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논설위원, 시인

 

 11월 1일, 오늘이 ‘詩의 날’이다. 1987년, 신체시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육당 최남선이 ‘海에게서 少年에게’를 ‘소년’誌 창간호에 발표한 날을 기려 ‘시의 날’로 삼은 것이다. ‘세계 詩의 날(World Poetry day)’도 있다. 유네스코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늦은 1999년에 3월 21일을 ‘시의 활성화와 언어의 다양성 증진을 위해 제정된 날’로서 기념일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한국 시의 날 선언문’ 첫 연에서는 ‘시는 삶과 꿈을 가꾸는 언어의 집이다. 우리는 시로써 저마다의 가슴을 노래로 채워 막힘에는 열림을, 어둠에는 빛을, 끊어짐에는 이어짐을 있게 하는 슬기를 얻는다.‘ 라고 시의 가치와 시의 날 제정취지를 밝히고 있다.

‘시의 날’이 제정된 지 3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시의 날 행사가 일부 문학단체에서 ‘혼 밥’처럼 쓸쓸히 치러지고 있는 모양새다.

문인들 사이에서조차 ‘시의 날’이 존재마저 가뭇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분명 ‘시’가, 그리고 ‘시인’이 사회와 괴리된 채 자리를 잡지 못하고 맞갖은 삶을 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시인이라는 이름표가 외려 부끄럽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시를 쓰는 사람들의 책임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너도 나도 시인입네’하고 시의 텃밭을 어지럽히는 함량미달의 시인들이 양산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워낙 오염된 시의 생태계가 복원되지 않은 탓도 있다. 물론 필자 역시 여기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누군가가 “너나 잘 하세요” 한다면 “나는 아니오.” 하고 맞설 자신이 없다.

‘시’가 무엇인가. ‘시는 정서나 사상 따위를 운율을 지닌 함축적 언어로 표현한 문학의 한 갈래’라고 정의하고 있지만 백과사전식 풀이로 시를 알 수는 없다. 기실 “시가 시인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운동권의 구호처럼 신봉하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시는 시인들의 전유물이어야 한다.”로 생각이 바뀌었다. ’누구든지 시를 좋아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시를 써서는 안 된다’는 게 요즘 드는 생각이다. 시의 본질인 ‘서정과 운율’은 외면하고, 아무런 내적결핍이나 고민의 과정도 없이, 나르시시즘에 빠진 인스턴트 언어로 시의 밥상을 차려내서야 독자들에게 미안한일이다. 대신 석고대죄라도 하고 싶을 때가 많다.

적어도 “시란 쓰지 않고는 못 배길 때 쓰는 것이다.”라는 유치환 선생의 뼈있는 한마디를 허투루 들어서는 안된다.

올해로 32회를 기념하는 ‘시의 날’에 생각이 깊어진다. 청주에 ‘마로니에 시 공원’이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무대도 있고, 달착지근한 햇살도 있다. 산책을 해도 좋고, 벤치에 앉아 변해가는 자연의 모습을 보며 명상에 잠겨도 좋다. 따끈한 커피 한 잔을 들고 나와 조용히 책을 펼쳐도 그만인, 아담한 ‘마로니에 시 공원’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꼭 한 번쯤 가보기를 권하고 싶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마로니에 시 공원’이라는 이름에 걸 맞는 울창한 마로니에 숲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표지 석 뒤에서 볼품없이 말라가고 있는 마로니에 나무 한 그루가 공원이름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하나 더 있다. ‘못난 자식이 눈에 더 밟히는 법’이라 했던가. 형형색색 어우러진 단풍나무의 행색이 볼상 사납다. 어떤 나무는 왼쪽 팔을, 어떤 나무는 오른 쪽 어깨 죽지를 잃은 채 시나브로 단풍을 내려놓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무슨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게 아니라면, 명색이 ‘詩공원’인데 저렇게 생각 없이 가지치기를 할 게 아니라, 제대로 수형(樹形)을 살려 가꿨더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허나 무슨 대수이랴. 청명한 가을의 오후 한 때, 공원을 거닐며 아름답게 새겨 놓은 시비(詩碑)를 읽으며 명상에 젖어보는 행복감을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

“시를 읽으면 품성이 맑게 되고 언어가 세련되며 물정에 통달되니 수양과 사교 및 정치생활에 도움이 된다.” 역시 공자님 말씀이다. ‘시의 날’ 제정취지를 잘도 알려주신다.

“시는 그것 자체가 아름다운 일이며, 시를 쓴다거나 감상하는 것은 유쾌한 경험이다” ‘루이스’가 마무리를 한다. ‘시의 날’을 맞아 애송시 한편 낭송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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