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13회 충북여성문학상

13회 충북여성문학상은 박명애(55) 수필가의 ‘겁나게 그말’이 선정됐다. 시상식은 오는 20일 오후 2시 동양일보 아카데미홀에서 열리며 박 수필가에게는 ‘황금펜촉패’가 수여된다. 수상작과 수상소감, 심사평을 싣는다. <편집자>



●충북여성문학상은?

동양일보와 뒷목문학회는 충북여성문학의 발전과 여성문인들의 창작의욕 고취를 목적으로 전 문학 장르를 통틀어 가장 우수한 작품을 발표한 충북여성문인 1명을 선정해 시상하고 집중 조명하는 충북여성문학상을 제정해 시상해오고 있다.

역대 수상자는 2006년 1회 박영자 수필가와 2007년 2회 박재분 시인, 2008년 3회 박등 시인, 2009년 4회 김경순 수필가, 2010년 5회 유영삼 시인, 2011년 6회 차은량 수필가, 2012년 7회 신준수 시인, 2013년 8회 이은희 수필가, 2014년 9회 강순희 소설가, 2015년 10회 권영이 동화작가, 2016년 11회 노영임 시조시인, 2017년 12회 최덕순 시인 등이다.

심사 대상은 충북에서 3년 이상 거주한 여성문인(뒷목문학회 회원은 제외)이 매년 7월 1일부터 다음해 6월 30일까지 국내의 신문, 잡지, 동인지, 문예지 등에 발표한 작품이다. 이를 문학상 운영위원회가 추천하는 심사위원들이 개별로 2편씩 뽑는 1차 심사를 하고, 이로부터 10일 이내에 심사위원 전원이 참석해 토론과 협의를 거치는 2차 심사로 수상자를 결정한다.

 

 

박명애 수필가

<약력>
△1963년 청주 출생
△1990년 충북여성백일장 산문 차상
△2007년 창조문학 신인문학상
△2017년 산문집 ‘별일없어 고마워요’ 출간.
△‘비존재’ 동인,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수상작

'겁나게 그 말'

박명애



부음을 듣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 차창 밖 풍경은 모든 음이 소거된 듯 활동사진처럼 돌아간다.

지난여름 보고 싶다는 호출에 달려간 병원에서 외삼촌은 어린애처럼 바짓단을 돌돌 말아 올렸다. 당뇨 치료를 위한 투석으로 고생하신데다 심장혈관이식 수술까지 겹쳐 온몸이 바싹 야위었다. 심장으로 통하는 혈관이 막혀 허벅지 혈관을 떼어다 이식했는데 지네처럼 꿰맨 수술자국을 보여주시며 겁나게 무서웠다고. 친정엄마는 그런 동생을 두고 눈물바람을 하셨다. 칠순 갓 넘은 동생이 팔순 다 된 누나에게 응석 부리는 모습을 보며 가슴 저릿했는데 그게 내겐 마지막 기억이 되었다.

‘생전에 한 번이라도 더 뵈었더라면 …’

때늦은 후회를 한다.

겁 많고 마음 여린 외삼촌은 늘 ‘겁나게’라는 전라도 사투리를 달고 사셨다. 서울시민이 된지 수 십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서울 말투에 수시로 끼어들던 ‘겁나다’는 말. 애잔하면서도 따스한 그 말엔 대숲 바람소리가 배음으로 흐르던 외갓집 풍경이 그리움처럼 묻어있다.

정읍 외가 뒤뜰은 대숲이었다. 노래하듯 댓잎에서 토도독 튀던 빗방울이 장대비로 굵어지고 대숲이 워석거려 뒤척이던 밤이면 ‘비도 겁나게 온다’고 자장가처럼 들려오던 낮은 목소리. 함박눈이 밤새 내리고 휘어졌던 대나무가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패앵 패앵 튕겨 오를 때도 ‘눈도 겁나게 와야’.

이제 ‘겁나게’라는 그 말, 외삼촌만의 특이한 억양이 실린 그 말을 더 이상 들을 수 없으리라.

대나무처럼 일어서는 기억 속을 헤매느라 차가 밀리는 것도 잊었다. 평균속도 삼십 킬로미터로 느리게 흐르는 자동차 행렬 위로 비가 내린다. 와이퍼가 사념을 지우듯 빗물을 쓸어내린다.

장례식장은 먼 곳에서 달려온 이들이 주고받는 안부와 위로의 말들로 가득 고여 있다. 톤이 높기도 낮기도, 빠르기도 느리기도, 부드럽기도 투박하기도 한 말속엔 스펙트럼을 통과한 빛처럼 고인과 함께 했던 기억들이 스며있다.

“어찌야쓰까나”

고향에서 올라온 삼촌의 어릴 적 동무들이 상주인 외사촌 손을 부여잡는다.

