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유 영 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유 영 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외국이라고 해서 반드시 우리보다 의식이 앞선 것은 아닌 것 같다.

미국땅이라고 하는 알래스카, 그곳서 만난 한 독수리를 보면. 지금도 그 독수리의 슬픈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쿠르즈가 머무는 작은 항구에는 쇼핑센터와 음식점만 몇 곳이 있을 뿐 볼거리가 별로 없었다. 어차피 배가 떠나기 전까지는 시간이 있으므로 작은 구경거리가 있어도 사람들이 몰렸다. 독수리를 만난 곳은 그곳에서였다. 독수리는 1평 남짓한 우리에 갇혀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있었다. 철창 사이로 보이는 녀석의 눈빛은 슬픔을 넘어 포기와 체념의 빛이었다. 관광객들이 앞다퉈 얼굴을 들이밀며 셔터를 눌러대건만 녀석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비까지 부슬부슬 내렸다. 차마 녀석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대기가 미안해서 돌아서는데 뒤통수가 따갑게 느껴졌다.

‘인간들아,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던 나를 이 좁은 우리에 가둬 놓고 구경하니까 좋으니?’

녀석이 말하는 것 같았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풀어준 돌고래 ‘제돌이’ 이야기를 쓰고 떠난 끝이라선지 동물들에 대한 복지가 시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엊그제 대전동물원에서 퓨마 한 마리가 탈출한 작은 소동이 있었다. 오후 무렵 보문산 일원 주민들에게 외출 자제 및 퇴근길 주의를 바란다는 재난문자가 떴고, 사람들은 갑작스런 도심의 퓨마 출현 소식에 당황했다. 100여 명의 경찰과 소방당국이 나서서 수색한 끝에 퓨마를 발견하고 마취총을 쐈지만, 마취가 듣질 않자 결국 사살했다. 보도에 따르면 사육사가 사육장 청소를 하고 난 뒤 문이 제대로 닫혀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퓨마는 고양이과 동물로 캐나다 북부에서 남미, 남아메리카까지 분포하는 야생동물이다. 야생에서는 사슴 같은 포유동물을 사냥하는 습성이 있고 영역이 굉장히 넓은 동물이다. 이런 동물이 사람을 공격한다면 위험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살한 것에 대해 말들이 많다. 퓨마가 동물원 안을 벗어나지 않고 있었는데 꼭 사살해야 했는가, 사람의 안전도 중요시하면서 동물도 죽이지 않고 안전하게 인도적으로 포획하는 방법은 없었는가.

이 일을 계기로 동물원 폐지와 사육사 처벌 등을 요구하는 국민 청원이 잇따르고 있다.

어느 청원인은 “문이 열리면 갇혀있던 동물은 당연히 탈출하게 된다. 그게 어떻게 동물의 잘못인가”라며 “인간의 실수를 동물의 탓으로 돌리지 말라. 퓨마는 본능대로 움직인 것이지 절대 총살당할 일은 아니다”라고 강조했고, 어느 청원인은 “야생에 있는 야생동물을 데려와 최대한 환경을 맞춰준다 해도 원래 살던 영역의 만 분의 1도 안되는 구역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 밖에 없다”며 동물원을 폐지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야생동물이 동물원에 있는 것은 보호가 아니라 고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청원에는 현재까지 약 5만 명이 동의한 상태이고 또다른 동물원폐지 청원도 2만5000명이 동의했다.

죽은 퓨마를 보면서 다시 알래스카에서 만난 독수리의 눈빛이 떠올려졌다.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해 마음대로 야생동물을 잡아와 감금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인가. 펄펄 날고 뛰어야할 야생동물을 그 좁은 곳에 가둬놓고 인간들이 구경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돌고래가 바다에서 살아야하듯, 독수리가 자유롭게 하늘을 비상해야 하듯, 퓨마도 넓은 곳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녀야 한다.

동물원 폐지를 청원하는 사람들은 동물원의 존재 자체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동물원 폐지가 어렵다면 이번 기회에 동물원의 기능전환이나 개선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동물원에서 멸종위기종 복원이나 서식지 보전 같은 연구사업을 하고, 동물이 보고 싶다면 지금같은 전시식이 아닌, 동물이 원래 살던 환경과 최대한 비슷하게 살 수 있도록 발전시키거나, 서식지를 직접 찾아가 엿보면서, 동물들의 생태계를 공부한다든지 하는 방향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동물원의 동물복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할 때다.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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