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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에 서서 / 김홍균이 만난 사람 - 장준식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장
이 길에 서서 / 김홍균이 만난 사람 - 장준식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장
  • 동양일보
  • 승인 2018.12.04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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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만들어 내는 ‘박물관 맨’은 늘 역사의 현장에 있다
전국 전문대학 최초 충청대 박물관·충주북여중·충주시립박물관 설립
충주고구려비 발견… “충청대 박물관 폐관은 문화유산을 없애는 것”

 

‘충주고구려비’ 하면 떠오르는 사람.
‘박물관’ 하면 떠올리는 사람.
그 이름은 ‘박물관 맨’ 이라고 불리는 장준식(70)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장이다.


그에게는 ‘최초’ 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 붙는다.
충주지역 최초로 충주북여자중학교에 박물관을 만들었다. 전문대학 최초로 만들어진 충청대학교 박물관도 그의 작품이다. 충주시립박물관도 그의 숨은 노력이 깃들어 있다.
‘박물관 맨’ 의 역할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서울시립대와 상명대에 세워진 박물관 곳곳에도 장 원장의 손길이 닿았다.
1984년 충청대 교수로 부임한 장 원장은 이듬해 박물관을 건립하고 2014년 정년퇴임 때까지 30년간 박물관장으로 활동했다. 재직동안 충북지역의 유적지 발굴과 유물 보존·관리·교육, 자료를 축적하는 등 지역문화 연구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 왔다.
한반도의 유일한 고구려비로 한국사 서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화재인 ‘충주 고구려비’(옛 중원고구려비·국보 205호)의 발견도 그의 ‘걸작품’ 이다.

충주북여자중 교사였던 장 원장은 1979년 2월 24일 충주 입석마을에서 충주고구려비를 발견했다.
1300여년의 풍상을 견뎌내며 이름 없는 비석으로 남아 있던 충주고구려비가 장 원장에 의해 비로소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게 된 것이다. 현존하고 있는 고구려비는 ‘충주 고구려비’와 중국 지린성 지안현 통거우 지역의 ‘광개토대왕릉비’ 그리고 2012년 7월 중국 지린성 지안에서 발견된 ‘지안 고구려비’ 등 3기뿐이다.
그는 충청대학박물관장으로 재임하면서 불교유적지를 집중적으로 발굴해 냈다.


제천 월광사지를 비롯한 35건의 지표조사와 충주 숭선사지崇善寺址를 포함한 28건의 발굴조사, 충주 미륵리사지 종합정비기본계획 등 5건의 학술조사를 시행하는 등 충청대학박물관이 한국 불교미술사 전문 연구기관으로 자리매김 하는데 중심 역할을 해왔다.


수많은 불교유적지가 수천년의 길고 깊은 잠에서 깨어나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장 원장의 손길을 거쳐야만 했다. 사적 445호로 지정된 고려 광종 5년(954년)에 창건된 숭선사지에서는 금으로 장식한 연꽃 모양의 연봉이 달려있는 수키와를 고정시키는 기와못인 ‘금동연봉장식와정’을 비롯해 왕실사원의 품격에 어울리는 최고 수준의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됐다.
그 밖에 김생사지, 의림사지. 제천 장락사지, 월광사지, 신륵사, 영동 영국사, 증평 남하리사지, 진천 보탑사지 등을 발굴했고 제천 신륵사의 극락전에서 국내 유일의 사명대사벽화를 발견하는 업적을 남겼다.


그런데 30여년 동안 지역의 전통문화교육기관으로 문화재의 보고寶庫로서 기능을 해온 충청대 박물관이 폐관 절차를 밟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으로 시끄럽다.
충청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공식적으로 등록된 유물만도 4800여 점에 이른다. 유물 종류도 석기류, 토기류, 기와류, 도자기류, 고문서류, 서화류 등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박물관 폐관 소식에 지역주민은 물론 전국 대학박물관 관계자들까지 공분公憤하고 있다.
4대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장의 3년 임기를 마치고 연임된 장준식 원장을 지난 11월 30일 오후 집무실(청주시 흥덕구 직지대로393)에서 만났다.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은 지역 문화유산의 보존과 관리 등 학술연구 전문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2005년 7월 6일 설립됐다. 연구원 35명(석·박사)과 문화재 관리를 맡고 있는 돌봄사업단 4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 충청대 박물관은 장 원장에게는 분신과도 같은 존재 아닙니까.