‘어찌야쓰까나’ ‘어찌야쓰까나’ 나도 모르게 되뇌다 눈이 젖는다. 여기저기 ‘겁나게’라는 말이 둥둥 떠다닌다. 울컥 슬픔이 치밀어 오른다.

제주에서 달려온 작은 이모에게선 제주 바람 냄새가 났다.

“멘도롱할 때 호로록 들이키라”

따끈한 커피를 건네며 어쩔 수 없이 튀어나오는 상냥하고 다정한 사투리가 허망한 마음을 잡아준다. 아이들이 웃었다. 멘도롱이 뭐냐는 듯. 따뜻할 때 마시라는 말이다. 아이들에겐 그저 한번 듣고 잊을 재밌는 사투리겠지만 내겐 오래 삭인 장맛 같은 말이다. 언제까지 저 살가운 인사말을 들을 수 있을까?

팔순을 넘긴지 오래, 관절염으로 고생하느라 걸음도 불편한 이모는 커피를 건네곤 벽에 기대앉으시며 다리를 뻗는다. 무릎이 겁나게 아프다고. 큰이모도, 정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종 사촌들도 서울말 사이사이 불쑥 불쑥 ‘겁나게’가 끼어든다. 각기 다른 빛깔을 가진 ‘겁나게’. 누구도 외삼촌이 달고 살던 그 소리를 내지 못한다. 빙그레 웃던 얼굴, 장난스런 눈빛, 이제 가면 다시 못 볼 거라고 아이처럼 엄마를 붙잡고 ‘누나야 하룻밤 더 자고 가라’던 애절함이 묻어있는 그 말.

사라지는 언어에 대한 가슴 아픈 탐사보고서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의 저자 에번스는 ‘두주마다 세계 어딘가에서 쇠미해 가는 언어의 마지막 화자가 죽음을 맞는다. 이제 어느 누구도 과거 선조들이 열었던 사색의 길을 걸을 수 없다’고 말한다. 언어의 사멸은 곧 문화의 소멸이라고 할 수 있다.

노인 한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고도 한다. 곱고도 서러운 칠십 생애가 삶의 갈피마다 그려온 시간의 결도 그리 소진되리라.

영정 속 외삼촌은 콧날 오뚝한 중년이다. 초로인생이요 하나씩 무언가를 잃으며 가는 게 우리 삶이라지만 ‘겁나게’에 담긴 기억들이 몹시도 그립다.

밖엔 여전히 비 오는지 문상객들의 어깨가 젖어 있다.



●수상소감

전화를 받고 얼떨떨했다. 과분한 소식에 어찌해야할지 몰라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며 지인들에게 축하전화가 걸려왔다. 그래도 잘 모르겠다. 솔직히 기쁨보다는 묵직한 책임감이 먼저 자리한다.

돌이켜보면 늘 삶이 먼저였다. 열정과 성실함으로 문단에 자리매김해가는 문우들을 느린 걸음으로 따라 가보지만 현실에 깊숙이 발 딛은 나는 겉여문 열매였다. 그래서 늘 한걸음 뒤 보이지 않는 자리가 편했다. 아람벌기를 기다린다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핑계를 댔다.

그런 나를 그늘 밖으로 꺼내 주셨다. 민낯이 드러난 듯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덕분에 용기를 얻었다. 예고 없이 주어진 행운이지만 여성문학상과의 인연에 깊은 의미를 두고 싶다. 더욱 정진하여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좋은 글쓰기로 보답하겠다. 기회를 주신 동양일보와 뒷목문학회에 감사드린다. 늘 응원해주는 가족과 머뭇거릴 때마다 힘이 되어 주신 모든 분들께 절을 올린다. 그리고 따뜻한 기억을 남겨주신 외삼촌께도.



●심사평

분명한 주제에 전달력 높은 수필



최종심에 올라 온 작품이 수필 2편, 단편소설 2편이었다. 시부문은 역대 수상자들 가운데 시인이 많다는 이유로, 예심과정에서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 탓인지 최종심에 한 편도 올라오지 않았다.

산문 4편 가운데 단편소설 2편이 수상대상 선순위에 올랐으나, 1편은 등단작품의 재수록이어서, 다른 1편은 작가가 타 지역 거주자여서, 선정요강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수필 2편을 놓고 숙의한 끝에 ‘겁나게 그 말’(박명애)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수상작은 작고하신 외삼촌에 대한 그리움을 빌미로 해서, 정겹고 감칠맛 나는 토속어의 가치와 작가의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서술한 작품이다.

‘겁나게’라는 말은 ‘무섭게’ ‘두렵게’라는 사전적 의미 외에, ‘엄청나다’ ‘대단하다’ ‘놀랍다’ 등의 의미로, 보통 이상이거나 예상 밖의 상황을 나타낼 때 흔히 쓰는, 전남과 경남지역의 토속어다.

