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도나루 황포돛배의 추억 여행 87년 술도가 속으로 떠나는 풍류

87년의 역사를 간직한 목도양조장

목도나루에 황포돛배가 들어오면 온 동네 사람들이 모였다. 서울 마포나루에서 출발한 소금배가 충주 목계나루를 거쳐 이곳으로 온 것이다. 배에 있던 소금자루는 청년들과 아낙네들이 지게에 싣고, 머리에 이고 제 주인을 찾아 나섰다. 텅 빈 배에는 이 마을의 특산품이 가득 실렸다. 고추와 마늘과 기름진 쌀과 잡곡들이었다.

황포돗배가 다녔던 달래강
황포돗배가 다녔던 달래강

이렇게 목도나루에는 황포돛배가 들어올 때마다 큰 장이 섰다. 그러다가 5일장으로 이름을 날리면서 풍요의 마을이라는 명성이 자자했다. 일제 강점기의 적산가옥도 여러 채 있었다. 목도나루의 달래강 풍경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봄에는 상춘객으로, 여름에는 강수욕장으로, 가을에는 단풍놀이로 인기였다. 겨울의 하얀 설경은 또 얼마나 정겨웠던가.

풍요의 마을이 고요해졌다. 배가 들어오지 않으면서 장이 서도 예전처럼 시끌벅적하지 않다. 그날의 추억은 애틋하고 현실은 녹록치 않다. 이 동네 사람들도 조금씩 늙어갔다. 잊혀져 가고 사라져 가는 슬픔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말없이 흐르는 달래강과 푸른 산과 기름진 들녘만이 이곳이 풍요의 고장이었음을 묵상하고 있다.

목도양조장의 추억이 깃든 술통
목도양조장의 추억이 깃든 술통

이 마을에 오래된 양조장이 있다. 바로 목도양조장이다. 1931년에 창업하고 39년에 건립되었으니 87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양조장 문을 열자마자 술 익는 냄새가 나그네를 반긴다. 사람의 몸은 본능적이다. 어릴 적 어머님이 고두밥을 찌고 누룩을 넣어 술을 빚었다. 배가 볼록한 항아리, 술 익는 냄새가 나면 항아리 주둥아리에 코를 비비며 그 맛과 향을 즐겼다.

목도양조장은 찹쌀로 빚는다. 전통 방식 그대로 누룩으로 만들고 멥쌀 고두밥으로 배양해서 효모를 만든다. 그게 밑술이라고 부르는 주모다. 밑술은 다시 한 번 누룩과 찹쌀 고두밥을 섞은 뒤 옹기에 맑은 물과 함께 넣고 발효시킨다. 술이 익는 시간은 고요하다. 그 안에서 들숨과 날숨이 이어지고 저들만의 신명나는 짝짓기를 한다. 절정에 이르면 뽀글뽀글 사랑이 익어가는 소리와 향기로 가득하다. 참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술이 익으려면 보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술을 빚는다는 것은 자신을 수행하는 것이다.

목도시장의 주민 풍경
목도시장의 주민 풍경

술맛은 밑술이 좋아야 하고 좋은 물과 빚는 이의 정성이 결정한다. 이 집 주인장 이석일 씨 부부는 오랜 전통의 비법 그대로, 정성을 다해 마음으로 빚는다. 모든 것을 손으로 하니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없다. 막걸리와 탁주를 소량으로 만들어 몇 곳에 배달한다. 주인장이 막걸리 요거트라며 한 그릇 내민다. 그 맛이 달고 차며 술향기 가득하다. 풍경에 젖고 황홀한 맛에 물든다. 천상병 시인은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밥이나 마찬가지다. 밥일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더해주는 하나님의 은총이다”라고 찬미했다.

술맛만 좋은 게 아니다. 목도양조장의 87년 역사가 오롯이 살아있는 건물의 구석구석이 애틋하다. 공간이 사라지면 역사도 사라지고 사랑도 사라진다는 것을 묵언수행 하듯 버텨 온 것이 대견하다. 양조장 입구에서부터 길게 뻗은 좁은 집 안의 통로가 매력적이다. 통로 양쪽으로 쌀을 찌고 누룩과 주모를 만들며 술을 빚었던 방들이 얼굴을 삐쯤삐쯤 내민다. 낯선 손님이 궁금했던 것이다. 마당과 사랑채와 골방과 천장과 굴뚝 모두 신묘하다. 눈길 닿는 곳마다, 발길 머무는 곳마다 애틋하다. 낡음의 미학에 경배를 한다.

목도양조장의 추억이 깃든 술통
목도양조장의 추억이 깃든 술통

80년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곳도 있다. 오랜 세월 술을 빚어오면서 사용했던 도구와 자료와 사진 등을 버리지 않고 모았다. “밥을 잘 쪄야 술맛이 좋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이 모든 것이 꿈이었을 것이고, 희망이었을 것이며, 사랑이었을 것이다. 삶의 최전선이다. 풍경속에 깃든 상처를 본다. 그 상처가 이곳의 역사다. 그리하여 이곳은 80년의 역사를 간직한 스토리텔링이자 에코뮤지엄이다. 작은 술박물관이다.

양조장을 나와서 목도시장 골목을 걸었다. 방앗간과 이발소와 떡집과 농약방과 식당들이 도열해 있다. 그 날의 영광을 꿈꾸지만 요원하다. 마을도 낡아가고 있고 사람들도 야위어 가고 있다. 인적은 드물고 두세두세 모여 있는 주민들의 풍경은 모든 것을 부려놓은 것처럼 쓸쓸하다. 이따금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희망을 이야기한다. 이 동네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눌러 앉았다며 좋은 일을 도모하고 싶어 한다.

목도시장 전경
목도시장 전경

 

탁닛한은 몸 안에서 몸을 관찰하고, 느낌 안에서 느낌을 관찰하고, 마음 안에서 마음을 관찰하라고 했다. 옛 풍경속에 들어왔으면 그 풍경에 나의 몸과 마음을 맡겨야 한다. 자연 속에 들어왔으면 그 자연에 나의 모든 것을 던져야 한다. 목도는 갈 길 잃은 나그네에게 달달한 옛 추억을 준다. 무디어진 내 삶의 촉수를 깨운다. 맑고 향기롭게, 여백의 미를 만든다. 두근거림만으로도 오늘은 가난하지 않다.

글 변광섭 문화기획자, 에세이스트
사진 송봉화 한국우리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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