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 충북도산림환경연구소 산림환경과장

이재국 충북도산림환경연구소 산림환경과장

(동양일보) 언제였던가. 5년간 충북도 경계를 따라 도계탐사를 다녔던 기억이 새롭다. 많고 많았던 길 중에 그래도 생각나는 구간이 있다면 아마도 백두대간 줄기를 이루고 있는 조령구간이 아닐까 싶다.

조령3관문에서 시작해서 오르는 길은 완만하고 좋았지만 비가 오면서 안개에 갇혀 같은 자리를 세 바퀴 돌고나서 오늘은 산신이 입산을 허락하지 않는 듯하니 하산하자는 박연수대장의 지시로 빗길을 내려와 막걸리 한 사발에 피로를 풀고 산에 대한 경외심을 다시 한 번 일깨웠던 시간.

2주 후에 다시 같은 장소를 오르니 넓게 펼쳐진 평지에 어우러진 야생화와 산야초,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칼바위들. 네발가진 동물의 모습으로 입술에는 갈잎의 건조함을 바르고 목에는 익모초의 쓴맛을 담아 오르내리며 목덜미를 따라 엉치뼈까지 이어지는 짜릿함. 구간구간 서로를 다독이고 소나무를 벗 삼은 넓적한 바위에 섰을 때 능선을 따라 펼쳐지는 풍광은 어찌 그리 시원하고 아름답던지.

현명한 자는 학습을 통해서 배운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나 보다. 늘 산에 오르고 산림을 관찰하고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일을 해왔지만 정작 산에 대한 깊은 이해는 없었다. 산에 오를 때는 남보다 앞서가려 했고 주마간산 격으로 업무가 아닌 부분은 간과하며 지나다 보니 정작 산과 관련된 문화, 지식, 역사 등에 대하여는 문외한이나 다름없었다.

여러 차례의 경험을 통해서 배운 것은 산은 준비하고 오르는 것이고 동행하는 일행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나에게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일정이 정해지면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완급을 조절하고 여분의 간식과 양말, 바람막이 등을 갖추고 등산을 하면서 산이 편안해지고 정상정복이라는 오만은 버리고 산에 들어간다는 마음으로 한걸음씩 발걸음을 옮겨본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조령산을 탐사하면서 지리와 역사에 대한 지식도 없이 걷기에 바쁘기만 했던 시간을 보내고 연풍새재에 얽힌 사연들을 접하고 보니 연풍새재가 더욱 새로워 보인다.

연풍새재는 조령과 마패봉 사이를 넘는 길이며 영남지방과 한양을 이어주던 중요한 분수령으로 새재를 넘어 충주 수안보를 거쳐 남한강 뱃길로 이어지면서 많은 물류가 이동을 하고 군사행정의 중심지로써 중앙과 지방을 연결하는 문화적 교량 역할은 물론 조선시대에 총16회에 걸쳐 진행된 조선통신사길로 국익과 외교정책을 수행하는데 중요한 도로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과거를 준비하던 영남의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려면 조령과 죽령, 추풍령 중 하나를 넘어야 하는데 조령을 넘으면 장원급제를 하고 죽령을 넘으면 길에 대나무가 있어 미끄러지고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고 하여 연풍새재를 넘었다 하니 넘나드는 길 하나까지 신경을 쓰던 장원급제를 향한 간절함이 애처롭다.

이제는 산에서 내려와 물가를 맴돌고 있지만 가을하늘 아래 선연한 빛으로 다가오는 붉나무 단풍을 잊지는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금년 들어 5회째를 맞이하는 연풍새재 옛길 걷기 행사가 10월 27일 조령산자연휴양림 일원에서 펼쳐진다 하니 아이들이 시험보기 전에 가족의 건강과 아이들의 장원급제를 기원하며 연풍새재를 넘어가 보자.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