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송/ ESI 교장

 

 

개인과 세계사회의 일원이란 이중적 지위를 한 인간이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교육사에서 구체성을 띤 것은 200여 년 전 독일 프로이센(Preußen)의 정치가이자 철학자, 그리고 언어학자였던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에 의해서였다. 물론 그의 교육철학은 당시의 주된 철학적 경향을 따라 계몽주의(啓蒙主義) 사상을 바탕으로 삼고 있지만, 한 인간의 존재형태와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교육은 능동성과 자율성을 바탕으로 해야 하며, 이로써 형성된 이성으로부터 세계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할 동력이 도출된다는 그의 생각은 주목받을만한 통찰이었다. 개인의 자유에 근거한 교육이 학습자의 인격의 근간을 이루어야 하고 그것으로 사회를 형성해야 발전의 합리성이 인정된다는 생각은 자연히 교육의 이행절차를 가르침에서 배움으로가 아닌 배움에서 가르침이 유도되는 것으로 인식하게 했다. 이즈음에서 그의 생각은 이상적인 만큼 현실성을 결여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교육현장에서 그의 이론이 이행되기 힘들다는 사실과 그의 교육사적 위치가 아직 공고하다는 어울리지 않는 현실을 교육사는 목도(目睹)하고 있다. 아직도 그의 주장이 특히 우리나라의 교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이유와 그렇지만 반드시 실현되어야 하는 이유, 그리고 그 해결방법에 대해서 알아보자. 
먼저, 그의 교육론이 현실적 측면을 간과하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를 살펴보자. 공부의 내용이 스승이 아닌 학생에게 있게 되면 첫 째, 그 교육의 가치 또한 학생을 위주로 하여 펼쳐질 위험성이 있다. 극단적인 예로 학생의 호기심이 "공부 안 하면 안 되나요?" "공부하기 싫어 죽겠는데 어떻게 하면 안 할 수 있나요?" 등이라면 이를 공부의 내용으로 편입시킬 방법들이 협소해진다. 둘째, 이러한 수업을 감당할 교사의 수를 확보하기 어려워진다. 한 학생이 "광합성이 진행되는 과정을 영어로 설명해 주세요."라는 질문을 국어전공과 교사가 해결하기는 매우 힘든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르침의 방향이 학생에서 교사로 흘러야 하는 이유는 첫 째, 교육의 속성상 학습자위주가 아닌 것, 즉 이미 교과과정이 구체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부터는 학습의 탄력성이 생길 확률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교실이 피 끓는 청춘을 무기력하게 소모해야하는 학생들의 허탈로 메워지는 이유가 여기에 뿌리를 틀고 있다. 교사들은 자신들의 수업에 집중할 수 없는 학생들에 대한 허탈감으로 스승의 지위에 가치관을 투영하지 못하고, 학생들은 자신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진행되는 교과과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함으로써만 자신의 존재를 비정상적으로 확인할 기회를 가진다. 둘 째, 교사까지도 감시의 대상으로 전락당할 수밖에 없도록 베풀어진 교과과정은 가르치는 교사와 배우는 학생에게 모두 이해라는 공부의 근본요령을 스스로 버리게 한다. 거기다가 숫자를 이용한 어느 한 순간의 평가를 한 인격을 판단하는 근거로 삼는 희한한 제도에 부응하기 위해 더욱 '암기'에 공부를 의존하게 된다. 공부는 인생을 만드는 가장 근본방법이다. 그리고 '인생'은 절대로 암기와 상관성을 가지지 않는다. 
4차산업혁명이란 단어가 그 중요성을 더해가는 요즈음 사람들로 하여금 '개인의 삶과 그 방법에 대해 국가가 부여한 기준에 부응하도록 하는 것이 교육이다.'라는 명제는 분명 시대착오적이다. 따라서 훔볼트 사상은 지난 역사에 펼쳐진 한 페이지로 치부해도 되지만 그로부터 발현된 그의 철학은 아직도 실현의 과제여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이루는 것이 교육개혁이다. 4차산업혁명은 배움이 가르침을 유발하여야 한다는 고결한 명제가 가진 비현실성을 극복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은 학습자의 호기심이 교과과정의 내용으로 택해질 때 본성적(本性的)이라는 원칙을 실현할 도구를 제공한다. 이제 교사는 학생들의 기대를 무시한 정해진 교과과정의 이행을 독려하는 감시자가 아니라 교육내용을 편집하는 에디터가 될 시대를 맞고 있다. 국어교사라 하더라도 로보틱스와 사물인터넷의 도움을 통해 광합성의 과정을 영어로 이해하려는 학생의 동료가 될 수 있다. 교육 본래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선뜻 발을 내딛고 있는 지금을 교육개혁의 적기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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