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용 전 금강유역환경청장

 

이경용 전 금강유역환경청장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복도식 아파트다. 엘리베이터와 비상계단을 사이에 두고 문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 문에 경고문이 붙어 있다. “이 문은 항상 닫힌 상태를 유지해야 하며, 고임목 등으로 고의로 개방하면 관계법령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항상 문을 닫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이다. 나는 이 경고문을 볼 때마다 정부가 개인 영역에 개입하는 정도가 정말 깊고도 넓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화재가 발생하였을 때 화염의 전파를 최소화하고 피난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 방화문을 특별 관리할 필요성은 있다. 지난 1월 33명의 희생자를 낸 밀양시 세종병원의 화재참사도 열려 있는 방화문이 인명 피해를 키웠다고 한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문을 항상 닫힌 상태로 유지하는 의무를 개인에게 부과하는 것이 적정한지는 의문이다. 이것이 꼭 필요하면 방화문이 항상 닫히도록 자동문으로 설치할 수 있다. 아니면 화재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방화문이 내려오도록 하는 방안도 가능할 것이다. 이런 다양한 방안이 있음에도 개인에게 의무를 부과하는 정책을 선택한 것은 올바르지 않다. 국가의 개인에 대한 개입은 최소화 될수록 바람직하다고 본다.

지난달에는 정부가 ‘먹방(먹는 방송)’을 규제한다고 나서 논란이 된바 있다. 정부가 국민의 비만을 예방하기 위해 폭식을 조장하는 광고와 미디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모니터링 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고도비만 인구가 2015년 5.3%에서 2030년 9%에 이르고, 청소년 비만율은 26%로 이미 OECD 평균을 넘어섰다고 하니 정부가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비만율을 개선하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시급하고도 당연해 보인다. 그리고 먹방 콘텐츠가 폭식을 조장하며 주요 시청자인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주었을 개연성도 있다.

그렇지만 먹방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규제하겠다는 것이 최선인지는 다시 생각해볼 문제이다. 비록 보건복지부가 비만의 해로움을 알려 방송과 인터넷의 자정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취지이지 ‘먹방 규제’는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정부가 개인의 비만까지 관리하려 한다는 비난을 피해 갈 수는 없어 보인다. 먹방들이 인기를 얻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며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이 과정에서 나쁜 방송은 자연스럽게 퇴출될 것이라는 시장원리를 왜 정부는 안 믿는 걸까? 나는 자유주의 신봉자는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시장과 개인이 가지는 자기결정권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혹시 정부가 자신이 하는 일은 옳고, 개인과 시장은 신뢰할 수 없다는 믿음에 근거한 것이라면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9월 말부터 고속도로뿐 아니라 일반도로에서도 차량 뒷좌석 탑승자가 안전벨트를 매지 않으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전 좌석 안전띠를 의무화하는 개정 도로교통법이 지난 3월 통과하여 6개월간의 계도기간을 거쳐 오는 9월 28일 시행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안전띠를 매지 않은 운전자들이 교통사고가 났을 때 다치거나 사망하면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논리가 전혀 불합리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운전자 개개인의 안전을 위하여 안전벨트를 매라고 강제하고 이를 단속하는 것이 국가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이지 의문이다. 왜 개인의 합리적 선택을 믿어주지 않는가? 이 정도 문제는 개인에게 맡겨도 되는 것 아닌가?

앞선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가 최근에 행하는 개인들의 사적인 영역에 대한 지나친 개입이 우려스럽다. 법규는 필연적으로 불신을 기반으로 한다. 누군가 규칙을 위반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법적 규제가 사회적 불신을 조장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히려 신뢰를 기반으로 한 가족 공동체, 지역 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이 더욱 중요할 수 있다. 약간의 문제가 있더라도 개인과 공동체를 믿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기다려 주어야 한다. 전 좌석 안전띠 매기는 홍보나 계도를 통하여 모두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과태료라는 칼을 먼저 꺼낼 것은 아니다. 법적 규제는 최후의 수단으로 미루어 놓은 것이 맞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법적 규제를 앞세우다 보면, 언제가 정부는 선의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생각까지 간섭하게 될지 모른다. 이것이 조지 오웰이 소설 ‘1984년’에서 예언한 빅 브라더일 것이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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