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논설위원 / 시인

나기황 논설위원 / 시인

얼마 전 친구들과 남해 여행을 다녀왔다.

몇 년 전부터 초등학교 친구들이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바깥바람을 쐬어보자고 해서 시작된 행사다.

올해는 남해 원예예술촌과 독일마을, 다랭이 마을을 둘러보고 보리암과 사천(四川) 바다의 자연경관을 즐기는 1박2일 코스로 일정을 잡았다.

전망 좋은 콘도에서 하룻밤을 함께 지내면서 주로 건강얘기, 자식들 얘기, 초등학교 시절 추억담으로 돌고 도는 얘기지만 매번 들어도 수십 년 추억을 공유하는 관계라서인지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 같은 끈끈함이 있다.

몸이 성치 않아 못 온 친구들 얘기로 방향이 돌면 “그러게, 우리가 언제 또 와보겠어. 이렇게 다니는 것도 10년 안쪽이지.”하며 자연스레 무릎시린 60대 중후반의 나이를 계산하게 된다.

90세 장수를 누린다 해도 산술적으로는 20년, 30년 밖에 남지 않았으니, 서글픈 심사는 차치하고라도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2030세대’처럼, ‘노년2030세대’도 바라고 기댈 것이 그리 많지 않다.

젊은 2030세대가 연애와 결혼, 출산, 취업, 내 집 마련도 포기하고 꿈과 희망, 인간관계마저 포기해야 하는 암울한 세대로 비춰졌다면, 노년2030세대는 나이가 많아서, 근력이 부쳐서, 자식들 체면 때문에, 자금도, 일자리도 없어, 결국은 하나 둘,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많아지는 우울한 세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년 2030세대는 조금은 달라져야 한다.

젊은 2030세대가 더 많이, 더 빨리, 소유하고 성취함으로써 비교우위를 통한 경쟁의 정점에 서려고 노력하는 세대라면, 노년의 2030세대는 비교우위 보다는 자신을 돌아보고 나누는데 더 힘을 써야 하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노년, 건강한 노년을 보내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관계를 포기할 것이 아니라, 멋진 사회공동체를 만들어 가는데 가지고 있는 재능과 열정을 아낌없이 나누는 좋은 표양이 돼야 할 것이다.

그렇다. ‘연금재벌’이라 불리는 퇴직교사나 공무원 친구들을 부러워하기보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멋지게 살아갈 것인가 고민하는 쪽이 훨씬 더 생산적이다.

그래야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가 앞에 붙은 젊은 세대들에게, 먼저 살아온 세대로서 바람직한 사회. 문화적 가치를 유산으로 남겨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8월 8일, 한국노인인력개발원과 한국생산성본부가 노인을 대상으로 한 '4차 산업혁명 대비 시니어 인재 육성 관련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노년을 맞는 수많은 시니어 인력들이 전문성 있는 교육과 자발적인 직무개발을 통해서 앞으로 다가오는 고령화 사회에 당면한 문제를 당당히 헤쳐 나가는 ‘도전과 완성’의 세대로서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다.

남해 ‘보리암’ 사찰 앞쪽 바위에 세워진 삼층석탑이 금산(錦山)의 ‘비보(裨補)’ 역할을 한다고 적혀있다. ‘비보(裨補)’란 “풍수지리상 나쁜 기운이 있는 지역에 탑이나 장승 등을 세워 나쁜 기운을 억누르고 약한 기운을 보충하는 일”로 풀이된다.

시대의 변곡점에서 ‘노년2030세대’가 건강한 노년을 위한 ‘비보’역할을 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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