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범 홍성교육지원청 장학사

최원범 <홍성교육지원청 장학사>

몇 년 전 중학교에서 담임교사로 근무했던 때의 일이다.

중간고사 일정이 발표되어 학급 종례시간에 고사 일정을 출력하여 교실 게시판에 부착하였다. 종례가 끝나고 학생 여럿이 게시판으로 몰려 나왔다.

학생들이 고사 일정을 메모해 가려고 하는 쯤으로 생각하던 나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학생들은 핸드폰으로 고사 일정 메모를 찍는 것이었다. 펜으로 종이에 메모하는 것이 아닌 카메라로 촬영하여 저장하고 있었다.

나의 학창시절에는 노트 글씨를 잘 쓰는 학생이 많아 부러움을 사기도 하였다.

선생님들께서도 칠판 판서를 많이 하다 보니 각각의 특징이 있었고, 어떤 선생님은 흉내 내기 어려울 정도로 판서 글씨를 잘 쓰시는 분도 계셨다. 학생들은 노트 글씨를 잘 못쓰면 머쓱하기도 하였다. 한때 군대에서는 차트 병사가 있어 글씨는 잘 쓰는 병사가 대우받기도 했던 때도 있었다.

요즘 핸드폰에는 다양한 메모 및 스케줄 관리 어플이 있다. 컴퓨터 바탕 화면에 저장할 수 있는 일정관리 프로그램도 많은 편이다.

나도 추천수가 많은 어플을 스마트폰에 설치해 놓았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게으름 때문이기도 하지만 처음 몇 번 사용해 보니 수첩에 메모하는 것과 같지 않고 오히려 업무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어느 주말 책장을 정리하다가 신규 교사시절 교무 수첩을 발견하여 내용을 살펴보았던 경우가 있었다.

풋풋한 얼굴의 학생 사진과 함께 상담했던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글씨를 보니 지금과는 다른 글씨체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글씨체도 변한 것이다.

업무 수업의 메모를 펼쳐보면 그날의 일들이 한편의 단편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급하게 받아 적은 메모, 꼼꼼하게 적은 업무관련 메모, 추진했던 행사, 받아 적은 연락처 등 이러한 것들은 스마트폰의 어플이나 컴퓨터 메모 프로그램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

발명왕 에디슨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따라 수많은 메모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에디슨이 평생 동안 메모한 노트는 3500권에 달한다고 한다. 이러한 에디슨의 메모 노트는 에디슨이 세상에 내놓은 수많은 발명의 자산이 되었다. 에디슨의 메모는 에디슨이 위기에 빠졌을 때 위기를 벗어나는 큰 힘이 되었다.

에디슨이 출자한 철광석 채굴 기업이 파산 직전에 몰렸을 때 에디슨은 자신의 메모 노트를 읽으면서 그 기업의 조직과 기술을 잘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고 한다. 에디슨의 자신이 해 놓은 꼼꼼한 메모를 통하여 위기의 기업이 시멘트 제조로 사업을 전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글에는 사람의 개성이 드러난다고 한다. 유명 정치인들의 사인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과 인생을 논하기도 한다. 필체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 전체의 축소판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10월 9일은 572돌 한글날이다.

세종대왕님께서 물려주신 아름다운 한글을 나의 손으로 직접 메모해 보는 습관을 가져보자. 아울러 우리 아이들에게 직접 손으로 글씨를 쓰도록 해보자. 손을 많아 사용할수록 뇌가 발달한다고 한다. 언젠가 우리 학생들의 메모가 한편의 영화 단편처럼 우리 아이들에게 나가올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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