“총장이 앞장섰고 이사회에서 폐관결정을 내렸어요. 우리나라 초유의 사건입니다. 폐관이 되면 발굴조사유물은 모두 국가로 귀속돼야 하고, 기증유물 등은 원주인을 찾아 돌려줘야 됩니다. 보존가치가 큰 유·무형의 자산인 박물관이 경제적인 논리로 사라진다는 것은 대학뿐만 아니라 지역에 큰 손실입니다.”

- 실망이 크시겠습니다.

“절망적입니다. 전국 전문대학중 최초이고 지역문화를 대표하는 중심 박물관으로 성장했는데 그걸 없앤다는 것은 대학이 가지는 사회적 공공성과 책무를 망각한 것입니다.”
그는 박물관을 개인의 사유물처럼 취급하는 대학 고위관계자에게 크게 실망했다는 말로 심정을 대변했다.

-충청대박물관장으로 30년 재직하셨는데요.

“불교유적을 많이 조사했어요. 가장 돋보였던 게 충주 숭선사崇善寺인데 2000년부터 2009년까지 5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고려 4대 광종재위 5년(954)에 창건된 사실을 확인했죠. 숭선사(사적 445호)는 어머니 충주 유씨 신명순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충주시 신니면 문숭리 일원에 창건한 사찰이고요, 아버지 왕건을 위해서는 개성에 보문사를 지었습니다. 숭선사는 기와못에 연꽃 형태의 화려한 장식의 금동제가 사용되는 등 우리나라에서 가장 호화스러웠던 왕실사찰입니다.”

- 문화재와 연을 맺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요.

“대학(단국대)에서 한국미술사를 전공하면서 막연했던 꿈이 점차 현실화됐죠. 대학 1학년 때인 1968년 여름 은사이신 호불 정영호 선생님의 지도로 경남 사천의 패총발굴조사에 참여했는데 땅속에서 청동기 신석기시대 유물들이 나오는 것을 보고 감탄했죠. 신비 그 자체였습니다.”

- 대학교 발굴조사는 어떻게 이뤄졌나요.

“답사를 많이 했는데 봄가을의 정기답사와 여름방학에는 발굴조사를 했는데 저는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어요. 지표조사라는 말도 당시 단국대학에서 처음 사용했을 겁니다. 예전에는 높은 탑이나 성벽 높이를 확인하려면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그 일을 도맡아 했죠.”

- ‘박물관 맨’이라고 소개 하셨는데 박물관과의 인연은?

“대학에서 시간이 나는 데로 틈틈이 박물관 일을 하게 됐어요. 깨진 유물을 접합하고, 실측과 도면을 작정하는 일을 하면서 자연히 유물을 많이 보게 됐고, 박물관이 친숙해졌죠.”

- 졸업 후 고향인 충주에서 교편을 잡으셨죠.

“1970년대 사우디 등 중동에 건설 붐이 일어나면서 교사들이 부족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충주북여중 역사 선생님이 중동으로 가는 바람에 고교입시 필수 과목인 역사를 가르칠 교사가 없었는데 당시 최영희 교장선생님께서 역사를 맡아달라고 몇 번이고 찾아오는 바람에 몸담게 됐지요. 그때 아내(김경인·63·시인)를 만났어요.”
충주에서 40년 동안 무용교사로 학생을 지도한 김경인씨(2016년 정년퇴임)는 충주예총회장과 ‘BPW’(전문직여성 한국연맹)충주회장, 전국부회장으로 활동했다. 장 원장 부부는 충주시민대상 1호와 3호를, 황조근정훈장을 각각 수상해 화제를 모았다. 아내가 자신보다 예술 활동을 활발히 했다고 귀뜸하는 장 원장에게 회사원인 진영(39)·진호(32) 두 아들이 있다.

- 어떻게 중학교에 박물관을 설립하게 됐나요.

“교사 재직 중에 한국미술사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보존에 대한 열망이 더욱 높아졌어요. 학교 내에 충주 최초의 박물관을 설립하고, 문화재 연구 모임인 ‘예성동호회’를 만들어 활동하면서 ‘충주고구려비’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 국보 205호 ‘충주고구려비’ 하면 장준식과 예성동우회 회원들이죠?

