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영 괴산증평교육지원청 교육장

 

 

(동양일보) 가을이 저무는 관사에서의 생활이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이유 없이 잠 못 드는 날이 늘고 있다. 그런 밤은 유난히 고향의 냄새가 짙어지니, 황혼이 깃드는 나이에 맛보는 사색은 새로운 낭만으로도 느껴진다.

세월이 흐른 후 만난 고향은 학창시절의 서툰 첫사랑, 철없이 순수했던 우정, 풋풋한 자신감 등으로 얽힌 사연들을 방안 가득 불러들여 불면의 밤에 정점을 찍게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의 ‘낭만적 사색’은 ‘상념’이 되고 결국은 ‘성찰’로 이어진다.

그 ‘성찰’의 중심에는 어른으로서의 중압감이 늘 자리한다.

노모가 계신 고향에 발령을 받아, 교육자로서 큰 영광이라고 축하해 주는 고향 어르신들과 지인들의 인사가 고맙기도 하지만, 백발이 성성하게 진갑(進甲)을 바라보는 나에게 오히려 무거운 책임감으로 느껴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며, 그리고 당연히 그리 생각되지 않겠는가?

오늘은 오랜만에 점심식사 후, 교육지원청 정원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정(靜)심(心)정(亭)’이라는 정자에 잠시 머물렀다.

햇살 좋은 가을을 그냥 보낼 만큼 메마른 사람은 아니었나보다.

꽃이 진 자리를 무성한 초록으로 가득 채우더니, 미련 없이 이파리를 비워내었고, 고엽이 가득한 정원의 농익은 풍경과 빈 가지 사이로 청명한 가을 하늘이 조화를 이루니, 한 폭의 산수화가 되어 감동을 준다. 아무렇지 않은 듯 ‘비움’만으로도 보는 이를 행복하게 하고, 이듬해 봄을 준비하게 하는 자연이 참 어른스럽다.

그리 앉아있는 모습이 추연(惆然)해 보였을까? 나를 발견한 직원 몇몇이 합석하여 ‘달달한 믹스커피’를 한 잔 건네며 어른 대접을 해 준다.

그저 고마운 마음에 보석 같은 늦가을의 정취를 함께 누리고자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면서도 머뭇거림이 스멀스멀 고개를 내민다. 바쁜 이들을 붙잡아 두는 건 아닐까 하는 조바심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언제인지 기억은 없지만 틈틈이 대화가 길어질라 치면 머뭇거리는 나를 발견하는데, 그 ‘머뭇거림’이 바로 상대에 대한 ‘배려’라고 억지스럽게 믿어본다. 나의 시간을 상대에게 주는 것은 나의 선택이지만, 상대의 시간은 그의 것이 아닌가? 그들이 나를 ‘어른’으로 인정해 주니, 나는 ‘어른다운 어른’이 되고 싶은 것이다.

혹자는 ‘베푸는 사람’이 곧 ‘어른’이라고 말한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승상이었던 관중(管仲)에 대하여 쓴 ‘관자(管子)’의 ‘형세해(形勢解)’편에서 유래한 ‘해불양수(海不讓水)’와 같은 어른으로 살고자 갈망하는 나와 일맥상통한 마음이리라.

바다가 어떠한 물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여 거대한 대양을 이루는 것처럼, 모든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포용하고자 하는 마음, 바로 그것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아무렇지 않은 듯 ‘베푸는 삶’에, ‘포용하는 삶’에 물들고 싶다. 잠 못 드는 가을 밤, ‘어른다운 어른’으로서의 행함이 무엇인지 깊은 상념에 잠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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