작가는 외삼촌이 생전에 흔히 쓰던 ‘겁나게’라는 말을, 그리고 그 특유의 억양을 통해 느끼던 외삼촌의 생전 모습과 인품을 회상하면서, 토속어가 지닌 내면의 정서를 읽어냈다.

그냥 지나쳐 들으면 낯설다는 이질감이나 가벼운 호기심으로 그칠 일이지만, 작가는 평소에도 호기심 이상의 관심과 애정으로 토속어를 사랑하고, 그 말을 예사롭게 쓰는 사람들이 지닌 따뜻한 내면의 정서를 읽고, 그것을 ‘수필’이라는 그릇에 담아냈다.

이 글이 심사자들의 눈을 끈 것은 외삼촌에 대한 그리움이나 토속어에 대한 관심과 사랑 외에 아주 사소한 곳에서 글의 소재를 찾아내는 예리한 관찰력, 그리고 성찰을 통해 얻은 결과(가치)를 깔끔하게 정리해 내는 구성력이나 표현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겁나게’, ‘어째야 쓰까나’, ‘멘도롱’. 이런 사투리의 어감을 ‘오래 삭인 장맛’에 비유하거나, 장례식장(殯所)을 찾은 고향사람들이, 고향사투리로 두런두런 ’살가운 인사‘를 나누는 실내 풍경을 묘사한 ‘겁나게 라는 말이 둥둥 떠다닌다.’는 짤막한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상황전달력이 높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어 본 장례식장의 풍경은, 여러 사람이 모여 주고받는 말들이 뒤엉켜, 마주한 사람 외에는 의미 전달이 안 될 만큼 낮은 음성인데도, 전체 분위기는 소란하고 어지럽다. 그런 풍경을 그렇게 짧고 분명하게 묘사해 내기란 발상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시어(詩語)처럼 상황의 진수를 잡아내고 압축표현의 기술을 발휘한 것이다.

‘노래하듯 댓잎에서 토도독 튀던 빗방울‘ ’대숲이 워석거리며 뒤척이던 밤‘ ‘자장가처럼 낮은 목소리로 함박눈이 내리고’ ‘대나무가....패앵팽 튕겨 오를 때’ 같은 표현도 의성어나 의태어가 딱 맞는 제자리에 들어앉은 듯, 그 상황이 실감나게 전해지는 대목이다. 어휘를 선택하고 구사하는 문장력이 조련돼 있다는 증거다.

토속어는 대체로, 의미와 발음, 억양 외에도 표정이나 정감에도 각기 다른 특징을 지닌다. 이런 특징들은 그 지역의 역사나 전통, 풍습과 어울려 지역 고유의 정서를 내포하고 고유의 문화를 형성한다. 작가의 성찰은 이런 데까지 미쳐, 유명을 달리하는 앞 세대와 함께 점차 사라져가는 토속어의 운명(?)에 안타까움을 표한다. ‘언어의 사멸은 곧 문화의 소멸이라고 할 수 있다.’는 작가의 술회는 그런 안타까움의 발로요, 사투리는 ‘촌놈’의 상징으로 통하는 일부의 상식을 깨고, 토속어에 대한 가치를 확인시켜 준 것이다.

수상작 ‘겁나게 그 말’은 일시적 감회나 단편적인 감흥의 나열로 주제가 모호한 신변잡기에 머물기 쉬운 수필의 함정을 잘 뛰어넘고, 지역마다 다른 고유의 언어와 그 속에 함유 된 정서,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까지 관심과 애정을 지니고 있는 작가의 의지를 분명하게 담아 낸 글이다. 외삼촌에 대한 애틋한 추억이나 그리움은 이 글의 주제를 이끌어내기 위한 소재요 동기일 뿐이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범상한 일상의 경험에서 의미 있는 주제를 명확하게 이끌어냄으로써 수필의 전형(典型)을 살린 글이기도 하다. .

이상과 같이 ‘겁나게’란 토속어 한 마디가, 감성을 자극하는 따뜻한 글, 전달력 높은 짭짤한 글로 변신했다는 점에서, 최종심에 오른 다른 작품 보다 비교우위에 있다는 데 이의가 없었으므로 수상작으로 선정 됐다.

심사위원 모두의 이름으로 축하와 격려를 드린다.



●심사위원(가나다 순)

김길자(수필가), 김다린(수필가), 김묘순(평론가), 김송순(동화작가), 나기황(시인), 박희팔(소설가), 서은경(시인), 신영순(시인), 안수길(소설가), 유영선(동화작가), 윤상희(시조시인), 윤현자(시조시인), 이송자(시인), 조성호(수필가), 조철호(시인), 최덕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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