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희 팔

“여보야, 다 됐어?”

“응, 자기는?”

“난 벌써 다 됐지 빨리 나와!”

낮 장사를 마치고 밤 장사를 나가려는 참이다. 창분이가 아무리 장사치이긴 하지만 그래도 서른 갓 넘은 여잔데 그리고 추석날인데 얼굴을 대강이라도 다듬고 옷이라도 다른 것으로 갈아입어야 하지 않는가. 그래봤자 가벼워 활동하기 편하다는 만 원짜리 월남바지와 소매 긴 티셔츠다. 동갑내기 남편 분달이는, 놀러가는 것도 아니고 장사하러 가는데 가게에서 입는 옷 그대로면 되지 다른 옷이 뭐 필요하냐며 진즉에 포장 친 1톤 트럭에 장사할 물건들을 실어놓고 재촉하는 것이다. 작년 추석 전 날, 한 늙수그레한 손님이,

“내일 추석명절에도 문 열어요? 작년 추석엔 큰집에서 차례지내고 한낮에 왔더니만 먹거리 파는 집이 다 문 닫어서 쫄쫄이 굶었수. 요샌 전하구 달러서 차례만 지내구 바루 오구 또 명절 쇠러 가는 사람이 드물어서 문 연 식당이나 먹는 것 파는 가게에 의외루 손님이 많수.”

하는 거였다. 이걸 들은 남편이 눈을 깜짝깜짝 하더니,

“여보야, 들었지. 일리 있는 소리야. 그리구 요 옆 면사무소마당에서는 해마다 면내 노래자랑을 하잖아 면민들 뿐 아니라 추석명절 쇠러 온 출향인도 찾아오기 때문에 사람들이 들먹일 게야. 우리 내년부터는 밤낮으루 이 추석대목을 보자구.”

남편은 장사로 뼈가 굵은 사람이다. 학교는 중학교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일찍이 군대 갔다 와서 시골서 할 일없어 이곳 200여리 떨어진 읍내 시장으로 들어와 수레에 포장 치고 떡 볶기 장사를 시작해서 지금의 가게를 얻어놓고 기존의 떡볶이에다 예전통닭구이, 닭 꼬치, 꽈배기, 호떡… 등을 더하여 차려놓고는 평일은 물론 5일장대목을 보고 이도 모자라 가게는 아내인 창분이에게 맡겨놓고 혼자 인근 각종 축제장을 예의 트럭을 몰고 돌아치는 것이다. 그러니 그 늙수그레한 손님의 말이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번 추석을 이틀 앞서놓고 시골의 큰형님께 전화를 걸었다.

“큰형, 저 이번 추석에 차례 지내러 못가겠어요.”

“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게냐?”

“그게 아니라요 추석대목을 봐야겠어요. 돈이 빤히 보이는데 그걸 놓치면 안 되잖아요. 집안 식구들, 특히나 조상님껜 죄만스럽지만 저 셋째잖아요. 저 없어두 차례지낼 사람 많잖아요. 대신요 추석 지내놓구 곧 찾아뵐 게요.

“제수씨도 알고 있냐?”

“좀 씹쓰름한 표정이지만 제가 그러자구 하니까 지금은 수긍하는 눈치예요.”

“서운하지만 네가 정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알았다. 그러나저러나 애를 빨리 가져야지. 장사두 좋지만 언제까지 미룰 작정이냐?”

“천천히 갖지요 뭐.”

창분이도 중학교까지만 끄슬렀다. 하루는 이 시장엘 자주 간다는 고모가, 시장 안에선 ‘억척이’ ‘짠돌이’라 소문이 나 있지만 성실하고 듬직한 젊은이라며 중매를 서서 그와 인연을 맺었다. 살다보니 정말 억척스럽고 짠돌이노릇을 하지만 그의 성격이며 자라온 환경을 알고부터는 전적으로 이해하고 그의 행동과 말을 그대로 따랐다.

추석날 낮 장사는 제법 잘됐다. 차례를 지내고 나오는 건지, 아니면 타곳에 가서 차례를 지내고 왔는지 점심나절이 되니 추석빔을 입은 아이들과 어린 아이의 손을 잡은 어른들 손님이 몰려와 사먹고 사 먹인다. 그 늙수그레한 분도 왔다.

“올해는 가게를 열었군. 내 말을 들은 거유. 어때 잘 팔리지요?”

“아저씨 오셨네. 올해도 큰집에 갔다 오셨어요?”

“나 아저씨 아니우. 작년에 환갑 지났는데 예전 같으믄 할아버지 들을 나이유. 그리구 실지루 손자 손녀가 둘이나 있수. 그건 그렇구 큰집에서 차례 지내구 조금 전에 왔수.”

“아유, 근데 굉장히 젊어 보여요. 아직 할아버지로 안 보여요. 자녀분들이 속 안 썩이구 잘들 모시나보다!”

“여하튼 젊어 보인다니 고맙수. 그나저나 그쪽이야 말루 젊은이들이 생활력이 강하우. 요새 젊은이들 같질 않아 보여. 그런 의미에서…”

그러더니 한 쪽 손에 들려 있는 비닐봉지를 좌판 위에 올려놓는다.

