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래 전 제천시행정복지국장

김흥래 <전 제천시행정복지국장>

(동양일보) “어머, 이게 웬 거예요?”

“고모가 추위에 많이 다니는 일을 하잖아요.”“언니도 없는데, 이렇게 비싼 걸...”

“더 필요한 사람이 입어야지요.”

“언니, 고마워요.”

어느 올케와 시누이의 대화이다. 집안의 먼 친척 되시는 분들이 남편에게 선물 받은 밍크코트를 치수 바꿔 시누이에게 선물하였던 것이다.

요즘에는 좀 더 다양하고 좋은 옷들이 많지만 예전에는 여성들의 외출복 가짓수가 많지 않았다. 최근에는 옷의 브랜드를 확인하고 가치의 정도를 파악하지만, 산업화 시대에는 종류가 적어 외견만 보아도 그 가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시 여성들에게 가장 선망의 대상이 되는 옷은 바로 밍크코트였다. 요즘도 다양한 각종 모피코트가 선호되기는 하나 그 시절 여성들에게 밍크코트는 입는 층과 그렇지 않은 층으로 구분될 정도로 동경(憧憬)의 대상이었다.

1980년대 이전만 하여도 시계조차 귀하여 결혼예물로 받으면 차고 있던 시계를 친정엄마 드리는 게 효도였으며, 다음 상견례 때 만난 안사돈 손목에 시계를 바라보는 예비 시어머니의 눈길은 부러움에 가득하였다. 그로 인해 일부 며느릿감은 일찌감치 시어머니의 눈 밖에 나기도 하였으며, 반면에 지혜로운 친정엄마는 애시 당초 시어머니에게 시계를 드리도록 하였다. 그러한 시절이니 밍크코트를 양보할 정도의 배려는 보통의 마음으로는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집안의 대소사 때 만나면 밍크코트를 입고 온 그 딸에게 시선이 집중되었으며, 선망의 대상 이었다. 세상사 일이 매사에 그렇듯이 당시 부(富)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옷을 입고 왔으니 더러 시샘도 할 법하였지만 사 준 사람이 다름 아닌 올케라는 사실에 모두들 체념 섞인 칭찬을 하였다.

얼마 지났을까? 집안 문중의 큰일에 모였다.

그 올케가 왔는데 밍크코트를 입고 있었다. 비싸고 귀한 터라 시누이가 올케에게 잠시 빌려주었나 보다 무심코 지나쳤다. 요즘이야 옷이 조금만 구겨지면 버리고 새 옷을 살지언정 다른 사람의 옷을 빌려 입는 것은 드문 편이지만, 예전에는 교복 물려받기ㆍ큰 일 때 이웃에서 옷 빌려 입기 등이 심심찮게 있었다.

잠시 후 그 시누이가 들어오는데 사람들은 어리둥절하였다. 올케에게 빌려주었던 밍크코트를 입고 있지 않은가?! 모여 있던 집안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빌려주려면 아예 며칠은 돼야지. 양장점 가봉 하듯이 잠시 입게 하고는 다시 달래 입는 법이 어디 있어?!’

그 순간 반갑게 서로 손을 잡으며 인사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그 시누이·올케였다.

보는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져 살펴보니 복제한 듯 두 사람 모두 밍크코트를 입고 다정히 얘기하는 게 아닌가?!

사연인 즉, 시누이에게 사위가 있었는데, 밖에서 일 많이 하시는 장모님 드린다며 큰 맘 먹고 밍크코트를 선물하였다. 이에 그 시누이는 치수 조정하여 올케언니에게 보냈던 것이다. 올케는 생각지도 않은 밍크코트를 받게 된 것이다.

양 집안의 재정지출을 따지고 보면 각각 밍크코트 하나씩을 구입한 격이다. 그런데 자신의 것을 다른 이에게 주어 보람을 느끼고, 어느 날 자신은 생각지 않은 밍크코트를 얻게 되어 즐거움을 얻었다. 게다가 집안의 단단한 화목(和睦)이라는 가외의 소득까지 생기는 결과가 되었다.

집안의 그 아주머니는 지금은 할머니가 되셨으며, 그 주변분들 역시 평안하게 늙어 가신다. 언제 생각해 보아도 그 귀한 밍크코트를 입지도 않고 바로 시누이에게 보낸 그 분의 아름다운 배려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일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