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영 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동양일보) 카페인 중독자이다보니 외부 활동 중 커피가 필요할 때가 많다.

대개는 방문하는 사무실이나 카페에서 머그잔으로 커피를 마시게 되지만, 외부로 나갈 때는 개인용 컵으로 텀블러를 사용한다. 그런데 아뿔사 이 날은 급히 나오느라 텀블러를 빼놓고 와서 할 수 없이 테이크아웃용 종이컵으로 커피를 사야했다. 그래서 기왕이면 종이빨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커피숍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매장에서 커피를 시키고 빨대를 요청하니 흰 빛깔의 종이빨대를 준다. 아 이거구나. 반가워서 빨대를 컵에 꽂아본다. 플라스틱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빳빳하다. 빨대를 타고 올라오는 쌉소롬한 맛. 괜찮다. 이 정도면 훌륭하다. 이렇게 종이빨대가 자리 잡게 되면 우리 주변에서 플라스틱 빨대는 사라지겠지.

바야흐로 지금 세계는 플라스틱 빨대와 전쟁 중이다.

국제 사회에서 빨대몰이 캠페인이 시작된 것은 3년 전이다. 2015년 코스타리카 연안에서 구조된 바다거북이를 본 사람들은 경악했다. 거북이의 한쪽 코에 12㎝의 길이의 플라스틱 빨대가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해양생물학자 크리스토퍼 피그너 박사가 펜치로 빨대를 뽑아낼 때 피를 흘리며 괴로워하는 거북이 모습을 보면서 빨대의 폐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환경문제를 논할 때마다 비닐봉지, 종이컵, 플라스틱 컵 등 일회용 물품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은 많았지만 플라스틱 빨대가 논의의 대상이 되었던 적은 없었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빨대는 일회용품이 아닌 것으로 분류돼 있다. ‘자원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이 규정한 일회용품 품목에 빨대는 없는 것이다. 아마도 부피가 작고 가볍기 때문에 관심종목에서 빠졌을 것이다. 그러나 작고 가볍기 때문에 재활용도 못하고 그래서 그냥 버려지며 이것들이 하천을 따라 해양으로 흘러가 해양폐기물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폐기물이 바다거북이의 코를 막았고, 잘게 분해된 조각들은 다른 해양생물들이 먹이로 착각하여 섭취했다가 폐사하기도 하고, 신체의 일부에 박혀 고통을 받기도 한다. 말레이시아 접경 바다에서 구조됐다가 폐사한 둥근머리돌고래의 뱃속에서 7kg의 폐플라스틱이 배출된 유튜브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이러한 피해사례는 해양생물에게만 닥치는 문제라고 볼 수 없다. 플라스틱 환경호르몬과 미세플라스틱은 인류에게도 재앙이 된다. 특히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처럼 부피가 작은 플라스틱들은 바다에서 분해돼 5㎜ 이하의 미세플라스틱이 되고 0.1㎛보다 작은 입자인 나노플라스틱이 되면 먹이사슬에 의해 인류에게까지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플라스틱 빨대가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양은 어마어마하다. 미국에서는 하루 사용하는 빨대만 5억 개에 달하고, 유럽에서도 한 해 360억 개의 빨대가 소비되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세계 해양쓰레기 중 플라스틱 병이 3위, 플라스틱 빨대는 7위로 나타났다.

공장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하나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5초. 그리고 사람이 사용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10분 이내. 그런데 편리함을 위해 이렇게 잠깐 쓴 플라스틱 제품이 자연적으로 분해되는 데는 500년이 넘게 걸린다.

다행히 미국, 영국, 스위스 등 선진국들이 다양한 자구책들을 내세우며 플라스틱 빨대를 없애기 위해 ‘빨대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빨대 안 쓰기’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1년에 쓰는 플라스틱 사용량이 무려 98kg이라는 우리나라. 그래서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 세계 1위라는 불명예도 갖고 있는 우리나라다.

그러나 종이빨대를 보면 가능성이 보인다. 커피숍 매장 안에서 일회용 컵을 사용하지 않고 있고, 텀블러를 갖고 다니는 사람이 늘고 있고, 무엇보다도 제작비가 5배나 더 듦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플라스틱 빨대를 없애고 종이빨대를 선진적으로 도입한 스타벅스 한국매장도 있으니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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