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겸 청주영하보건진료소장

 
장은겸 <청주영하보건진료소장>
장은겸 <청주영하보건진료소장>

 

오늘따라 대문 앞에 놓여 있는 빈 의자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의 전용물이었던 의자다. 치매를 앓으셨던 아버지는 살아생전 날이 새기만 하면 어김없이 나지막한 담장 앞에 있는 낡은 의자에 앉아 세상구경을 하셨다. 지나가는 동네 분들과 눈인사도 하고 대추나무 밑에 메어 놓은 멍멍이랑 장난을 치시기도 하고. 무더위에도 땡볕에 앉아 계시는 바람에 얼굴은 새까맣게 그을리고 땀범벅이 돼도 방으로 들어오시지 않아서 아들이 큰 우산을 걸어 그늘 막을 만들어 드리기도 했다.

복숭아가 익어가는 계절 툇마루에 앉아 대문 앞을 보노라니 말년의 아버지 모습이 어린다. 대문 앞 의자에 앉아 하루를 시작한 아버지는 곧 어머니가 볼세라 주변을 살피고는 지팡이를 짚고 절룩거리며 걸음을 재촉해 자장면 집으로 가신다. 아침상 물린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자장면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는 30분을 걸어오셔서 어머니에게 운동하고 왔다고 하신다. 그리고는 자장면 드신 것을 까맣게 잊고는 어머니가 차려주는 점심 밥상을 또 받으신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그 사실을 모르는 줄 아시지만 어머니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면서도 모른 체하신다. 아버지의 볼록 나온 배를 툭 치시며 살을 빼야 한다고 잔소리를 하시지만 그나마 조금 남아 있는 아버지의 기억 중 하나가 자장면 집에 가는 것임을 알기에 그랬다.

아버지는 군대에서 총상을 입어 머리 수술을 수차례 받으셔서 왼편 마비가 돼 절룩거리며 걷고 왼쪽 팔을 사용하지 못하셨다. 평생 투병생활을 해오던 중 치매 판정을 받으셨고 치매 증상이 조금씩 심해지기 시작했다. 방금 식사를 하시고도 먹을 것을 달라며 자주 고함을 치시는가 하면 엉뚱하게 의심하고 폭언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

하루는 어머니께서 외출에서 돌아오니 개가 사라진 일이 있었다. 말없이 어머니에게 만 원을 주시더란다. 족보도 있고 생김도 멋져 보는 이들마다 ‘그놈 참 잘 생겼다’며 사랑받던 듬직한 아이. 시베리안 허스키를 단 돈 만 원에 팔아버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아버지께서 치매란 걸 아신 사돈어른께서 이야기 친구하라며 아끼던 것을 주신 것이었는데, 단돈 만 원에 팔았으니, 무슨 생각이셨을까? 에둘러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치매 증상이 있으면서 누구든 보면 5000원만 달라고 손을 내밀곤 하셨는데 아마도 개를 가져간 사람에게 손을 벌리니 아버지의 손에 만 원을 들려주고 개를 가져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사라지셨다. 경찰에 신고하고 우리 가족은 평소 어머니랑 다니던 산책로며 뒷산 여기저기를 밤늦도록 찾아다녔지만 허사였다. 애꿎은 의자만 쳐다보며 잘해드릴 걸, 더 많이 놀아드릴 걸 하는 자책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가족들이 속을 끓일 때 밤 10시쯤 장호원 고모님 댁에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장호원 경찰의 도움으로 지금 집으로 들어오셨다는 것이었다. 며칠 계시게 한 뒤 보낼 테니 걱정 말라는 전화였다. 버스로 두 시간이면 갈 거리인데 아침에 나가신 분이 밤 10시까지 길을 못 찾았으니 얼마나 몸이 달았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그때가 복숭아가 한창 맛나던 때였다. 해마다 이맘때면 과즙이 풍부한 백도를 택배로 보내 주시던 누님이 보고 싶어서였는지 아니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중에도 당신 살아생전 혈육인 누님을 마지막 보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얼마나 가엽고 눈물이 나던지.

놀란 어머니를 달래 드리고 3일 후에 아버지를 모셔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백숙을 먹으러 갔는데 어머니에게 미안하셨던지 뱃살 빼야 한다며 죽만 조금 드시는 걸 보니 너무 가슴이 아파 음식이 넘어가지 않았다. 그 후 5개월여를 자식들 얼굴도 이름도 잊어버리고 어린아이처럼 지내시다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떠나신 후 어머니는 아버지를 고모님 댁에 모시고 가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가슴 아파하셨다. 정신이 드실 때면 아버지는 팔순이 넘은 누님이 보고 싶다고 한동안 노래를 하셨는데도 자식들 바쁘다는 핑계로 나중에 가자고 차일피일 미룬 당신 탓이라고 생각하셨다.

오랫동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보낼 수밖에 없는 날들을 보내는 동안 부모님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시리다. 몸이 아프셨지만 자식들에게는 든든한 울타리로 큰 산이었던 아버지가 많이 보고 싶다.

아버지의 빈 의자는 아직도 우리를 반긴다. 누구 하나 치우자는 사람은 없다. 그 의자에 앉아 세상을 본다. 저마다 아버지의 추억을 꺼내보는 추억의 의자이다. 아마도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속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응원해주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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