“강원도 진전사를 조사하면서 기와를 많이 봐왔는데 기와는 시대를 파악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거든요. 기와에 관심이 많았던 유창종(73·유금와당박물관장) 당시 충주지청 검사를 만나면서 김예식 중원군 문화공보실장(2007년 작고)과 신경외과 의사이자 충주향토학자로 활동한 김풍식(2003년 작고) 박사가 모여 예성문화연구회(엣 예성동우회)를 만들었어요. 1979년 2월 24일 회원들과 의정부지청으로 떠나는 유 검사 ‘송별 답사’를 나섰는데 충주시 가금면 탑평리 7층석탑(중앙탑·국보 6호) 부근을 답사하다 입석마을에서 글자가 심하게 마모된 비석 하나를 발견했어요. 그게 충주고구려비 였습니다.”
올해로 창립 40주년 맞은 예성문화연구회는 그동안 중원문화권 기초조사사업을 시작으로 충주댐 수몰지구 유적조사와 중원문화 학술대회를 마련하는 등 충주지역 향토문화 발굴·조사·연구에서 독보적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까지 회지 ‘예성문화’ 38호를 발간했고, 올 40주년 발자취를 담은 책 ‘예성’을 펴냈다. 1978년 9월5일 발족한 예성동호회는 1996년 1월 예성문화연구회로 이름을 바꿨고, 2004년 11월 사단법인으로 등록 했다.

- 내년에는 충주고구려비가 발견된 지 40년이 됩니다.

“올해 단양신라적성비 발견 40주년 기념 학술포럼을 개최해 단양신라적성비를 재조명 했듯이 충주고구려비 뿐만 아니라 중원문화권을 새롭게 정립하고 재조명하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해 나갈 계획입니다. 그리고 지금 가시화되고 있는 국립충주박물관이 건립되면 충주고구려비를 박물관으로 이전하는 작업을 추진해야 합니다.”

- 충주박물관은 언제쯤 보게 될까요.

“많은 분들이 노력하고 있어 희망적입니다. 최근 국회에서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용역비 3억원이 반영돼 토지매입, 설계 등을 거쳐 빠르면 7~8년 이면 가능하다고 봐요.”

- 원장으로 일한 지난 3년 동안 성과가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옥천 의료기기 산업단지 부지인 옥천군 옥천읍 서대리 산 50-5번지 일대에서 7세기 무렵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시대 ‘산상군사도로山上軍事道路’ 유적을 찾아냈습니다. 산 정상을 따라 만든 도로는 경주 쪽에서 일부가 확인 됐지만 다른 지역에서 발견되기는 처음입니다. 보은·옥천 방면에서 공주에 이르는 군량 운송로인 웅진도熊津道 일부일 수도 있고, 정상 부근에 직선 도로를 낸 것을 보면 군수물자를 적에게 숨겨 쉽고 빠르게 운송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단한 성과였습니다.”

- 청주테크노폴리스 개발지에서도 많은 유적을 찾아냈지요.

“충북도문화재연구원을 비롯한 중원문화재연구원, 한국선사문화연구원, 호서문화유산연구원 등 충북 4개 기관 공동으로 2015년 3월부터 약 3만3000㎡(1만평)의 면적에서 조사를 벌여 초기 삼국시대의 집터 500기를 발했습니다. 지금까지 청주지역에서는 분묘유적이 많이 발굴됐지만 평지에서 3~4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생활유적이 발굴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청주지역 3~4세기는 마한~백제 초기에 해당하는 시기로,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부여·공주, 익산 등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앞선 시기에 해당한다.

- 이번에 발굴된 문화재는 어떻게 보존하게 됩니까?

“전시관을 건립해 관리하게 됩니다. 전시관은 완공단계에 있는데 취락 유적은 모형을 전시하고, 이전·복원할 유물을 제외한 문화재가 전시·보존 될 것입니다.”
- 청주테크노폴리스 2차 사업부지에 대한 발굴조사도 진행되고 있죠.
“그렇습니다. 청주시 흥덕구 외북동, 송절동, 화계동 일대 175만9186㎡를 조사하고 있는데 1차 때와는 전혀 다른 유물들이 나옵니다. 80~90cm 밖에 안 되는 작은 무덤이 300기정도 나왔습니다. 아마 유골만 이장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내년 4월 발굴조사가 완료되면 좀 더 확인된 내용이 발표될 것입니다.”

- 학생들을 대상으로 고고학 체험교실과 생생문화재교육을 하고 있는데요.

