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희 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걔 아주 지독한 놈이라고, 그래서 아주 우리 축에서도 따돌려 놓아 상대도 하지 않는 놈이라고 또래 애들조차도 머리를 홰홰 내두른다. 하도 애들마다 그러니 하루는 동네어른들이 그 또래 애들을 불러놓고 그 사연을 물었다. “걔요 저한테 이득 되지 않는 건 절대로 안 하는 애예요.” “넌 안 그러냐. 너한테 이득이 안 되는데 넌 한단 말이야?” “할 때도 있지요.” “어떨 때?” “갑자기 아저씨가 물으니까 생각이 얼른 안 나네요. 여하튼 걔는 거저라는 게 하나도 없어요 꼭 대까(代價)가 있어야 돼요.” “거야 주는 게 있으니 받는 게 있는 것 아니냐. 그게 요새 젊은 애들 생각 아녀?” “그런 말이 있긴 있지요. 영어로 ‘기브 앤 테이크’ 라구. 그걸 우리가 모르나요. 하지만 그 말의 뜻하구는 달라요. 먼저 요구하구 그에 응하면 주니까요. 그러니까 ‘테이크 앤 기브’지요.” “영어를 우린 잘 모르니까 꼬부랑말은 빼구, 그러니까 네 말은….” 여기서 다른 동네어른이 나선다. “그건 그렇구 옆에 있는 너한테 묻자. 너 ‘신발차’ 라는 말 아냐?” “예. 알아요. 그것두 모를라구요. 신발을 차에 비유한 말 아녜요. 그러니까 차타는 대신 신발을 타고 다닌다. 즉 걸어 다닌다는 말을 신발차를 타고 다닌다 하는 거지요.” “옳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아니다.” “그럼 뭐예요?” “너 어른이 심부름을 시키면 좋아서 얼른 응하느냐?” “글쎄요, 솔직히 말하면 아닌데요.” “그래 맞다. 다 싫어하지. 나도 너희 만했을 적에는 그랬으니까. 더구나 재밌는 놀이에 빠져 있을 때 집안 어른이 불러 심부름을 시킬 때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지.” “지금 우리도 그래요. 그렇지만 엄마 아버지가 이것저것 가져오라구 하면 마지못해 해도 형이나 누나가 시키면 잘 안 해요. 해도 꼭 토를 한 번 달아요. ‘형, 누나는 팔이 없어 다리가 없어?’ 하구요.” “그래 맞다. 우리 집 어린 것도 그렇다. 그런데 말이다. 지금 우리 같이 나이 먹은 사람들은 안 그랬다. 나보다 나이가 위인 사람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했다. 속은 부글부글 끓어도 말이다.” 이때 옆의 다른 어른이 덧붙인다. “암만 암만, 어디 너희 같이 말대답이냐 말대답이!” “지금 이 어른양반 말 들었지. 우리는 전부 그랬어. 그런데 말이다. 내가 말한 심부름이라는 것은 이것 가져와라 저것 가져와라와 같이 가까운 데 것을 심부름 시키는 게 아니라, 너 이것 가지고 고모네 집 좀 갖다 드리고 와라!, 일전에 강 건너 네 작은 할아버지께서 쌈 씨앗을 주신다고 했는데 가서 그것 좀 받아 오렴, 과 같이 제법 먼 데를 갔다 오라는 것이다. 여기서 너한테 한 번 물어보자. 너라면 선뜻 갔다 오겠느냐?” “글쎄요, 한번 뻗대보겠는데요.” “근데 우린 두말없이 이에 응했다. 왜? 대까(代價)가 있었거든.” “그 대까라는 게 뭔데요?” “그게 바로 ‘신발차’라는 거지.” “신발차요?” “그래, 신발차란 ‘심부름을 하는 사람에게 그 심부름 가는 길에서 쓰게 되는 비용으로나 사례조로 주는 돈’이야.” “아유, 그런 대까인 신발차라는 게 있으면 우리도 선뜻 응하겠네요.” “왜, 너희들이 말하는 걔는 거저라는 게 없이 꼭 대까가 있어야 한다며 못 마땅해 했잖여” “우리는 대까 없이도 응할 때가 있지만 걔는 꼭….” “알았다, 무슨 말인지 알았다.”

여기서 동네어른들은 그 또래 애들을 보내고 그 애들이 걔라고 칭하는 명현이도 만나보자는 말이 나왔다. “명현이 그 놈 성질이 고집쟁이면서 좀스러워 좁쌀 썰어먹을 놈이라고 소문나 있는데 만나보나 마나일껴.” “아녀, 엊그제 만물을 고루 적신다는 한맛비도 왔는데 그놈 말도 들어봐야 하지 한 쪽 말만 들어서야 되겠는가?” “아이구 여보게들, 봄 한량은 있어도 가을 한량은 없다고 했네. 가을은 그만큼 바쁘다는 말 아닌가. 이 바쁜 가을 판에 집집이 가을걷이 할 일이 많을 걸세. 그 애들 일로 또 명현이를 만나보자니 그만 두세.” “내도 한마디 할까, 그저께 텔레비전의 아나운서가 이런 말을 하데, ‘가을비는 내복 한 벌’이라구. 가을비가 내리면 추워진다는 말 아닌가. 질질 끌지 말고 추워지기 전에 얼른 다른 한 편의 말도 들어 보자구.”

이래서 대동계장의 직권으로 걔 명현이를 이튿날 불러들였다. 그리고 걔에 대한 동네 평판을 말해주고 신발차의 뜻도 일러주었다. “잘 알았습니다. 하지만 예전 사람들은 미리 알아 신발차를 챙겨 주었는데 왜 지금 사람들은 아무 대까 없이 무얼 해주기를 바랍니까. 전 그렇게 못합니다, 그에 상응하는 대까를 받아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며칠 후, 그 명현이가 아무 대까 없이 동네 혼자된 할머니께 내복을 사 드렸다는 소문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