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진 예미담병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임성진 원장

2015년 인구보건협회의 조사에서 분만 경험이 있는 여성의 90.5%가 출산 후 우울감을 느꼈다는 결과가 나온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10명 중의 9명은 우리가 소위 이야기하는 산후우울증이 있다는 이야기인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여기서 생각해봐야 하는 건 산후우울증과 산후 우울감은 다른 것이라는 점이다. 말 그대로 우울감과 우울증은 다르다. 꼭 건망증과 치매의 관계와 같다. 그러나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헷갈리는 사람들이 많다.

산후 우울감은 의학용어로는 postpartum blues라고 부르며 여기서의 blues는 조지 콜먼의 1798년 작품 blue devils에서 가져왔다는 설이 대표적인데 분만 후 3-5일에 가장 흔하고 산모의 22-70%에서 우울감이 나타나는 증상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상적인 반응일 수 있으며 대개 금방 사라지곤 하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보통이나 산후우울감을 경험한 산모의 20% 가 1년 이내에 주요우울증으로 진단된다는 보고가 있기 때문에 주의 깊은 관찰이 필요할 수 있다.

산후 우울증은 산모의 13% 정도에서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으며 초기 증상은 산후우울감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대개 출산 후 10일 이후에 나타나서 보다 오래 지속이 되는 것이 특징이다. 산후우울증은 아이와의 애착관계 형성을 방해할 수 있고 재출산시 재발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치료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원인에서도 차이가 있다. 산후우울감의 경우 육아와 같은 환경적인 요인이 가장 큰 원인이라면 산후우울증의 경우에는 환경적인 요인과 더불어 여성호르몬의 갑작스런 변화나 배내측 전전두피질의 기능 저하와 같은 뇌의 기능적인 문제와 같은 보다 다양한 원인들이 알려져 있다.

산후우울감의 경우에는 일시적이거나 환경적인 영향이 크기 때문에 정서적인 지지나 양육의 분담과 같은 환경의 변화만으로도 쉽게 호전될 수 있으나 산후우울증인 경우는 보다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대개 출산 후 우울증을 느끼는 시기와 수유기간이 겹치기 때문에 우선적인 약물치료는 권장이 되지 않지만 증상에 따른 일상생활의 어려움이나 자살에 대한 생각 등의 심각한 증상이 동반되는 경우에는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약물 치료나 심리 상담과 같은 치료가 필요할 수 있으며 이러한 치료로 호전되지 않는 경우에는 입원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다.

최근 우울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우울증이라는 진단이 일반화 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자신이 산후우울증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많은 연예인들이 고백을 한 적이 있다. 또한 할리우드의 유명 여배우인 브룩실즈는 산후우울증을 경험하였으나 진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치료를 받지 않다가 자살충동 등의 심각한 증상을 경험한 이후 약물 치료를 시작한 뒤 증상이 호전된 바 있으며 자신의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Down came the rain’이란 책을 써서 다른 사람들과 우울증의 어려움과 치료의 결과에 대해 소통을 한 바 있다. 우울증이란 초기에 치료를 하면 경과가 매우 좋지만 증상이 심해지는 경우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병이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이 정신력의 문제로 여기면서 치료를 꺼려하는 것도 사실이다. 자신의 상황에 대해 보다 관심을 기울이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대처를 한다면 자신과 가족, 아이 모두를 위해 가장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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