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 주 중원대 교수

이상주(중원대교수)
이상주(중원대교수)

 

율곡 이이(1536~1584)는 인간 용(龍) 즉 용의 화신(化身)이다. 그는 어천(御天)의 신기(神氣)를 받고 탄강했기 때문에, 그 무한한 신통력과 뛰어난 선견지명이 오늘날까지 찬연히 지속되고 있다. 첫째, 신사임당은 그를 낳던 날 바다에서 흑룡이 집으로 날아드는 꿈을 꾸었다. 그 산실 몽룡실은 지금까지 남아있다. 그래서 율곡의 어릴 때 이름이 현룡(見龍)이다. 『주역』 구이(九二)에 ‘현룡재전(見龍在田)이견대인(利見大人)’ 즉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는 문구가 있다. 이렇듯 율곡은 용의 기를 받아 탄생했다.

둘째, 율곡의 아버지 이원수(李元秀)는 용의 덕과 신선의 기를 받는 도법을 아는 도인(道人)이었다. 그래서 경기도 파주에서 강릉까지 가서 동해 해룡(海龍)의 기상을 받아 율곡을 낳은 것이다. 신라 문무왕이 동해의 용이 되어 신라를 지키겠다고 동해에 장사지내달라고 했다. 그 아버지 김춘추의 시호가 태종무열왕이다. 제갈량의 시호가 충무후(忠武侯)이다. 소열제(昭烈帝)는 중국 삼국을 통일한 촉한의 첫 황제 유비(劉備)이다. 김춘추의 삼국통일의 위업을 선양하기 위해, 위 두 사람의 시호를 합용하여 명명했다. 율곡 어머니의 사임당이라는 당호에는 중국의 문왕의 어머니 태임(太任)을 스승으로 삼아 자녀를 잘 교육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셋째, 율곡은 이름에도 신선의 영기를 응축시켰다. 노자는 도가사상 즉 신선사상을 완성했다. 이이(李珥)는 노자의 성명 이이(李耳)의 음을 빌려 그 선기(仙氣)를 받고 세상에 퍼지게 했다. 주자의 무이구곡과 「무이도가」에서 무이는 신선의 이름이다.

넷째, 율곡은 영원히 용의 원력을 받고 전수하는 도법을 잘 알고 실천했다. 주자는 무이구곡을 정하고 「무이도가」를 지었다. 와룡사(臥龍祠)를 짓고 와룡이라 불리는 제갈량(諸葛亮)을 승배했다. 율곡은 이런 기상까지 받으려고 주자를 숭상했다. 그리고 율곡은 황해도 해주군 석담리에 고산구곡(高山九曲)을 정하고 「고산구곡가」를 지었다. 그 서가(序歌)에 ‘무이를 상상하고 주자를 배우겠다’고 천명했다. 구곡도 『주역』 구오(九五)의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고산은 『시경』의 ‘고산앙지(高山仰止)’를 응용했다. 높은 산을 우러러보듯이 훌륭한 선현을 본뜬다는 뜻이다. 수운판관인 아버지를 따라 황해도에 갔다. 이곳은 높은 산 백두산이 멀지 않다.

다섯째, 율곡은 용의 눈으로 천하를 보았다. 그래서 고산인 백두산 근처인 해주를 주목했다. 그리고 율곡은 후인들로 하여금 화양동 선유동 쌍곡에 용의 원력을 계승발현하게 하기 위해 그곳을 남겨두었다. 화양동은 단연 우암으로 인해 더욱 유명해졌다. 이는 율곡이 유종원의 「옹주마퇴산모정기」의 대인증무설(待人贈務說)을 실천한 걸작이다. 즉 그 임무를 수행할 능력을 갖춘 사람을 기다려 그에게 임무를 부여한다는 설이다.

여섯째, 율곡은 용의 기상을 지속적으로 전수할 후계자를 점지했다. 바로 화양구곡을 한국 최고(最高)의 구곡으로 완성케 한 우암 송시열(宋時烈)이다. 우암은 충북 옥천군 이원면 구룡촌(九龍村)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곽씨가 명월주(明月珠)를 삼키는 꿈을 꾸고 잉태했다. 『주역』 구오(九五)의 ‘비룡재천(飛龍在天)이견대인(利見大人)’의 기가 서린 곳이다. 율곡같은 용의 기상을 받은 송시열은 율곡의 구곡정신을 발현했다. 그래서 우암은 고산구곡도를 그리게하고 거기에 율곡이 지은 「고산구곡가」를 한역하여 기록하게 했다. 이리하여 율곡은 신처럼 숭앙받고 용처럼 전지전능한 역량을 계승시켰다.

일곱째, 율곡의 용력(龍力)으로 완성한 구곡은 황해도 인근에 계승되었다. 최운식(崔沄植)이 황해도 평산군 봉산에 주산구곡(蛛山九曲)을 정했다. 유희영(柳曦永1794~1879)과 유응두(柳應斗1847~1914)가 차운시를 지었다. 유인석(柳麟錫1842~1915)은 강원도 춘천 출신이다. 그런데 평안남도 개천 석계(石溪)에 가서 1902년 존화의식(尊華意識)과 항일의식을 고취앙양하기 위해 석계구곡을 정하고 「석계구곡가」라는 노래를 지었다. 기자(箕子)의 용력(龍力)이 서린 땅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린(麟)은 목이 길은 기린이 아니다. 성군(聖君)이 출현하면 나타난다는 상상의 동물이다. 유인석은 이런 기상을 타고났다. 그래서 일제가 조선을 합병할 조짐을 알고, 용(龍)인 임금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70넘은 노구에도 불구하고 만주까지 가서 항일운동을 했다. 용의 조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오늘날도 부단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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