“자, 이거 송편인데 큰집에서 싸준 걸 반 덜어 온 거유. 젊은이들 장사하느라 추석 쇠러도 못 갔으니 얼마나 속이 언짢을까 이거라도 먹고 추석 땜이라 생각하슈!”

“아니, 아저씨….”

창분이 비닐봉질 열어보며 말을 잇질 못한다. 그리곤 이내 기둥에 걸려 있는 크고 작은 비닐봉지를 낚아채더니 빠른 손놀림으로 호떡을 비롯해서 봉지 봉지마다 골고루 담고는 다시 큰 봉지에다 함께 담는다.

“아저씨, 이거 그냥 드리는 거예요. 송편에 대한 대까 아녜요. 저희들 성의니까 아무소리 말고 받으셔요!”

그리곤 고개를 돌려 신랑 쪽을 쳐다보니 신랑이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 보인다.

“아니, 이거….”

그 아저씨가 가고 밤 장사를 위해 분달은 트럭에 장사물건을 싣고 창분인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은 것이다.

면사무소마당엔 구경 온 사람들로 붐비고 화려하게 불 밝힌 무대에선 사회자의 너스레에 출연자들이 한껏 말솜씨를 뽐내고 있는 중에, 분달이 창분이 내외는 구경 나온 조무래기며 아주머니들 아저씨들 할머니들 할아버지들을 상대로 물건 팔기에 노래자랑이 끝나갈 무렵까지 여념이 없었다.

“오늘 밤 장사 그래도 괜찮았지?”

“바빴지 뭐, 화장실도 인제야 갔다 온 걸.”

“여보야, 수고했어. 하지만 오늘 쉬었으믄 그만큼 손해 볼 번했잖아. 안 그래?”

“그렇지. 하여튼 자기두 수고 많았어. 근데 말야 우리 가는 길에 내 친정오빠 좀 보고 갈까?

“거긴 가는 길이 아닐 텐데. 여기서 반대편에 있잖아?”

“아니 오빠네 집 말구 가다 보면 산업단지 있지. 바로 그 부근에 이십사 시간 편의점이 있대. 사춘오빠가 농사짓는 짬짬이 아르바이트루 그 편의점에 나간대. 오늘 추석이라 오빠가 밤 근무 한다구 그랬어.”

“그래? 그럼 그러지 뭐. 그 형님 본 지도 한참 되는데.”

편의점에 도착하니 사촌오빠가 반갑게 맞이한다.

“아니 어쩐 일여, 이 밤중에, 추석 쇠러 들 안 갔어?”

“안 갔어요. 장사꾼이 장사해야지요. 요 면사무소 노래자랑에서 장사하구 오는 길에 형님 잘 계신가 하구 들렀지요. 집사람이 여기 계신다구 스래서.”

“오긴 잘했는데, 장사두 좋지만 차례는 지내러 가야지.”

“그러는 오빤 추석에두 돈 벌러 나왔수?”

“나야 차례 지내구 교대하는 사람이 추석 쇠러 간다구 해서 바꿔준 거야. 나는 원래 다음 주에 야근인데.”

“근 그렇구요. 요즘 편의점들 근무자들 기본수당이 올라서 어렵다구 난리던데 여긴 괜찮어요?”

“어, 여긴 그래두 괜찮은 편야. 이 부근에 공장들이 많구 산업단지가 들어왔잖어. 그래서 동남아인들이 많아. 그 사람들이 많이 와. 올여름 얼마나 더웠어. 그들이 일 끝나구 또는 밤늦게까지 일하구 덥구 따분하니까 여기 와서 노다거리다 가기두 하구 또 그네들 합숙소에는 와이파이라는 게 없잖아 그래서 자기들 집에 핸드폰으루 연락두 하구 오락물두 보느라 많이들 여기루 오고 있지.”

“오면 그냥 있겠어, 술이나 주전부리 같은 것 사먹겠지. 괜찮겠네.”

“얜 장사하더니 돈밖에 모르는구나.”

“형님, 오늘 그 사람들이 하나두 안 보이네요?”

“어, 요 건물 뒷마당 탁자에 들 와 있어. 요즘 아침 저녁으루 선선해져서 뜸하더니 오늘 추석이라 쉬는 공장들이 많아서 외롭구 따분하니까 그런지 많이들 오드라구.”

“그래 우리나라말 들 잘 해요?”

“오래 된 사람은 제법 잘 하구 얼마 안 된 사람은 아직 서툴지 뭐. 그리구 즈이 나라 사람들하구 끼리끼리 있으면서 즈이 말루 지꺼려.”

“여보야, 우리 한번 나가서 보자!”

그래서 둘은 뒷마당으로 나갔다. 동남아인들이 두세 명씩 패를 이루어 탁자에 앉아 히히대고 있었다. 그 중 첫 번째 탁자로 갔다.

“아이구 안녕들 하세요. 우리 여기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명절 추석에 외롭고 쓸쓸 들 하지요. 우리 말 알아듣겠어요? 어느 나라에서 들 오셨나?”

