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영 섭 인성교육칼럼니스트

인성교육칼럼니스트 반 영 섭
인성교육칼럼니스트 반 영 섭

 

이제 일주일 후면 우리나라 최대명절인 추석 즉 한가위다. 고향의 가을들녘은 황금물결과 파란 하늘로 풍요롭다. 지난 주말 종친회원들이 모여 조상님 묘역의 벌초를 했다. 금초, 벌초, 사초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그 말의 뜻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즉 금화벌초(禁火伐草)란 불을 조심하고 때맞춰 풀을 베어 무덤을 잘 보살핀다는 뜻이다. 조상의 묘에 불이 나면 후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속설이 있다. 벌초(伐草)는 무덤의 풀을 깎아 깨끗이 한다는 의미이다. 추석 전에 무덤의 풀을 깎는 일은 벌초로, 한식 때 하는 벌초는 금초로 보는 게 타당하다. 사초(莎草)는 흔히 잔디를 뜻하기도 하지만, 무덤에 떼를 입혀 잘 다듬는 일을 일컫는 말이다. 간단히 말해 벌초는 잡초를 제거 하는 일, 금초는 아예 잡초가 자라지 못하게 하는 행위, 사초는 무덤을 보수 손질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우리가 설 때와 추석 때에 자기 조상님의 묘를 찾아가서 절을 하는 것을 성묘(省墓)라고 한다. 민속학자들은 설에는 밖에서 활동해야 하는 남자들 출세를 위한 세배(歲拜)같은 대외인사(對外人事)의 행사에 주안점이 되어있고, 추석에는 집안사람인 여자의 안녕복리를 위한 집안일행사에 주안점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 집안일의 대표적인 행사가 바로 조상님 산소의 금초(禁草)와 성묘(省墓)라는 것이다. 명절의 민속놀이도 설에는 윷놀이, 연날리기, 장사씨름대회 등과 같은 전통놀이들이 대개 낮에 이루어짐으로써 양(陽)의 기운을 맞이하기 위한 남자(陽)들의 명절이라고 친다면 추석에는 강강술래라든가 달마중 같은 전통의 놀이가 주로 밤에 이루어짐으로써 음(陰)의 기운을 맞이하기 위한 여자(陰)들의 명절이라는 것이다. 어찌되었는 간에 추석을 맞이하여 반드시 벌초를 하는 것은 자손 된 도리이다. 과거에는 조상의 묘소에 벌초를 하지 않고 방치하면 불효의 자손으로 손가락질을 당하기 일쑤였다. 벌초를 할 때마다 보면 거의가 지난해 참석했던 친척 들이 대부분이다. 때론 성년이 되어 처음으로 참여한 청소년들도 보인다. 그 중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일가족이 모두 오는 사람, 아주 먼 곳에서 생업이 어려운데도 만사를 제치고 오는 사람, 또 몇몇은 일 년에 단 합번뿐인 벌초에 해마다 볼일, 종교, 질병 등등의 핑계로 불참하여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면서도 종중 땅을 매각한 종중 돈이라도 생기면 어김없이 나타나 자기 지분을 요구하는 파렴치한 사람들도 있다. 안타까운 것은 해가 갈수록 보이지 않는 집안어른이 늘어 간다는 점이다. 벌초를 할 때 모인 친척들은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한 조상의 후손들이다. 그러나 사는 곳이 각각이니 대소사가 아니면 만나 뵙기가 어렵다. 그러니 일 년에 단 한번 벌초 때의 만남은 매우 존귀한 것이다. 그런데 편리추구의 생활 패턴이 확산되면서 벌초도 대행업체에 맡기는 추세이다. 또한 추석연휴에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차례도 여행지에서 지낸다는 소식을 들을 때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나이 많은 사람들만의 느낌일까? 명절 때 집안의 친척들이 모여서 함께 하는 성묘문화가 일찍부터 발달해 온 것은 우리나라의 전통이다. 해가 갈수록 성묘문화가 퇴색되고 손윗사람을 존대하고 조상을 위하는 일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다. 벌초와 성묘는 단순히 조상묘역의 돌봄 차원을 넘어 일가친척의 혈통을 재확인하며 우애를 돈독히 하는 진정 소중한 행사임을 새삼 각인하여야 한다. 조상님들의 은덕을 기리며 일가친척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집대성 하는 중대한 행사가 벌초와 성묘인 것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올 추석엔 어느 해 보다 정성으로 차례를 지내자. 자손들이 한자리에 모여 결속하라는 무한한 교훈을 내려 주시는 조상님들의 은혜가 벌초와 성묘에 담겨있음을 상기하자. 뿌리가 튼튼한 나무는 꽃이 성하고 열매도 충실하다는 용비어천가의 한 구절처럼 튼실한 가족의 뿌리를 굳건하게 하는 벌초와 성묘의 의미는 존귀한 것이다. 제아무리 바빠도 자기 조상님의 산소를 깔끔하게 가꾸고 성묘도 하는 것은 돌아가신 조상님을 위하는 것보다 살아있는 자손들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다. 날이 갈수록 인간 본성의 소중한 가치인 효(孝)정신이 쇠퇴해 가고 있다. 벌초와 성묘를 할 때는 자녀들을 함께 참석시켜 조상의 음덕을 기리며 집안 내력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이럴 때 일수록 자녀교육은 부모 책임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기며 올 추석에는 반포지효의 뜻을 느끼도록 하게 해 주자. 이것이 성묘를 하고 금초를 해야 하는 진정한 뜻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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