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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칼럼/ 율곡이 화양동 선유동 쌍곡을 찾지 않은 이유③
동양칼럼/ 율곡이 화양동 선유동 쌍곡을 찾지 않은 이유③
  • 동양일보
  • 승인 2018.11.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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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주 중원대 교수
 
이상주/ 중원대 교수
이상주/ 중원대 교수

 

(동양일보) 용(龍)의 화신(化身)들은 조일전쟁과 조선말 일제강점기에 멸사보국정신으로 용의 강토를 수호하고 그 정신을 물려주었다. 용의 기를 받고 탄강한 율곡(栗谷)은 임진왜란이 발발할 것을 예견하고 10만양병설을 주장했다. 그 후신들은 용의 원력으로 삼천리 금수강산을 철통같이 수호했다.

화암서원(花巖書院)은 충북 괴산군 칠성면 송동리에 있었다. 가는 길 경사진 산기슭 허리띠 같은 길 그 중간 지점에 수직의 암벽, 그 이름은 ‘꽃바위’ 한자로 화암(花巖)이다. 둘 다 율곡의 「고산구곡가」 제2곡 화암에서 따왔다. 율곡을 숭상하는 사림들이 율곡의 정신을 이어받는다는 뜻으로 그렇게 지었다. 즉 용의 기운을 받으려고 한 것이다. 이리하여 그 인근에 용(龍)의 기운이 서리게 됐다. 그후 용의 기상을 받은 인물은 한국의 문화국격을 선양하기 위해 중국의 창공을 비상했다. 지금 화암서원은 괴산읍 괴강로 검승으로 옮겼다.

만인은 평등하고 기회도 균등하다고 한다. 그러나 기회는 수용할 자격이 준비된 사람에게 돌아간다. 율곡은 용의 기운을 독식하지 않고 시대마다 지역마다 충효절의하고 인의예지신하며 학문과 인품을 구비한 전인적인 인물에게 균등하게 기회를 부여했다. 용의 기운을 내려 민족문화와 구곡문화를 선도할 지역책임자를 키웠다. 일제강점기에도 용들의 활약을 계속됐다.

열 번 째, 봉황과 용이 상응하는 산 계룡산은 보자. 선도수련문파(仙道修練門派)들이 기도발(祈禱發)이 잘 난다고하는 신령한 산이다. 계룡산은 용들의 천국이다. 신룡(神龍)들이 다 모여 기를 응축한 곳이다. 계룡산 기슭 상신구곡(上莘九曲)의 사연을 보자. 계룡산구곡 용산구곡이라고도 한다. 일제강점기에 권중면(權重冕1856~1936)이 정했다. 그는 충북 영동읍에서 태어났다. 계룡산 용의 기운을 받으러 그곳으로 갔다. 용의 창의력은 나날이 온고지신 진화했다. 용산구곡은 제1곡부터 제9곡의 명칭에 모두 용(龍)자를 넣었다. 제1곡은 심룡문(尋龍門) 즉 용을 찾아가 들어가는 문이다. 제2곡은 은룡담(隱龍潭) 즉 용이 숨어있는 못이다. 제3곡은 와룡강(臥龍崗) 즉 용이 누워있는 언덕이다. 제 4곡은 유룡소(游龍沼) 즉 용이 노니는 못이다. 제5곡은 황룡암(黃龍岩) 즉 황금빛 용이 머무는 바위다. 제6곡은 현룡대(見龍臺) 즉 용이 나타나는 대이다. 제7곡은 운룡소(雲龍沼) 즉 구름 속의 용이 머무는 못이다. 제8곡은 비룡폭(飛龍瀑) 즉 용이 날아오르는 폭포다. 제9곡은 신룡연(神龍淵) 즉 신령한 용이 잠겨있는 못이다. 다음은 정재승이 간행한 봉우(鳳羽) 권태훈(權泰勳)의 『봉우일기』의 요약이다. “아버지[권중면]가 계룡산의 신야(莘野)에 들어오신지 이십년 만에 하세하시었다. 구곡 곡곡에 용자(龍字)로써 명명하시어 구룡조천(九龍朝天)이라 하시니 도학(道學)의 성공(成功)을 일방(一方)으로 의미하시고 선고(先考) 향수(享壽) 81세이시니 용은 양구(陽九)요 구룡(九龍)이 조천(朝天하늘의 조정으로 올라간다) 즉 돌아간다는 예언도 된다. 단기 4283(1952년) 3월 23일에 썼다.” 권중면은 『주역』 구오(九五)의 ‘비룡재천(飛龍在天)이견대인(利見大人)’의 기를 만들었으며 자기의 수명을 예견했다. 그의 봉같은 아들 권태훈은 우리나라 고유의 선도(仙道)문화를 재인식하게 했다.

권태훈(1900~1994)은 누구인가. 김정빈이 1984년 『단(丹)』이란 소설을 써서 세상에 그를 선인(仙人)으로 알렸다. 『백두산족에게 告함』, 『天符經의 비밀과 백두산족 문화』를 구술, 『民族秘傳 정신수련법』을 감수, 출간하였다. 이렇듯 권태훈은 선도(仙道)의 역사를 민족역사의 근원으로 보고 선도수행법을 기술하였으며 우리민족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여, 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자긍심을 고양하게 했다. 권중면은 용의 기상으로 그 아들 권태훈은 봉의 기상으로, 한국의 구곡문화와 한국고유의 정신세계를 대중들에게 각인시켰다.

권중면은 권중현(權重顯1854~1934)의 아우이다. 권중현은 농상공부대신으로 있던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찬동하여 을사오적의 한 사람으로 오명을 남겼다. 이후 권중면은 형인 권중현과 형제의 의를 끊고, 1907년 정미칠조약을 계기로 관직에서 사퇴하고 계룡산으로 갔다. 이들은 행주대첩의 명장 권율(權慄)의 11대손이다. 용은 용의 기운을 내려 불세출의 인걸을 태어나게 한다. 그리고 그 시대에 헌신하게 한다. 『중용』은 말했다. ‘지성여신(至誠如神)’. ‘믿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와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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