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용 전 금강유역환경청장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을 꼽으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 인터넷, 라디오, 자동차, 항공기, 항생제, 에어컨 등 보는 시각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플라스틱도 그 후보 중 하나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본격적인 플라스틱 시대는 1937년 미국 듀폰사에서 석탄으로 나일론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다양한 플라스틱이 생산되면서 쓰임새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라.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한시라도 생활할 수 있는가. 내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자판기와 모니터부터 프린터, 핸드폰, 하다못해 음료수병, 과장봉지, 옷까지 플라스틱 재질을 활용하지 않은 것이 없다.

플라스틱 덕분에 세상에 필요한 물건을 보다 저렴한 비용에 좀 더 쉽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래서 플라스틱 없이는 하루도 생활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지난 100여년의 누적된 역사가 쌓은 폐해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형국이다. 플라스틱은 자연 상태에서 스스로 분해되는데 수 백 년이 걸린다. 이러한 플라스틱의 잘 썩거나 분해되지 않는 특질이 한편에서는 장점이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골칫거리가 된 것이다. 초창기 만들어진 플라스틱이 아직도 자연계 어딘가에서 썩지 않고 그냥 머물러 있다고 상상해 보라.

플라스틱의 폐해가 제일 먼저 촉발된 곳은 해양이다. 해상에 떠다니는 폐플라스틱을 먹고 폐사하는 해양생물이 빈번히 목격되었기 때문이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플라스틱은 연간 3억톤이 생산되어 이 중 최대 1300만톤이 바다로 유입되어 해양생물이 해마다 10만 마리씩 목숨을 잃고 있다고 한다. 특히 1997년 LA에서 하와이까지 요트로 횡단하는 경기에 참가한 찰스 무어가 태평양 위에 존재하는 ‘쓰레기 섬’을 발견한 바 있다. 이후 이 쓰레기 섬의 실체에 대해 추측만 무성하였는데, 한 연구단체가 최근 그 실체를 밝혔다. 이 연구단체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이 쓰레기 섬의 넓이는 우리나라 면적의 15배가 넘는 약 155만㎢에 이르고 플라스틱 쓰레기의 개수는 약 1조 8000억 개, 무게는 8만 톤이 된다고 한다. 더구나 이러한 쓰레기 섬이 북태평양 해상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북대서양, 인도양 등 다른 해양에도 4개 이상 존재한다고 하여 충격을 주었다.

반면에 육상에서의 폐플라스틱 폐해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을 받은 측면이 있었는데, 이는 폐플라스틱 재활용 정책과 시장이 어느 정도 작동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 중심에는 전 세계 폐플라스틱 생산량의 절반을 받아들여 처리해 온 중국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금년 1월부터 중국이 폐플라스틱 수입을 돌연 금지하면서 각국에서 폐플라스틱 처리가 발등의 불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4월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 단지에서 폐플라스틱 수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재활용 쓰레기 대란’이 일어난 바 있다.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재활용수거업체의 노력으로 당장의 문제는 해결하였지만 언제든 유사한 사태가 재발할 여지가 아직 남아 있다.

특히 최근에는 미세플라스틱이 이슈화 되고 있다. 크기가 5㎜ 이하인 미세플라스틱은 버려진 폐플라스틱이 잘게 부서지면서 생성된 것으로 먹이사슬을 통해 생태계와 인체에 되돌릴 수 없는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들 미세플라스틱이 해양생물을 넘어 천일염, 수돗물, 생수, 맥주 등에서도 검출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속출하고 있다. 문제는 이 미세플라스틱이 인체에 얼마나 해로운 것인지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각국은 폐플라스틱의 재활용 증진을 넘어 플라스틱을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시키는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가장 강력한 의지를 보이는 곳은 유럽연합(EU)이다. EU는 가장 흔한 플라스틱 제품인 수저, 빨대, 면봉 등 8개 제품의 사용을 2021년까지 완전히 금지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우리나라도 2030년까지 플라스틱 발생량을 50% 줄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일회용 컵, 수저, 빨대 등의 사용을 단계적으로 금지하기로 하고, 지난 9월부터 커피 전문점 등 매장 내 일회용 플라스틱 컵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문제는 내일 당장 플라스틱을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시키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가능한 부분부터 차근차근 준비하고 친환경 대체재를 개발하는 노력을 개을리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100년의 플라스틱 역사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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