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수 논설위원 / 중원대 교양학부 교수

 
이현수 논설위원 / 중원대 교양학부 교수
이현수 논설위원 / 중원대 교양학부 교수

 

(동양일보) 혈투를 앞둔 권투선수들에게 ‘돈 히트 언더 더 벨트’(Don’t hit under the belt)는 근엄한 룰이다. 벨트 아래를 치면 반칙이라는 뜻이다. 상대의 급소를 공격하면 경기는 중단되고 벌점이 주어진다. 이 엄격한 룰은 결혼생활에도 적용된다. 권투와 달리 반칙의 부위가 사람마다 다를 뿐이다. 행여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영혼이 아파할 선을 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관계는 지탱된다. 공격받은 부위는 호흡이 가파르고 온몸이 무기력해진다.

이혼을 작정하고 끝내 실행한 이들을 흔치 않게 만난다. 예외의 경우도 있겠지만 대게 앞서 말한 룰을 지키지 못해서이다. 일상적으로 우리는 아픈 이별을 대비하고자 마음의 이기적 무장을 하곤 한다. 그러나 부질없다. 상대 탓을 해보았자 두 남녀가 결혼한 그 이유 때문에 이혼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약은 계속 약 이지 않고 유효기간이 지나 독이 된다. 사랑의 파국은 그 어떤 상처보다 깊고 오래간다.

기묘한 일이지만 결혼은 둘이서 결정하고 이혼은 주변과 결정한다. 급기야는 ‘휴혼’(休婚)으로 이혼의 부정적 이미지는 유화된다. 자기방어적 기제이다. 그래서인지 이혼은 과거와 달리 담담한 문화가 되었다. 그러나 이혼은 가장 아픈 이별이다. 다행히도 나이의 내공은 가슴에 간직하는 이별 법을 알게 된다. 때로 사랑보다 더 질기고 독한 것이 파탄 난 일상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삶과 사랑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기 바라지만, 사랑과 삶이 공존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도 지혜롭다. 그러나 모든 이혼이 나쁜 건 만은 아니지만 세상 그 어떤 이별도 최선의 선택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모든 이별이 신중해야 할 이유이다.

항간에 이혼을 결심한 친구는 부양의 책무로부터, 일의 무게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으로서의 ‘나’를 주야장천 내세웠다. 근간에는 홀로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걸 지나, 지속되기 지난한 사회적 관계로부터도 위안을 찾고자 했다. 응당 결혼의 프레임 속에 짊어져야 할 공감의 과정마저 깎아내리기도 했다.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독선적인 이로 아내를 몰아붙이기도 했다. 지금 당장은 아이들을 위해서 내키지 않는 외줄타기를 하고 있지만 행복하지 않은 결혼의 구속은 언젠가는 폐기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축 늘어진 일상이 내재되어 있을 아내의 지친 걸음과 서글픈 시선을 인정하지 못했다. 모질게 이기적이고 격정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돈 히트 언더 더 벨트’의 룰을 어기는 일이 허다했다. 당연히 관계에는 서늘한 전운이 감돌았다.

누구나가 가족이라는 존재를 달팽이처럼 지고 기어간다. 친구의 경우처럼 이혼이라는 속박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 껍질을 벗고 홀연히 날아갈 듯 자신만만해 하는 이들을 접한다. 그러나 숙성된 고민과 간극을 좁히는 배려가 전제되지 않는 격정적 이혼 결심은 무위로 그칠 공산이 크다. 그런 이들일수록 달팽이 껍질이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의무를 규정해야만 하는 삭막한 세상살이가 있기에 사랑도 의무가 부여되는 것이다. 그것이 결혼의 의무라고 해도 좋다. 자기 객관화가 선행되지 않는 좋은 관계는 없다. 그런 관계를 만들려면 관성과 이기의 나를 넘어서야 한다. 상대의 말을 들으려면 나를 먼저 비워야 한다. 상대의 얘기는 들리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만 말하게 된다. 원초적인 힘의 관계를 맺게 될 뿐이다. 그럴 때 ‘돈 히트 언더 더 벨트’(Don’t hit under the belt)의 룰은 어김없이 위반된다.

결혼의 자유와 마찬가지로 이혼의 자유 또한 보장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혼은 영속적 공동체를 파기하고 가족의 해체를 초래한다. 이혼을 작정하고 주변과 이를 상의하는 과정에서 나를 위해서 한다는 말들을 접하게 된다. 그러나 선별해야 한다. 자신의 설익은 생각을 에둘러 말하는 경우가 허다하며 부부간의 감정 영역은 여간해선 타인이 넘어서기 어렵다.

예외는 있다. 경험은 모든 이들의 삶을 장려한다. 이혼한 이들의 경험이 전하는 진심이 있다. 이혼이라는 엄동의 칼바람이 인생의 뺨을 후려치기 전에 뾰쪽해진 자신의 감정을 무디게 바라보라는 것이다. 하나 더, 실행하지도 못할 이혼에 대해 쉬이 말하는 것도 ‘돈 히트 언더 더 벨트’의 룰을 위반하는 것이라 하니, 숙성된 이별결심이 아니거든 부디 귀담아 들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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