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 희 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 희 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 하명이가, 하는 일 없이 놀면서 공연히 돌아다니기만 한다.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라면 힘에 부쳐서 농사일은 못해 그러는 걸 거라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이건 나이 30줄에 들어서지 않았는가. 우연만 하면 연만한 부모님들이 꾸벅꾸벅 하는 농사일이라도 거들어 주면 오죽이나 좋을까마는 이는 고사하고 매일이면 매일 온 동네를 휘저으며 돌아다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 사람이 있으면 말을 건다. 요즘 건강은 어떠냐고, 나가 있는 자식은 언제 왔다 갔냐고, 애들 학교는 잘 다니느냐고, 올 농사는 좀 어떠냐고 등등 그 집집의 안부며 참견을 다한다. “하명이 말여, 읍내 고등학교 다닐 때꺼정은 안존한 것이 말수가 적었잖여. 그런데 영 아녀.” “그러게 말여, 뒤늦게 말보가 터졌는지 온 동네 집집의 일에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봇물처럼 잔뜩 고여 있는 말을 내쏟듯 하니, 하루 이틀 아니고 성가셔 죽겄어.” “저는 그게 잠간인 것 같게 여기지만, 오줌 누는 새에 십 리 간다고 하지 않는가?” “그려, 잠시 동안이나마 쉬는 것과 쉬지 않고 계속하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데 말이지. 이건 쉬지 않고 육장 그러니 참 어려워, 어려워!” “공중에 뜬 놈 같이 빙빙 돌아가며 그러니 할 일이 그렇게 없어 그래 젊은 놈이.” “동네 어르신들 말이 있어. 생판 놀면서 공연히 돌아치기만 하는 발록구니 하명이는 석현이완 딴판이라구 말여”

석현인, 몸을 비틀면서 부스대는, 다시 말해 무슨 일을 하고 싶어서 애를 쓰며 들먹거리는 젊은이다. 하지만 집안이 빈한해서 농사지을 땅도 장사해볼 밑천도 없다. 군대 제대하자마자 노는 게 지겹다고, 한 푼이라도 집안 일 돕겠다며 돈이 될 만한 일은 이것저것 해보지만 여의치 않아 중도에서 집어치운 것도 많다. 그래도 몸이 근질근질 거린다며 다른 일거리 찾아 나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높이 배운 것도 없으니 더 이상 좋은 직장은 아예 넘보지도 않고 그 아랫자리를 찾는데도 마땅치가 않다. “석현이 그 녀석 그거, 애는 바지런하고 무엇이든 할려고 애는 쓰는데 워낙 가진 것 없고 한 가지라도 기술이 없으니 참 딱햐.” “이마빼기를 뚫어도 진물도 아니 날 녀석이제. 그만큼 몹시 억척이란 말여.” “그래도 놀지 않고 그리도 바스락대니 언젠가는 성공할 거여.” “그나저나 그 녀석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겨?” “그 녀석 애비한테 듣기로는 저 대도시 외처에 있는 가구점에서 여리꾼으로 있다는겨.” “여리꾼?” “가게 앞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을 가게 안으로 끌어들여 물건을 사게 하고는 가게주인으로부터 삯을 받는 사림이란 말여.” “여하튼 그 녀석 안 해보는 것 없이 제 뜻 살려 바지런을 떠니 신통해, 신통해.” “그렇게 무슨 일이나 할려고 들먹거리는 짓을 발싸심이라 한다며 어른들이 석현일 발싸심하는 녀석이라며 칭찬을 하면서도, 공연히 공중잽이로 발록구니 노릇을 하는 하명이를 안 됐어 하시잖여.” “그려, 그래 하는 말인디, 우리 한번 그 발록구니 하명이를 발싸심 석현이와 붙여줘 보는 게 어떨까. 같은 또래끼리니께 둘이 뭐 허물없어 할껴.” “거 괜찮겄네.”

이래서 이장이 날짜 잡아 둘을 회관 방으로 불러들였다. “뭐 여러 말 하지 않겠네. 니 둘은 같은 또랜데도 하나는 외지에 가 있고 또 하나는 마을에 있네. 그런 걸 나무래는 게 아니야. 다 처지가 다르고 성격이 다르니까. 근데 하나는 제 뜻을 살려가고 있고 또 하나는 재주를 못 살리고 틀어박혀 있어. 보다시피 석현이 자넨 여러 일 거치면서 자네의 뜻을 펴가고 있는 것 같아 동네서도 안심이 되네만, 하명이 자넨 여러 사람과 집집의 안부를 챙겨주는 말재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걸 살려 내 뜻과 집안 살림에 보탬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동네서도 안타깝게 여기고 있네. 그래 하는 말인데, 둘이 대화를 나누면서 좋은 방향을 모색해 보게나.”

그래서 둘의 시간을 주었는데, 무슨 말이 오가고 무슨 의견을 주고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이튿날 하명인 석현일 따라갔다.

그리고 한 달 후, 하명이 아버진 석현이가 있다는 가구점을 석현이 아버지한테 물어 찾아갔다. “하명이요 잘 있어요. 매일 매일 만나는데요 뭐. 요 길 건너 가구점에서 나 같이 여리꾼으로 있는데 걔 말재주가 좋아 손님을 놓치지 않는다고 소문이 나 있어요. 한 달 안엔 집에 소식을 안 보낸다구 하더니 아직 핸드폰을 안 했구먼요.”

그는 동네로 돌아와 이장을 만났다. “하명이 만나구 왔네. 아주 잘 있어. 다음 주에 둘이 와서 동네 분들에게 인사드리겠다고 하더군.”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