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우 시인

(동양일보)   가을이 깊어졌나 싶었는데 며칠 전에는 첫눈이 들판을 하얗게 덮었었다. 성하의 갈댓잎은 푸름으로 존재를 알리더니 이제 잎에서 푸름을 걷고 찬바람 앞에 단호하게 서있다. 남은 생을 울음으로 메우기 위해서다.

산길을 걷다가 갈대숲에 뱁새의 둥지가 얹혀있는 것을 보았다. 바람이 불때마다 이 오목눈이의 둥지기 너무 아슬아슬하다. 계절이 더 깊어져 해가 바뀌면 이 풀잎 둥지도 바람 속으로 풀리고 말리라.

“붉은 머리 오목눈이야/가늘게 떨리는 심장 속으로 /너를 가두는 겨울이 온다//나무숲이 잎새를 다 버린 후에야/소리로만 살던 너를 찾았다/겨울이 두려워/흰 눈은 또 올 것이다//나무숲은 명년의 푸른 봄을 위해/가지의 잎맥을 온전히 감추려고/더 겸손하게 몸을 움츠리고 있다/세상의 가지마다 축복으로/함박눈 얹히면 좋겠다//둥근 우주,/서로를 안을 때/축복처럼 그 사람도 온다고 했다//오목눈이야/저 들녘에 막상 눈발이 치면/이제 너를 어디서 찾을까//소리 잃은 흰 숲에 귀를 대본다//봄으로 갈 줄밖에 모르는 나뭇가지도/눈 속에 외롭게 잠들었으니/하얀 우주 밖으로 둥굴게 앉아/눈감고 손끝으로/널 찾을 밖에” 이석우의 「오목눈이야」전문. 행려병자 뻐꾸기는 여름철새이다. 5월에 찾아와 낮은 습지나 구릉지 혹은 산언덕에서 잠시 몸을 쉬었다가 8월이 되면 떠나간다. 먼데서 날아온 추억을 생각하며 먼 곳으로 날아 갈 생각을 하며산다. 이 머무름은 먼 여행에서 지친 뻐꾸기 부부에게 상당한 휴식을 제공해주는데도 이들 부부는 다른 새 둥지에 몰래 자신의 새끼를 입양시키는 게으름을 보여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4세기에 이미“뻐꾸기는 둥지를 틀지도 알을 까지도 않지만 새끼를 길러낸다. 어린 새가 태어나면 함께 살던 새끼들을 둥지 밖으로 내 던진다.”라고 정확하게 기술하였다.

그런데 우리 전설은 이런 염체 없는 뻐꾸기를 변호하다. 옛날에 마음씨 착한 며느리와 마음씨 고약한 시어머니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며느리가 떡국을 퍼 놓고 뒷간을 간 사이 이웃집 개가 와서 떡국을 먹어 치운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어찌 떡국을 혼자 먹어 치울 수 있느냐며 절구공이를 휘둘러 며느리를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너무 원통한 며느리의 넋은 새가 되어, 들과 야산을 날아다니며 “떡국 떡국 개 개” 하며 온종일 자신의 무죄를 외친다. 이‘떡국새’는 시간이 흐르면서 ‘뻐꾹새’로 불리게 된다.

뻐꾸기에게 탁란은 여기저기 알을 분산시킴으로써 자손 번식의 확률을 높여준다. 물론 뱁새, 개개비 등의 숙주 새들은 바보가 아닌 까닭에 뻐꾸기가 나타나면 몸집은 작아도 무리를 지어 기생자 방어에 나선다. 그러나 뻐꾸기는 새매와 거의 닮은 모습으로 진화하여 숙주 새들을 쉽게 속이고 알을 낳는 것이다. 알의 색깔도 숙주의 새들과 같은 색채로 바꾸는 일을 잊지 않는다. 또한 숙주 새보다 먼저 알을 부화시켜 둥지를 선점하는 전술을 구사한다. 연구에 따르면 이미 뱃속에서 부화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보통 뱁새는 14일의 부화기간이 필요하지만 뻐꾸기는 9일 정도는 알을 깨고 나온다. 이 녀석은 깨어나 눈도 뜨기 전에 날개 죽지로 부화를 기다리는 다른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 설령 나머지 알들이 부화한다고 해도 몸집이 큰 뻐꾸기는 식성이 매우 좋아서 입으로 들어오는 먹이의 양이 적다 싶으면 갓 부화한 이복동생들을 둥지 밖으로 밀어 추락시킨다. 그래도 붉은오목눈이는 의심 없이 뻐꾸기 키워 먼 세상으로 날려 보낸다. 그리고 알을 다시 낳아 자신들의 새끼를 키워낸다. 슬픔이 꼭 내일을 멈추게 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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