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섭 괴산경찰서장

이동섭 괴산경찰서장
이동섭 괴산경찰서장

 

나의 아버지는 올해 여든 셋 된 ‘청년’이다.

어찌나 근력이 좋은지 손수 운전을 하고 다니는 것은 물론 지금도 42.195㎞ 마라톤 풀코스를 뛰고, 철봉과 평행봉을 한다.

사교춤도 배우러 다닌다. 그래도 힘이 남아돌아 남의 농사일을 거들어 주거나 동네의 궂은일을 찾아 간섭하고 해결해 주며 엄청 바쁘게 산다.

원래 시골에서 오랫동안 농사를 짓고 자식 공부 시킨다고 도회지로 나와서는 철도보수원, 환경미화원 등 막노동판을 전전하였다지만 천성적으로 강단이 있고 부지런하다.

할아버지가 노름에 빠져 사는 바람에 학교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하였고, 물려받은 재산도 없어 어려서부터 나무장사도 하고, 남의 땅도 부치고, 이웃집 송아지를 가져다 기르는 등 생활력이 강하였다.

고집불통인데다 평생을 자기 방식대로만 살아온 분이다.

아직 한 번도 병원에 가지 않은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는데 며느리 볼 때 느닷없이 “병원과 약국이름을 아는 대로 대보라”고 하였다. 알고 보니 병원과 약국을 많이 알면 약골이기 때문이란다.

지금까지 생일을 한 번도 챙겨보지 않은 것은 물론 회갑과 칠순잔치도 마다하였다. 우리 형제자매들 결혼식 때도 청첩장을 내지 못하게 하였고, 축의금도 받지 않았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조상 묘를 자손들이 찾아다니기 어렵다고 한 곳으로 이장하였다가 지난봄에는 자손들에게 벌초할 부담을 주지 않겠다고 아예 묘지를 없애고 말았다.

‘앞으로는 제사가 없어지는 세상이 올 거’라며 10년 전부터 스스로 제사를 없애고 지내지 않는다. 이후 내가 아버지 몰래 제사를 지내고 있다.

당신이 돌아가시면 가까운 친척 외에는 문상을 받지 말고 조의금도 일체 받지 말라고 유언장까지 써 놓았다. ‘이행하지 않으면 다시 살아나겠다’고 하는데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다.

68세에 운전면허를 따겠다고 나섰는데 공부가 짧아 학과시험문제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몇 달에 걸쳐 문제집을 통째로 다 외워서 그날 98점을 받아 ‘장원’을 하였다.

몇 년 전에는 복싱체육관을 다니며 권투를 배웠다. 그리하여 시내 도로에 설치해 놓은 화분을 부수던 사람과 우암산에서 떡메로 도토리 털던 사람, 식당에서 술주정하던 사람, 돈 꾸어가고 갚지 않던 사람이 차례로 권투실력을 맛보아야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문제가 생겨도 경찰관인 자식에게 부담주지 않고, 본인이 알아서 해결한다.

당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이 뜀박질 밖에 없다고 뒤늦게 마라톤을 시작하였다. 어찌나 열심히 연습을 하는지 대회에 나갔다하면 60세 이상에서는 줄곧 1등을 차지하여 입상 메달이 거실에 꽉 찼다.

춘천조선일보마라톤대회에 나가서는 풀코스 42.195㎞를 3시간30분에 뛰었다. 이는 젊은 사람도 세우기 어려운 기록이다. 몇 년 전에는 100㎞ 울트라마라톤에 나가 입상하여 금반지를 상품으로 타왔다.

우리 부자가 함께 마라톤대회에 나가면 아버지는 풀코스를 뛰고, 나는 하프나 10㎞를 뛰어서 남들의 놀림감이 된다.

그 외에도 나의 아버지는 저축상도 여러 차례 받았고, 선행상도 여러 번 받았다.

그런데 한 가지. 고집이 세어서 자기주장을 굽힐 줄 모르고, 매사에 지기 싫어하며, 타협을 모른다. 당신 말이 법이고 한 번 말한 것을 듣지 않으면 아예 상종을 안 한다.

자식에게 신세지려고 하지 않으며 한 번도 용돈을 달라거나 무엇을 사달라고 하질 않는다.

이런 아버지를 둔 나는 과연 행복한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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