그들은 쭈볏쭈볏 거리다 그중 한 사람을 쳐다본다. 말을 좀 해달라는 눈치다.

“아 예, 우리들 베트남에서 왔습니다.”

“한국말 잘 하네요. 베트남에도 추석 같은 명절이 있나요?”

“있어 ‘쭝 투, 쭝 투’야.

아직 발음이나 존대어가 서투르다. 그가 한참을 지껄이는데 이런 말이다.

우리나라의 추석인 음력 8월 15일을 ‘쭝 투’라고 하며 이날은 가족나들이, 맛있는 음식 사먹기 등을 하고, 가족나들이는 주로 ‘달랏’이라는 곳으로 가는데, 여기는 베트남에선 보기 드문 소나무 숲이 있고, 크고 유명한 시장이 있어 추석전날 밤엔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고 한다.

이 달랏이란 말을 듣자 같은 탁자의 친구들이 달랏, 달랏 하며 맞장구를 친다. 자기들도 갔다 왔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리워하고 행복해 하는 눈치다.

옆의 탁자로 갔다. 몽골에서 왔단다. 추석의 날짜와 비슷한 7월11일부터 13일까지 몽골의 국경일이자 명절인 ‘나달축제’가 열리는데, 이날은 웃어른을 찾아뵙고, 놀러가기도 하고, 나무로 된 집을 찾아가 쉬기도 한다고 한다. 또 나달축제는 몽골대통령이 선포하고 하루 종일 씨름경기를 하며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말 경주대회를 하고, 먼 곳에 깡통 등을 세워 놓고 맞추는 활쏘기 대회도 한단다. 그러면서 이 이야기를 하는 이들도 그날을 회상하듯 눈 감고 빙긋이 웃기도 하는 거였다.

그 옆 탁자엔 벵글라데시에서 온 젊은이들이 앉아 있다. 이 나라는 대개 우리나라의 9월에 해당하는 라마단 때 그 보름 전에 열리는 ‘샤브에 바라트’ 라는 명절이 있는데, 이날 밤엔 알라가 죄를 용서하고 사람들에게 축복을 주는 밤이라고 하며,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이웃들이 사탕을 나누어 주고 모스코 즉 이슬람 사원에 가서 밤새도록 기도를 드린다는 것이다. 이 젊은이들 역시 설명하는 동료의 말에 머리를 끄덕이며 흐뭇한 미소를 띠는 것이다.

다음이 필리핀이다. 필리핀은 우리나라 추석에 해당하는 명절을 만성절‘ 곧 ‘올 세인트 데이( All Saint's Day)’라고 한단다. 필리핀은 80%가 카톨릭 신자이기 때문에 이날을 부활절이라고도 하는데 양력으로 11월 1일에서 2일까지로 최대 명절로 꼽히며 이 기간엔 가족들이 오랜만에 모이기 때문에 주로 전통놀이를 하기도 하고 묘지를 찾거나 하는데 절을 하지 않고 기도를 한단다. 그러면서 명절 때 한국의 부인들이 힘들어 하는 것 같지만 자기 나라는 남녀가 반반씩 하기 때문에 별 부담을 안 느낀다고 하는 말을 덧붙인다. 그러면서 이에 동조라도 하듯 다른 동료 친구들도 어깨를 들썩해 보이며 빙긋이 웃는다.

마지막으로 인도네시아 사람들이다. 국민의 대부분이 이슬람교인이라는데, 9월 1일에서 2일에 걸쳐 ‘르바란’이란 축제일이 있어 우리나라 추석명절에 가깝다고 한다. 이 기간 전 30일 동안은 뿌아산이라는 금식을 하는데, 해가 뜨기 전 아침식사를 하고 해 지기 전까지 금식하고 그리고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 식사를 한다는 것이다. 이때는 어린이는 새 옷을 입고 어머니들은 음식장만을 하기도하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뜻에서 대청소를 하고 서로 이웃을 초대하거나 호텔 등에서 파티를 갖기도 한단다. 그러면서 이들은 다 같이 그날을 회상이라도 하는 듯 흐뭇한 표정을 짓는 거였다.

분달이와 창분인 그들과의 대화를 마치고 다시 편의점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분달이가 ‘형님!’ 하더니,

“밖에 있는 동남아인들 탁자마다 음료수하구 빵 좀 갖다 줘야겠어요.”

한다. 그러자 창분의 사촌오빠가 머리를 갸웃거리며,

“왜, 자네가 낼려구? 액수가 많을 텐데?”

“여보야, 얼마가 되든지 얼른 치러드려!”

그러자 창분이도,

“자기야, 알았어. 오빠, 여기 전부 얼마야?”

돈을 치르고 나서 둘은 밖으로 나와 일일이 탁자 위에 음료수와 빵을 앞앞이 놓았다.

그리고 집으로 가기 위해 둘은 차에 올랐다. 늦은 밤인데도 추석의 보름달이 환히 가는 길을 비춰주고 있었다. 핸들을 잡고 아무 말 없이 앞만 주시하고 있던 분달이가 조용히 창분일 부른다.

“여보야!”

“왜, 자기야?”

“우리 내년부터 다시 추석명절 지내러 가자!”

“응. 알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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