게 엄밀히 명령을 내려 용산에 순사들을 파견해 서둘러 용산에서 하차하시도록 한 후 자동차에 동승시켜 경성으로 들어오시게 했습니다. 총독 관저 문 앞에 이르러서는 후지다 경부가 직접 운전수에게 명령을 내려 자동차를 총독 관저까지 타고 들어가서 즉시 산 위에 있는 녹천정에 체류하실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게끔 여러 가지 조치를 취했던 것입니다. 이 급박한 조치는 완전히 극비리에 진행됐고, 천하제일의 신문기자들도 3, 4일간은 전하의 행방을 탐지하지 못해 매우 혼미한 상태에 있었다고 합니다.”



●이강공의 심경

▷지바 “그 후 불온 조선인들의 검거도 일단 끝났기 때문에 전하 자신에게 당시의 사정을 여쭈어보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됐으므로 여러 가지로 상의한 결과 내가 직접 그 임무를 맡게 됐습니다. 그리해 모리 경부를 통역으로 동행해 전하에게 배알할 것을 청한 후, 녹천정에서 전후 7시간에 걸쳐 전하로부터 당시의 사정을 듣게 됐습니다. 먼저 오랫동안 조선에 재직해 오신 여러 동료 관리들로부터 들은 정보에 의하면 전하 자신은 매우 호담(豪膽), 권략(權略)이 풍부한 정치가로서의 기풍을 가지고 계셔 미미한 관리에 불과한 우리들이 이 유괴사건의 전말에 대해 여쭈어 본다 고해도 쉽게 이에 응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아주 섬세한 신경을 써야 하며, 세심한 배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전해 왔습니다. 나 자신은 특별히 결심한 바가 있어 하등 이러한 충고에 개의치 않고, 전하를 배알해 일단 인사말씀 여쭌 후, 이렇게 난데없는 재난을 당하시게 된 것에 대해 위로의 말씀을 드림과 동시에 당시 사정에 대해 여쭈었습니다. 그랬더니 전하께서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당시 사정에 대해 여쭈었습니다. 그랬더니 전하께서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당시 사정을 세세한 부분까지 빠뜨리지 않고, 상세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전하께서는 참으로 동정하지 않으면 안 될 피치 못할 사정이 아주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러한 뜻을 총독 및 정무총감에게 상세히 보고 드렸습니다.

전하와의 말씀 도중 전하께서 도쿄에 체재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를 정무총감에게 말씀드렸더니 총독부 정무총감께서 깊이 생각하신 끝에 도쿄의 내각과 상담했고 다시 궁내성과 타협하고, 경시청과도 연락을 취해 도쿄로 이주하실 수 있도록 내정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하를 배알할 것을 청해 그 취지를 말씀드리게 됐는데, 그 때는 이미 전하께서 본저에 귀환하신 후였고, 꽤 시간이 경과한 상태였으므로 마음이 변해 도쿄 이주에 대한 것이 꼭 실현되기를 희망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으므로 결국은 중지되고 말았습니다.”



●독립운동과 회의

▷지바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진 소위 이강공 전하의 탈출사건 내용은 이상과 같습니다. 전하께서 만의 하나라도 상하이로 탈출하시게 됐다면, 불온 조선인들은 기필코 전하를 받들어 독립운동에 더욱 기세를 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조선통치 상 커다란 동요를 가져왔을 것이며 세계여론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다행이도 위기일발 직전에 이를 억지할 수가 있어 무엇보다도 국가를 위해 다행스런 일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연고로 시국이 매우 위험한 사태에 있었다는 것을 능히 상상할 수 있으며, 이는 1921년 워싱톤 회의가 열렸을 때 미국의 선전에 의해 충분히 입증됐다고 생각됩니다. 바로 그 때의 워싱톤회의에 출장명령을 받고 저는 회의에 출석하게 됐는데, 1922년 1월 1일 뉴욕에 있을 무렵, 이강공 전하를 비롯한 조선인 명사 160명의 서명으로 워싱톤회의에서 독립 청원서가 발표됐습니다.

다행이도 제가 당시 사정을 세밀히 잘 알고 있었던 관계로, 청원서 속에 전하의 이름이 기입되는 것 같은 일은 모두 허위 조직일 것이라는 확신 하에 워싱톤에서 취지를 설명, 변명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했습니다.

이강공 전하 탈출사건의 대략적인 개요를 서면에 써서 당시 총독부의 새 예산 성립을 위해 도쿄에 가 계시는 미즈노 정무총감에게 보고를 올렸는데, 얼마 안 있어 곧 회신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회신 내용은‘조선에 있는 경찰관의 노고를 생각하면 본인은 이 예산을 기필코 성사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만일 성사되지 않으면 본인의 직을 걸고서라도 끝까지 분투할 생각이다. 만의 하나라도 예산이 제대로 통과되지 않으면 다시 조선으로 돌아갈 면목이 서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강경하게 각의에서 주장하고 있는 중이다.’라는 내용의 답장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의 답신에 매우 감격했고, 마침 소집 중이었던 경찰서장 회의에서 정무총감의 회신 내용을 소재로 해 ‘우리 경찰이 더 일층 분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의 훈시를 하기도 했습니다.”



●탈출사건과 경찰의 긴장



▷미즈노 “이강공의 탈출사건은 조선에서는 상당히 큰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서 경찰은 매우 고심했습니다. 이강공을 국경에서 찾아내어 경성으로 다시 모시고 돌아왔을 때 경성 어느 곳에 머무르게 할 것인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으나, 결국은 총독관저 내에 있는 녹천정에 일시적이나마 모시기로 결정했습니다. 녹촌정의 경비를 위해서도 지바 경찰부장은 매우 고심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당시 녹촌정 경위 임무를 맡았던 종로(본정) 경찰서에 근무하던 한 순사는 지금도 우리 집에 왔다 갔다 하는 사이인데, 그 당시의 상황을 친히 나에게 이렇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는 당일 경찰서장으로부터 녹천정에 계시는 이강공 전하를 잘 경위도록 명을 받았다 합니다. 때는 12월 말이라 추위가 혹심한 때였고, 녹촌정 문 앞에서 보초를 서고 있노라면, 밤 12시 경에는 아무리 두터운 외투를 입고 있어도 냉기가 세차게 피부로 스며들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양발을 아무리 두텁게 몇 켤레나 신고 있어도 발은 마치 몽둥이처럼 딱딱하게 굳었고, 살이 얼어붙어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한 시간씩 교대하기로 돼있었던 것을 한 시간을 계속해서 보초를 서는 것이 도저히 무리라고 판단돼 30분 교대제로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지바 경찰부장이 가끔 순시하러 와 그 때마다 ‘이강공의 경위(警衛)임무는 매우 중차대하다. 만일 다시 한 번 이곳을 탈출하거나, 불온한 조선인들에게 탈취 당하는 불상사가 생기게 된다면, 이는 단지 경찰의 실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조선통치 상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되므로, 자네들이 이를 잘 생각해 긴장해서 이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경찰관의 본분을 다하도록 하라.’는 훈시를 했다더군요. 그들은 부장 나리나 서장 나리도 이렇게 국가를 위해 고심하고 계시는구나 하고 깊이 감격했고, 한 겨울 새벽 무렵의 추위나 심신의 피로도 모두 잊어버리고 직무수행을 위해 쓰러질 결심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말단 순사에 이르기까지 거의 완벽하게 긴장된 분위기 가운데서 일 해주었기 때문에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고, 조선 13도의 치안이 유지될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지금도 그 당시 관리들의 고군분투한 활약상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눈물 없이는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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