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소설가

 

시골의 아버지께서 식전에 전화를 걸었다. 새벽녘에 휴대폰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선잠 깬 눈으로 액정을 보니 ‘아버지’다. 불길하다. 여간해서는 먼저 전화를 걸 분이 아니다. 매번 이쪽에서 먼저 전화를 걸어야 받기만 했던 아버지다. “예, 아버지 어쩐 일이세요?” “저 있잖냐 선실양반이 간밤에 올림대를 놓았어. 너 내려와 봐야 하는 것 아니냐?” “예? 그 양반이요?” ‘올림대’란 시체를 올려놓는 상판, 즉 시상판(屍床板 )이다. 하지만 심마니들 사이에선 이를 ‘숟가락’ 이라 했다. 해서 ‘올림대를 놓다’ 하면 숟가락을 놓았다는 뜻으로 ‘죽다’를 이르는 말이다. 아버진 젊었을 적에 동네에선 심마니라 불렸다. 농사를 지으면서 짬짬이 산 구렁을 헤매며 산삼이나 버섯 등을 캐서 가세에 보탰을 뿐만 아니라 여섯 자식들의 학비를 댔다. 해서 붙은 별호다. 아버지 역시 심마니라는 칭호에 싫어하는 기색 없이 오히려 심마니들이 쓰는 용어를 동리사람들보다 많이 알고 있었다. 이 ‘올림대를 놓다.’ 라는 말도 그 중의 하나다.

진설인 자신의 집안에선 옥자둥이로 태어났다. 즉, 옥같이 귀하고 보배로운 아이라는 말이다. 어느 누구 자식인들 다 그러하지 않겠냐마는 그 부모가 여간 공을 들인 게 아니다. 다섯의 계집아이만 조르라니 낳고 보니 그 어미는 그야말로 상성이 들어서 아들 하나 점지해 달라고 장독대에 정화수 떠다 놓고 매일을 빌었고, 아비는 농사일을 하거나 산을 헤맬 때마다 늘 아들 하나 있길 바라는 마음이 떠나질 않았다. 그런데 열 달 만에 나온 자식이 애꾸눈이라고, 이런 공을 들여 여섯 번째 낳은 아들(진설이)이 커가면서 여간 애물단지가 아니다. 오냐 오냐 해서인지 제 부모는 안하무인이고 다섯 누이들을 쥐 잡듯 하더니 돈을 알고 물건의 고가치 저가치를 구별할 줄 알고부터는 집안의 돈 될 만한 귀중품이 남아나질 않고 남의 집 물건에도 손을 대기 시작하는 거였다. 해서 이제는 동네의 골칫거리가 되었다. “진설이 말여, 제 에미가 이른 새벽에 길은 우물물로 정성들여 낳은 자식이라 동네서도 귀한 놈으로 대했더니 이거 보통 망나니가 아니잖여.” “제 에미가 젖이 넉넉지 못하여 약물터나 삼신에게 젖빌기를 해서 겨우 키워놨더니만 저 모양이니….” “제가 기른 개에게 발꿈치 물린다더니 그 말 허투루 만들어진 말 아녀.” “그려 그려, 은혜를 베풀어준 제 부모는 물론이구 동네사람들에게까지 도리어 해를 입게 하니 이게 말이 돼?” “여게 진설이 아버지, 자네 자식에 대한 사랑 잘 아네. 그래서 우리 동네서두 모두가 진설일 보듬지 않았는가? 하지만 보게 자식 맘, 부모 맘, 동네사람들 맘 다 다르잖여. 그래도 동네사람들은 한 치 건너여 부모가 제일이제. 그러니 아버지인 자네가 꼭꼭 찝어 잘 다스려 보게.” “미안스러우이 내 자식일 왜 내가 몰러. 뚜드려만 보지 않었지 지꺼려도 보고 혼돌림도 줘 봤지. 근데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그게 잘 안되더라구.” “아녀 그래도 지금 바로 잡아야지 더 늦으믄 더 큰일여.” “아니, 근데 이 큰 동네일에 우째 선실이 자넨 아무 말이 없는가. 자네도 한 마디 해봐!” 그러자 지목받은 선실이 눈을 한번 감았다 뜨더니, “모두들, 오조 먹은 돼지 벼르듯 하고 있구먼!” 하는 거였다. “아니, 건 또 뜬금없이 뭔 말인가?” “‘오조’가 뭔가 ‘일찍 익은 조’ 아닌가. 그 일찍 익은 조를 돼지가 먼저 냉큼 먹어버렸으니 얼마나 화가 났겠는가. 그러니, ‘혼내주려고 잔뜩 벼르고 있다’ 는 말일세.” “아니 그럼 자네는 우리가 시방 진설일 잔뜩 혼내줄랴고 벼르고 있다는 말인가?” “이 자리에서, ‘온 바닷물을 다 켜야 맛이냐’ 이 말여.” “건 또 뭔 말여?” “무슨 일을 꼭 끝장을 봐야겠다는 듯이 모두들 다그치고 있으니 말여.” “아니 그럼, 이런 일을 질질 끌어야겠어?” “오이는 씨가 있어도 도둑은 씨가 없는겨. 마음을 잘못 먹으믄 누구나 도둑이 되기 쉽다는 거제. 그러니 진설이도 한 때 마음을 잘못 먹은 거지 질레 그러겄어.” “그러니 더 두고 보자 이거여?” “그게 아니라 옛날엔 밥해 먹을 곡식이 없어 도둑질을 했네. 그래서 도둑을 잡아놓고 자백을 받으려면 닦달을 하지 않고 밥을 먹였네. 그러면 밥을 허겁지겁 먹고 나서 술술 불었지. 이러는 걸 뭐라고 하는지 아는가?” “몰러” “내도 들은 말이지만 ‘밥받이’ 라고 하는겨. 그러니 진설이에게도 그 일시적인 방황을 고치게 하려면 무조건 닦달만 하지 말라는 거제.”

진설이 아버진 이 날의 모든 일들을 심각하게 진설에게 말해 주었고 특히 선실양반의 진심어린 조언을 일러주었다. 하여 이후 진설은 이를 새겨 방황을 끝내고 농업학교를 마치는 해 수원에 있는 농업을 연구하는 회사에 취업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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