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 도시계획과 도시계획상임기획단 이정민

 

 

20세기는 ‘마스터플랜(Master Plan)’의 시대이다. 도시 문제를 진단하고 미래 변화를 예측해 도시 기능을 ‘공간적’으로 배치하려 했다. 그러나 마스터플랜은 실현되지 않았다. 공간을 사용하고, 점유하고, 이동하는 개인의 행동은 ‘사회적’이라 예측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들이 모이고 갈등하며 빚어내는 일상의 크고 작은 사건들은 더욱 변화무쌍하며, 국내외 거시 경제, 환경 변화의 파장까지 더하면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청사진(blue print)은 구시대적인 어휘가 됐고, 마스터플랜을 믿는 사람들은 이제 없다. 장기적이고, 비용이 많이 드는 개발 계획 대신 사람들은 이제 주변에서, 일시적으로, 무엇인가를 직접 하기 시작했다. 21세기, 택티컬 어버니즘(Tactical Urbanism)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택티컬(tactical)은 사전적 의미로 ‘작전의’, ‘전술의’ 의미다. 택티컬 어버니즘은 전술적으로 빠르게, 효과적으로 도시를 바꿔나가는 새로운 도시계획의 사조다. 완결된 이상으로서의 계획안이 아닌 각양각색의 도시 조각을 잇대어 큰 도시의 모습을 그리는 패치워크 어버니즘(patchwork urbanism), 팝업(Pop-up) 시티, DIY 어버니즘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그동안 도시는 장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도시의 청사진을 계획하고, 타당성을 분석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실행계획을 수립하고, 예산을 확보하고, 실시 설계를 하고, 시공을 하느라 비용과 시간을 쏟아왔다. 반면 택티컬 어버니즘은 작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빠르게 구체화해 현실에 적용해보고, 효과가 있다는 것이 검증되면 이를 역으로 정책화해 도시 전체로 확산시켜나가는 방식이다. 택티컬 어버니즘은 바텀업(bottom-up) 방식에 기대어 시민들의 일상의 필요와 상상력을 도시공간에 빠르게 실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지자체는 대규모 개발사업에 따른 재정 부담을 줄이는 대신 시민들이 도시의 문제를 직접 정의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절차와 방법을 마련하고, 다양한 실험의 장을 만들어 줌으로써 도시에 대한 권리를 시민에게 되돌려줄 수 있다.

택티컬 어버니즘의 촉매가 됐던 미국 MIT 대학교의 리빙랩(Living Labs)이 IoT(사물인터넷) 기술과 만나 한국에서 ‘생활 실험실’로 안착하고 있다. 골목길 주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서울시 독산 4동의 공유 주차 실험, 대전시 갑천 징검다리의 안전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애플리케이션 ‘건너유’ 등이 생활 실험실을 통해 일상의 문제를 해결해가고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슈마허의 전언처럼, 소소한 일상의 문제들을 관찰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 방안 모색에 참여하는 ‘도시 실험실’의 실험이 청주에서도 곧 열리게 되지 않을까, 즐거운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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