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겸 청주시영하보건진료소장

 

비상소집이 있어 일찍 출근하는 길, 시청 앞 화단에 발길이 머문다. 각양각색의 꽃들이 눈길을 사로잡고 놓질 않는다. 이미 꽃을 피운 것도 있고 아직은 벙글지 않은 봉오리도 있어 조화롭다. 꽃잎에 맺힌 이슬 위로 햇살이 영롱하다. 예쁘기까지 한데 은은한 향까지 뿜어내고 있다.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카메라셔터를 누른다. 오늘 나는 저들이 뿜어내는 꽃 향에 취해 저들의 고운 맵시에 취해 행복한 아침을 열며 생각한다. 나는 어떤 유형의 사람일까를.

비상소집이라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였다. 늦은 나이에 공직에 들어와서 보니 모셔야 할 윗분들이 첩첩 산중이었다. 매사에 조심스러웠다. 어떤 때는 교육 갔다가도 어려워서 몰래 피해 올 때도 있었고 직진하면 될 걸 마주치지 않으려고 빙빙 돌아 간적도 있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소심한 성격 탓인가 아직도 주억거리기 일쑤다.

문득 전에 신장실수간호사로 있을 때의 일이 생각난다. 막내간호사와 20살의 나이차 때문인가. 나는 딸 같은 마음에 편하게 대하는데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의문이 들었었는데 이제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용기를 내어 볼 참이다. 윗분들 계신 곳을 지나면서 인사를 했다. 반가워하신다. 악수를 청하는 분도 계시고 안부를 물어 주시는 분도 있다. 나만 너무 어려워하고 데면데면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줄을 서다보니 그 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이면 마주치고 싶지 않은 분의 옆자리에 서게 됐다. 무어라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냥 네! 라고만 대답했다. 머릿속에서 그전에 그 선배와 일들이 떠올라서였다. 아침밥 먹자는 말에 바쁘다는 말을 남기고 소집해제와 동시에 바삐 빠져나왔다. 당황해서 엉겁결에 자리를 피하고보니 내가 너무 옹졸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밥까지 먹자고 할 정도면 편한 마음에 꺼낸 말 이었을텐데. 선배가 내민 손을 잡아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다음에 만나면 내가 먼저 손 내밀고 따뜻한 밥 한 그릇 나누어야겠다.

돌아보면 난 늘 당당하고 완벽하게 살려고만 했었다. 신장실을 떠나면서 간호사들로부터 제일 많이들은 이야기가 ‘신장실간호사로써 존경 합니다.’였다. 이 말은 직업의식이 투철할는지는 몰라도 좀 딱딱하고 냉철한 사람이라는 표현인 것 같아 들으면서 행복하지 않았다. 인간적으로 사람냄새 나는 따뜻한 분이었다는 이야기가 더 듣고 싶었는데.

1시간 반이나 일찍 출근을 하느라 아침 식사를 못한 터라 모닝 빵이랑 원두를 갈아 머신으로 내린 커피와 마주한다. 꽃향기가 여운으로 남은 탓이었을까 커피에서 꽃 향이 난다. 맛있는 하루를 맞이하며 생각한다. 나도 누군가에게 향기 나는 사람이고 싶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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