“고고학 체험교실은 갑옷을 만든다든지, 연구원 입구에 있는 모의 발굴장에서 직접 발굴을 체험토록 합니다. 생생문화재교육은 지역의 역사성에 맞는 교육인데요. 예를 들어 화랑촌이 있는 진천에서는 1박2일 동안 활도 제작하고 화랑체험을 하게 하죠. 문화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려는 교육들입니다.”
장 원장은 연구원에서 내세울게 또 있다고 했다. “문화재를 강의할 수 있는 전문 강사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1차로 28명이 11월말에 수료했습니다. 이들은 6개월의 심화과정을 거쳐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게 됩니다.”

- 1993년 창립한 한국·대마선현현창회창립선현현창회는 어떤 활동을 하는지요.

“대마도와 관련된 인물의 공덕을 기리고, 한일간 선린문화교류를 위함입니다. 1986년 대마도로 유배돼 순국한 독립운동가 최익현을 시작으로 신라국사 박제상비, 조선역관순난비(180명 사망), 조선통신사비, 덕혜옹주비, 조선통신사 이이예비, 조선선조공주비, 백제왕인박사비, 조선국역관일행순난추도비, 조선통신사 황윤길비 등 10기를 세웠습니다. 15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 충북도내 지정문화재를 집대성한 ‘충북도 문화재대관’ 편찬 내용이 궁금합니다.

“총 3권으로 구성되는 ‘충북도 문화재대관’은 마지막 Ⅲ권이 12월 말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문화재 각 분야 전문가 26명이 집필진으로 참여한 문화재대관Ⅰ권에는 청주·증평·진천·괴산지역 문화재 292건과 사진 1000여장이 실려 있습니다. Ⅱ권에는 북부권인 충주·단양·제천의 문화재가, Ⅲ권에는 남부권인 보은·옥천·영동의 문화재를 볼 수 있습니다.”

- 그동안 많은 전시를 해왔는데요.

“유물 전시는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알고 가치를 재조명하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개원 10주년 기념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10년의 발자취전’을 비롯해 ‘충청북도문화재대관’ 출판 기념전과 일제강점기(1932년) 충북지역 사회상을 고스란히 담은 기록사진전을 열었습니다. 올해는 ‘다시 보는 충북의 문화재’ 등 4개의 문화유산 사진전을 열어 6900여명이 관람하는 성과를 보였어요.”

- 문화재 대중화를 위한 프로그램이 있는지요.

“발굴 유적지에대한 현장을 공개 하려고 합니다. 시민들이 유적과 유물을 대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야 관심을 끌고 이해도를 높일 수 있잖아요. 유물 전시회도 자주 열고, 내년부터는 인문학 강좌도 열 계획입니다.”

- 내년에는 어떤 사업이 준비돼 있습니까?

“발굴조사는 음성 성본산업단지와 상당산성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청주테크노폴리스도 3차까지 가야 할거같고, 사진전도 오송역에서 할 계획입니다.”
수백 수천 년 숨어있던 유적과 유물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역사의 현장에는 언제나 ‘장준식’이 자리 잡고 있다. 그가 세상에 내놓는 문화유적에서 빛을 발하는 어느 시대의 삶의 모습은 어떤 ‘다큐멘터리’ 보다 감동적이다.
 

글·김홍균 동양일보 이사 / 충청의약뉴스 편집인
 
■장준식 원장은…
*1949년 충주 출생.
*1975년 단국대 사학과졸업
*1998년 단국대 대학원(석사), 문학박사(한국미술사전공)
*1975~1984년 충주북여중 역사교사(충주 최초 박물관설립)
*1984~2014년 충청대 교수(문화재전공)
*1985~2014년 충청대박물관장(전문대학 최초 박물관 설립)
*1987~2014년 충청북도문화재위원
*1989년 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2014년~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장
* 경력 : △호서문화연구회장 △한국기와학회장 △문화재청전문위원 및 감정위원 4회 역임 △충북박물관협회 이사 △한국대학박물관협회 이사 △한국박물관 협회 이사 △한국미술사학회·한국문화사학회 종신회원 △일본 웅본시 일한 문화연구회 명예 회원 △한국·대마선현현창회창립 대마도에 조선통신사비 등 10기의 한국선현 비석건립
* 수상 : 충주시민문화대상(2008), 국무총리표창(2009), 황조근정훈장(2014)
* 저서 : 신라중원경연구(1998), 한국의 문화유산(2003)외 공저 및 논문 100여 편.
* 이메일 : nero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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