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래강 절경에 물들고 시심에 젖고

홍범식고택 내부

새들은 하늘을 날면서, 거북이는 엉금엄금 기어서, 소나무는 모진 비바람 눈보라를 딛고 일어나, 미루나무는 햇살에 서걱이면서, 꽃들은 굳게 다문 옥문을 열면서, 장독대 들숨날숨 장이 익어가면서, 밤하늘 빛나는 별은 달님과 숨바꼭질하면서 서로의 길을 간다. 생명을 찬미하고 희망을 노래한다.

어린 아이는 넘어졌다 일어서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골목길에서 소꿉장난을 하면서, 알밤을 털면서, 대추를 한 입 가득 물면서, 책을 읽으면서 저마다의 풍경을 만든다. 화장을 하면서, 쇼핑을 하면서, 여행을 하면서,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면서, 단잠을 자며 고운 꿈을 꾸면서, 그대 손을 잡고 길을 걸으면서, 삶의 향기를 빚으며, 가장 아름다운 날을 꿈꾼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희망이다. 사랑이다.

순국열사 홍범식고택
순국열사 홍범식고택

괴산에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가슴 뜨겁게 살며 사랑하며 희망의 불꽃을 피운 사람들이 많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홍범식과 홍명희 부자다. 홍범식은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에 분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순국열사다. 이후 전국 곳곳에서 그의 뒤를 이어 자결하는 순국자들이 줄을 이었다.

그가 죽기 직전에 아들 홍명희에게 남긴 유서는 나라 잃은 설움과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열망이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웅변한다. “기울어진 국운을 바라잡기엔 내 힘이 무력하기 그지없고 망국의 수치와 설움을 감추려니 비분을 금할 수 없어 스스로 순국의 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구나. 피치 못해 가는 길이니 내 아들아, 너희들은 어떻게 하던지 조선 사람으로 의무와 도리를 다하여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 죽을지언정 친일을 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말아라.”

아들 홍명희의 마음은 천근만근이었을 것이다. 그날의 아픔과 분개를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는 1919년 3월 19일 괴산지역의 만세시위를 주도했다. 좌우합작전선인 신간회 창립을 이끌었다. 그의 생각과 소신을 글로, 행동으로 실천하고자 했다. 소설 <임꺽정>도 피 끓는 조국애의 산실이다. 순 우리말로 된 아름다운 글 속에는 정의로운 세상, 행복한 이 땅을 일구겠다는 의지와 열정이 녹아있다.

제월리에 서 있는 홍명희문학비
제월리에 서 있는 홍명희문학비

불행하게도 괴산읍 동부리 홍범식 고택에는 아들 홍명희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는다. 이광수, 최남선과 더불어 조선의 3대 천재로 대표되었던 인물이 아니던가. 독립운동가, 언론인, 교육자, 학자, 소설가, 정치인으로 격랑의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인물이다. 그렇지만 해방이후 북한으로 올라가 내각 부수상을 지냈다는 전력 때문에 이름 석 자를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됐던 것이다.

고산정 내부의 편액
고산정 내부의 편액

제월리의 제월대에는 당신의 뜻과 얼이 담겨있는 비문이 있다. 소나무 숲과 괴강의 물길이 무량하다. 그날의 아픔을 흐르는 물살에 띠배 하나 띄어 보냈는가. 하늘과 땅, 길과 숲, 사람과 자연이 맞닿아 있는 제월대의 풍경이 한유롭다. 제월대 고산정(孤山亭)에서 잠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선조 29년에 충청도 관찰사 유근이 이곳에 만송정과 고산정사를 짓고 광해군 때에 낙향해 은거했다.

김득신이 세운 독서재 취묵당
김득신이 세운 독서재 취묵당

제월대에서 북쪽으로 5분 남짓 달리면 충민사와 취묵당이 위치해 있다. 충민사는 임진왜란 때 진주대첩의 주장 충무공 김시민과 문숙공 김재갑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하는 사당이다. 사당을 품고 강변길을 따라 참나무 숲속으로 들어가면 취묵당이 나그네를 반긴다. 1662년에 백곡 김득신이 세운 독서재(讀書齋)다.

김득신은 김시민장군의 손자다. 그는 소문난 독서광이었다. <사기>, <백이전>은 무려 1억1만3000번을 읽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을 억만재로도 불린다. 그는 영감과 직관을 통해 자연의 생명의 가치를 시로 남겼다. 5언·7언 절구를 잘 지었으며 시어와 시구를 다듬는 재주가 좋았다. 취묵당의 팔작지붕 목조기와가 생얼미인이다. 괴강의 절경이 한 눈에 들어오니 이곳에서 책을 읽고 시심에 젖어야겠다.

조선의 유학자 박지겸의 애한정
조선의 유학자 박지겸의 애한정

다시 발길을 검승리 언덕의 애한정으로 돌렸다. 소나무 숲으로 둘러 쌓여있는 이곳은 조선 중기의 유학자인 박지겸이 광해군 6년(1614)에 지은 정자다. 박지겸은 정치가 문란해지자 이곳에 낙향해 정자를 짓고 자기의 호인 애한정으로 정자의 이름을 지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서당의 역할도 했다. 이밖에도 괴산에는 달래강을 따라 수많은 구곡이 있고 구곡마다 선비들의 책 읽는 소리와 시심과 애국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애한정의 편액
애한정의 편액

아름다움은 자신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을 깨달아 알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때 자신의 몸에 배어들기 시작하는 ‘아우라’를 말한다. 아우라는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고유한 몸짓이다. 히브리어 토브(tob)는 ‘착하고 향기로움’을 뜻한다. 자신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고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찾아내며 지켜내는 행위다. 나만의 향기를 찾아, 나만의 아름다움을 찾아 길을 나선다.

 

글 변광섭 에세이스트
사진 송봉화 한국우리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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