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처럼 햇살처럼 걷는 길,

가을볕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산막이옛길 풍경.
가을볕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산막이옛길 풍경.

 

눈 내리는 날에는 눈길을 걸어라. 꽁꽁 얼어붙은 어둠의 대지, 두려움 가득했던 내 안을 하얗게 밝히니 눈을 맞으며 눈을 밟으며 눈길을 걸어라. 비 내리는 날에는 비에 젖은 길을 걸어라. 우산을 접어라. 비가 오면 오는대로 온 몸으로 마음으로 젖고 스미며 장작처럼 마른 내 가슴 촉촉이 적시고 새 순 돋게 하라.

낙엽지는 날에는 낙엽을 밟으며 걸어라. 그리운 사람이여, 사랑이여, 우정이여.

외로움에 치를 떨 때, 가슴 시리고 아플 때, 홀연히 떠난 사람 오지 않을 때 낙엽을 밟으며 노래를 하라.

바람 부는 날에는 바람을 맞으며 길을 걸어라. 춥고 배고프며 근본 없는 사내는 바람이 어깨를 스치기만 해도 온 몸을 움츠리고 뼛속까지 후벼오니 바람 부는 날 집을 짓고 바람 부는 날 돛을 올려라. 햇살 가득한 날에는 햇살을 온 몸으로 품으며 길을 걸어라.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가을. 햇살에 숨어있는 삶의 본질을 찾아, 존재의 이유를 찾아 나의 길, 나의 숨결을 만들어라.

그리하여 그대여, 꽃 피는 날 꽃길을 걸어라. 자신의 몸무게보다 몇 백 배 더 무거운 흙을 비집고 일어서 꽃대를 세우니 맑고 향기로운 입술을 열 때 손뼉을 치며 꽃길을 걸으라. 생명을 찬미하고 춤을 춰라. 반듯한 신작로보다 꾸불꾸불 오솔길을 걸어라. 더디게 가더라도, 먼지 푸석거릴지라도 삶의 여백이 있고 삶의 향기가 있으며 그리운 사람에게 함께 가자며 손 내밀 수 있으니 그대여 오솔길을 걸어라. 나만의 신화를 만들어라.



오늘은 바람따라 햇살따라 산막이옛길을, 구름처럼 나비처럼 양반길을 걸었다. 눈길 가는 곳마다, 발 닿는 곳마다 가을색이 짙어가고 있었다. 무위자연(無爲自然), 상선약수(上善若水). 고단한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일까. 몸과 마음 모두 지치고 시릴 때에는 자연 속에서, 자연의 내밀함을 통해 위로받는다. 어머니의 자궁처럼 아늑함과 생명의 온기 가득하다. 본능적이다. 따라서 오늘 나는 본능을 찾아, 본질을 찾아 숲길, 물길, 들길을 호젓하게 걷는다.

산막이옛길이 그렇다. 칠성면 사은리 사오랑 마을에서 산막이 마을까지 4㎞의 옛길을 다듬었다. 이곳의 칠성댐은 우리나라 기술진에 의해 1957년 완공된 최초의 수력발전소다. 소나무숲을 지나면 좌측으로는 칠성댐의 장관과 함께 드넓은 물길이 펼쳐져 있다. 우측은 때묻지 않는 숲의 비밀이 쏟아진다. 물길과 숲길 사이의 아슬아슬한 데크길을 따라 걸으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욕망의 옷을 벗고 번뇌로 뒤척이던 내 삶의 찌꺼기를 토해낸다. 자연이 주는 신묘함과 맑고 향기로운 기운으로 목욕을 한다.

이 길은 수많은 신화와 전설이 있다. 고인돌쉼터, 연리지, 소나무동산, 소나무출렁다리, 정사목, 노루샘, 연화담, 망세루, 호랑이굴, 매바위, 여우비 바위굴, 옷벗은 미녀 참나무, 앉은뱅이약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어렸을 적 할머니 무릎을 베개 삼아 들었던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연리지 나무와 계절마다 빛을 달리하는 수많은 꽃들과 나무와 바위가 시심에 젖게 한다.

산막이옛길이 끝나는 지점부터 충청도양반길이 이어진다. 두 길을 이어주는 다리가 연하협 구름다리다. 167m 길이의 다리를 걷는 기분은 삼삼하고 신선같다. 누가 뭐래도 충청도는 양반의 고장이다. 괴산이 더욱 그렇다. 아름다운 자연과 풍요의 고장이었기에 선비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이곳으로 낙향해 글을 쓰거나 절치부심하며 새로운 도약을 꿈꾼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가. 갈은구곡, 화양구곡, 선유구곡, 쌍곡구곡을 연결하는 8개 코스 85㎞에 달한다.

이 길을 걷다보면 숲의 비밀이 풀리고 옛 사람들의 고단했던 삶의 여정이 열린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이 길은 희망이다.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연은 젊어지는 동시에 늙어지고, 죽는가 싶더니 다시 살아난다.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이 구분되지 않는다. 항상 그러할 뿐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발끝에서 땅의 기운이 솟아오르더니 온 몸에서 젖은 숲의 냄새가 난다. 길섶의 풀벌레 우는 소리가 가을이 깊어가고 있음을 웅변한다. 내 마음에도 여백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자연처럼 살 것을 일갈한다.



글 변광섭 <문화기획자, 에세이스트>

사진 송봉화 <사진작가, 한국우리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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