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희 논설위원/소설가/ 한국선비정신계승회장 회장

 

 

내가 사는 도시 한쪽 고즈넉한 곳에 H호수가 있다.

이 호수는 둘레가 4㎞쯤 돼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 풍광이 명미하고 수목이 울창해 봄에는 목련 백합 개나리 꽃 잔디 진달래 철쭉 영산홍 산벚꽃 산딸나무 산조팝꽃 초롱꽃 벌개미취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야생화가 천자만홍(千紫萬紅)을 이루고, 가을에는 코스모스 들국화 단풍 쑥부쟁이 등이 야트막한 산의 만산홍엽(滿山紅葉)과 함께 호수를 붉게 물들인다. 여기에 연인들이나 아베크족들의 보트놀이와 데이트코스, 산책과 워킹, 호수 곳곳에 마련된 벤치와 운동기구까지 있어 시민들의 사랑을 톡톡히 받고 있다. 그런데다 분위기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 커피전문점과 음악감상실까지 있어 더 한층 시민의 사랑을 받는다.

그런데 이렇듯 근사한 호수에 어느 한때 몹시 부끄러운 표지판이 세워져 이 도시의 무식과 품격을 드러낸바 있었다.

그게 무엇인가 하면

표지판

1. 이곳에서는 수영을 금지함

1. 이곳에는 쓰레기를 버리지 못함

1. 이곳에서는 낚시질을 못함

1. 이곳에서는 빨래를 하지 못함

1. 이곳에서는 초크사용을 금지함

C시 시장

C시 경찰서장

이라는 표지판 때문이었다.

내가 놀란 것은 맨 마지막 줄의 ‘이곳에서는 초크사용을 금지함’이었다.

초크 사용금지라니.

아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나는 곧 시청 공보실로 전화를 걸어 H호수에 세워진 표지판 마지막 줄에 ‘이곳에서는 초크 사용을 금지함’ 이라 씌어 있는데 ‘초크’가 대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공보실 직원 대답이 ‘우리도 그걸 모릅니다’였다.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 모르면 그 뜻을 알아서 써야지 경고문을 해 세운 주무관청에서 모르면 어떡하느냐, 그렇게 무책임해서야 어찌 국민의 공복이요 수임자라 할 수 있느냐. 나는 따끔하게 야단을 치고 초크에 대해 설명을 했다. 초크란 촉고(數罟)를 잘못 알아서 쓴 것 같은데, 촉고는 그물을 말하는 것으로 눈을 잘게 떠서 코를 촘촘하게 만든 그물이 촉고다.

그러니까 초크 사용금지는 그물을 사용하지 말라는 뜻이다.

나는 덧붙여 자세히 설명했다.

촉고할 때의 (數)은 본시 셈수(數)자를 말함이지만 셈을 나타날 때는 ’수‘가 되고 ’잦다‘ ’빈번하다‘ 할 때는 삭(數)이 되며 그물을 말할 때는 촉(數)이 된다. 그러니 당장 초크사용 금지는 ’그물사용 금지‘로 고쳐 쓰라 이르고 몇 가지를 더 설명해주었다.

초크는 자칫 영어의 분필 ’초크(chalk)‘를 떠올릴 수 있고 또 ‘질식시키다’ ‘숨막히게하다’, ‘목졸라 기절케하다’의 ‘초크(choke)’와도 발음이 같아 이것도 알아두어야 할 것이라 설명해주었다.

그래 시민과 국민을 위해 일하는 시장이, 그리고 국가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고 국민의 재산생명을 지킨다는 경찰(서장)이 국민(시민)과 무슨 철천지 원한이 졌기에 시민(국민)을 초우크(질식시키고, 숨 막히게 하고, 목 졸라 기절케 하고)시키겠는가.

경관이 수려한 명소 유원지에서 말이다.

당부하노니 국민의 공복이라는 국민의 수임자들은 무슨 일을 함에 있어 고식적 근시안적 단세포적 수박 겉핥기식으로 일하지 말고 사명감 공직감 책임감 성실감을 가지고 일해주기 바란다.

더욱이 이곳 H호수는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풍광이 수려하고 명미해 많은 시민이 즐겨 찾을 뿐만 아니라 외지에서의 관광객도 심심찮게 찾아 몇 시간씩 머물다 가곤 한다.

더욱이 이 H호수 바로 곁에는 우리나라 삼대(三大)악성 중 한 분인 우륵(于勒)의 우륵당이 날아갈 듯 서 있고 그 곁에 중요 무형문화재 76호의 발상지답게 멋스런 택견전수관이 역시 날아갈 듯 서있다.

그리고 각종 문화예술 행사를 할 수 있는 공간과 시민 건강을 위한 각종 스포츠 공간도 다양하게 갖춰져 있어 이 나라의 희망인 청소년들이 모여 원대한 기상과 포부를 연마하는 명소의 표지판에 ‘촉고 사용금지’를 ‘초크 사용금지’란 얼토당토않은 말을 써서야 되겠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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