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숙 청주시자전거문화팀장

 
황명숙 <청주시자전거문화팀장>
황명숙 <청주시자전거문화팀장>

 

개천절 아침, 거실 소파에 앉아 있으려니 파란 하늘과 창문으로 들어오는 살가운 바람이 양 볼을 간질간질 만진다. ‘자전거 타기 참 좋은 날이다’를 수십 번 되뇌며 그냥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 자전거와의 인연을 떠올리며 혼자 웃어본다.

오창 산단의 자연환경을 좋아하는 신랑은 아이들과 산책하기, 자전거 타기를 즐긴다. 산책은 즐겁지만 자전거 타기는 나에겐 힘겨운 노동이었다. 공무원 체육대회 때 경품으로 받은 내 자전거를 타는 남편, 세 발 자전거를 졸업하고 큰 자전거를 타는 두 딸, 그리고 그 뒤에 아이들 겉옷을 팔에 걸고 헉헉거리면서 열심히 뛰는 나. 추억할수록 참으로 웃게 만드는 모습이다. 산단 외곽을 돌고 집에 오면 나만 땀에 젖은 생쥐 꼴이 된다.

나를 굳이 밖으로 나가게 만드는 신랑이 원망스럽고, 자존심도 상하고 오기가 생겨 자전거 배워야겠다는 의지를 굳힌 것이 2015년 봄이다. 학생용 자전거 1대를 차 뒤에 싣고 온 가족이 문의 대청댐 잔디공원으로 향했다. 너른 잔디 위에서 넘어지기를 수없이 반복했지만 첫날은 실패했다. 그로부터 네 번의 도전 끝에 드디어 중심을 잡고 두 바퀴가 굴러갔다. 그날의 감흥은 아직도 생생하다.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 나와 자전거의 인연이 시작됐다. 주말이면 아파트 주변을 초등학생용 자전거를 타고 돌고 돌았다. 어른이 낮고 낮은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의아했는지 지나가는 유치원생, 어린이들의 시선이 머물곤 했다. 어쩌랴, 다리가 짧아 어른용 큰 자전거는 탈 수 없는걸.

직진에 자신감이 생기자 바람을 느끼고 싶었다. 드디어 내 자존심을 세울 날이 온 것이다. 예전의 땀 뻘뻘 흘리며 자전거를 뒤따르던 볼품없는 내가 아닌 당당히 자전거를 타고 두 팔 벌려 바람을 안는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온 가족이 모두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현실은 가혹했다. 상가 앞을 지날 때면 좁고 경사진 곳이기에 자전거에서 내려 끌어야 했고 횡단보도에서도, 에어라이트 근처에서도, 앞에서 걸어오는 사람을 보면서, 뒤에서 들리는 ‘따르릉’ 소리에도 겁먹고 내려야 했기에 가족들과의 거리는 멀어져만 갔다. 두 팔 벌려 맞는 바람은커녕 두 팔로 자전거를 끌고 다녀야 했다. 땀범벅도 매한가지.

연습을 위해 신랑이 즐겨 타는 미호천으로 갔다. 오창산단을 출발해 끝없는 비포장 농로를 지나고, 언덕을 넘어 눈으로만 보던 붉은색 자전거도로와 라디오 음악소리, 흔들리는 갈대들, 미호천의 바람과 첫 맞선을 봤다. 아름다운 별천지다.

환희도 잠시, 페달 위 ‘시간 늘리기’가 시작된다. 통행량이 거의 없는 목재데크를 선택하고 언덕을 향한 페달 밟기 돌입. 그러나 내리막길에 서 있는 볼라드 사이를 빠져나오지 못한 채 접촉사고로 자전거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내 옆구리에는 두 손바닥 넓이의 시퍼런 멍이 들었다. 뼈를 통해 전해오는 그 아픔이란. 멍은 한동안 자전거 훈장이 되고 청주시의 자전거 보험을 알게 했다. 물론 혜택은 받지 못했지만….

미호천 자전거도로의 봄, 초여름, 온 가을, 저녁노을은 한동안 잠자던 소녀감성을 깨웠지만 아이들이 중학교에 가면서 휴지기를 맞았다.

인사이동으로 자전거와의 인연이 다시 시작됐다. 청주시의 자전거 문화 활성화란 숙제와 함께.

여전히 S자 타기는 못하지만, 자전거 타기가 힘겨웠던 만큼 자전거 도로를 정비하고 살피면서 천천히, 꼼꼼히, 서두르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안전하게 자전거를 타면서 문화를 입혀보려 한다. ‘여행하기 좋은 전국의 자전거 도로’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는 그날을 위해 팀원들과 열심히 오늘도 페달을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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