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유영선 동화작가
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이번 추석은 ‘치매’가 화제였다.

KBS가 스페셜 특집으로 방영한 ‘주문을 잊은 음식점’ 때문이었다.

‘동파육’ 주문이 순식간에 ‘팔보채’로 바뀌고, 주문을 받으려다 잊어버리고 손님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떨며 물로 건배하고, 후식 주는 것을 잊을까봐 메인음식 전에 가져다주고, 주문한 음식이 다른 테이블로 나가는 작은 소동들을 보면서 웃다가 슬프다가 마음이 짠했다.

‘주문을 잊은 음식점’은 2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알바생으로 뽑힌 70~80대 경증 치매인 5명이 음식점을 준비하고 영업에 나서는 과정을 엮은 캐주얼 다큐멘터리다.

방송은 재미와 신선한 충격으로 시선을 끌었다. 후식대신 콩가루를 잘못 내오고는 “죄송합니다. 제가 치매는 처음이라...”고 웃거나, 음식을 잘못 내보내고도 나는 모른다는듯 해맑게 웃거나, “구웃~~” 엄지손가락을 올리는 리액션 등 소소한 행동이나 말들이 모두가 유쾌하고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가장 슬펐던 장면은 찾아온 제자를 한눈에 알아보고 반가워서 포옹을 하던 분이 제자가 떠난 뒤 그 만남을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이었다. 중학교 수학교사 출신인 그 분은 제자를 보자마자 반기면서 “내 초임 때 반장이었던 명오”라며 자랑을 하고 음식을 주문받아 날라다 주었다. 그런데 그 제자가 떠난 뒤 “반가운 손님 기억하세요?”라는 제작진의 질문에는 “누가 왔었나? 설마 내 제자가 온 건 아니지?”라며 기억하지 못했다.

추석을 쇠러 온 숙모님도 친정어머니도 그러시다고 했다. 올해 101세가 되신 친정어머니는 선물로 가져간 과자를 보며 “일제네. 비싼 과자 사왔네”하고 좋아하며 드시다가 “이거, 일제네. 누가 사왔지?”하시곤 “제가 사왔어요”하면 “으응”하며 드시다가, 또다시 “일제네. 이거 어디서 났지?”를 수없이 반복하신다고 했다. 뇌종양으로 세상을 뜨신 아버지도 수술 후 투병을 하실 때 그러셨다. 집으로 찾아온 내 친구들을 보고 “언제 왔니?”하고 아는 체를 하시곤, 차를 마시고 있으면 또다시 “언제 왔니?”를 반복하셨다.

‘주문을 잊은 음식점’이 종료가 되고 다섯 치매노인들과 제작진의 대화를 보며 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났다.

“기억하실 수 있겠어요?”

“글쎄요. 잊어버릴 거라고 생각 안해요. 잊어버리면 할 수 없지만... 그렇게 하고 살아요.”

“길에서 만나면, 저 다시 만나면 알아봐야 해요.”

“그래야 하는데 자신을 못하겠네.”

“.... 제가 먼저 인사드릴게요.”

그렇다. 기억을 못하면 먼저 인사를 하면 된다. 기억하지 못해 수없이 물으면 수없이 대답하면 된다. 조금씩 기억을 잊어가도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어느 순간부터 기억과 언어와 시공간과 판단력을 잃어도 그는 내 가족이며 내 이웃이다.

‘주문을 잊은 음식점’은 우리 사회에 새로운 화두를 던져주었다. 무섭고 외면하고만 싶은 나이듦, 병듦, 죽음...그리고 잊어짐을 가까이서 바라보게 만들었다.

지난해 우리나라 치매환자는 72만 5000명.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로 고통받고 있다고 한다. 2050년에는 220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니, 어쩌면 치매는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질병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주문을 잊은 음식점’ 은 치매를 바라보는 어두운 시선을 걷어내게 한 시의적절한 프로그램이다.

‘아내는 묻고/나는 대답하고,/짜증내고/후회하고.// 또 묻고/대답하고,/화내고/반성하고.//하루종일/묻고/하루종일/대답하고//짜증내고/화내고/후회하고/반성하고.’

-홍해리 시 ‘문답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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