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용/ 전 금강유역환경청장

이경용/ 전 금강유역환경청장

나는 가끔 이런 의문이 들곤 한다. 서구인들이 300년 동안 몇 세대에 걸쳐 경험했던 산업화와 정보화를 한꺼번에 경험하고 있는 우리 부모님과 우리 세대는 행운아 일까? 아니면 불행아 일까? 일본은 서구의 근대 300년 변화를 따라잡는데 메이지 유신 이후 100년이 걸렸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30∼40년 만에 서구의 300년 역사를 압축해 따라왔다. 도시화 비율을 보더라도 1960년 28%에 불과하던 것이 2017년 92%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서구에서 최소 150년에서 300년을 걸렸을 변화를 우리는 불과 한 세대 만에 해치운 것이다. 이 무서운 변화를 한 몸으로 감내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 가장 신났던 놀이가 ‘망우리(횃불놀이 기구) 돌리기’였다. 당시에 좀처럼 구하기 힘든 깡통과 전선줄을 구하여 만든 망우리를 대보름날 밤에 언덕과 들판을 뛰어다니며 돌리던 기억이 생생하다. 여름이면 가재 잡고 물장구치고 겨울이면 썰매 타던 개울은 우리의 사계절 놀이터였다. 자치기 하던 먼지 풀풀 날리던 신장로는 우리의 운동장이었다. 어쩌다 자동차라도 지나가면 뒤꽁무니를 따라가며 맡은 메케한 연기에서 문명의 이기(利器)를 느끼며 기뻐하지 않았던가? 이제 망우리, 개울, 신장로, 자치기와 같은 말들은 나에게 조차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지금 아이들은 단언컨대 망우리와 자치기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이들은 대신에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워터파크나 놀이공원에 간다.



소달구지에 짐을 실어 나르던 사람이 승용차를 타고 인터넷으로 해외쇼핑을 하는 것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호롱불 밑에서 공부하던 사람이 스마트폰으로 금융거래를 하고 있는 것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부모님과 우리 세대가 현재 겪고 있는 경천지동(驚天地動)할 변화라면,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올 변화와 비교하면 이마저도 ‘새 발의 피’에 불과할지 모른다고 한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예측한 ‘2045년 미래사회’를 보면 2045년엔 시속 6,000km로 달리는 진공관 튜브 형태의 열차가 등장해 전 세계 어느 곳이든 6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고, 자율주행차가 일상화된다. 집안에 있는 모든 물건들은 사물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스마트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가정에서는 음식 조리 등을 수행하는 가사 로봇이, 공장에서는 생산 로봇이, 거리에는 청소 로봇이 교통 정리하는 경찰 로봇이 등장하게 된다. 전투로봇과 무인기가 국방을 맡으면서 징병제가 모병제로 바뀐다. 전 세계 100여 개 이상의 언어를 실시간으로 번역하는 기기가 등장해 더 이상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 골머리를 앓지 않아도 된다. 이러한 예측이 모두 실현될지 여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변화가 몰려오고 있다는 점이다.



지구상에 인류가 출현한 이래 250만년 동안 이렇게 변화무쌍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또 있을까 싶다.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어쩌면 우리는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정작 우리 자신들이 겪은 일들이 얼마나 대단한 위대한 경험이었는지 모르고 있는지 모른다. 물론 개인적 성취의 크고 작음은 다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압축 성장이 낳은 각종 사회적 병폐를 소홀히 보자는 것은 더욱 더 아니다. 그렇더라도 나는 우리가 지금까지 겪은 집단적 경험의 위대함이 결코 훼손되지 않는다고 본다. 30년을 300년 같이 살아 온 압축적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창의성을 믿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후손들이 물려받아 미래의 또 다른 극심한 변화에 대처할 자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며칠 후면 추석이다. 요즘 전통적 추석 이미지가 많이 퇴색되었다 하지만, 가족 친지들이 함께 모여 서로 안부를 묻고 격려한다는 의미는 여전히 유효하다. 여러 세대가 모이다 보니 종종 세대 간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아마 이것도 30년을 300년 같이 살아 온 압축적 경험의 부작용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 발 물러나 앞선 세대가 살아 온 삶의 무게와 앞으로 후손들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를 역지사지(易地思之)하여 바라본다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 추석은 모두에게 그런 추석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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