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희 논설위원 / 침례신학대 교수

 
김주희/ 논설위원 침례신학대 교수
김주희/ 논설위원 침례신학대 교수

 

(동양일보) 비가 내리고 있다. 가을의 끝자락, 아니 초겨울. 어쩌면 올해 마지막 비일지 모른다고 중얼대 본다. 혼잣말을 하는 건 비가 내리고 마음이 한결 한유해져서 일지 모른다. 마지막,이라고 아쉽게. 내가 나에게 들리도록 소리 내 말을 건네면 마치 엄청나게 좋아하는 것처럼 비가 반갑고 애틋해져온다. 어쩌면 내년이 오기까지 비를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이별을 앞둔 순간 같은 감상어린 애틋함. 세상은 바닷가 마을 같다. 배경이 없이 드넓은 바닷가처럼 가까이 있는 것들만 보일 뿐 먼 데 것들은 내려앉은 구름 덕택에 가려져 있다. 도회지에서 바다를 만나는 건 안개가 옅게 끼거나 비 내리는 이런 날이다. 먼 데 해안까지 가지 않고도 바다의 풍경을 누리는 한 때. 건물같은 풍경들이 안개에 둘러싸여 흐릿해지면, 그 자리는 텅 비어 바닷가 풍경을 닮는 것이다. 비 내리는 날 바다를 생각하는 건 둘 다 물이라는 친연성 때문이기도 한지.

그러면 그리운 이를 떠올린다. 입던 옷에 겉옷만 걸치고 나가 안온한 불빛 아래 뜨거운 찻잔을 두 손으로 모아 잡고 앉아 실없는 얘기에 실없이 웃으며 놀다가 해지면 집으로 돌아가는 단순하고 평화로운 회합. 눈물 콧물 빼는 단내 나는 고단한 이야기들은 말고, 돌아와 틈틈이 순한 우정을 생각하는 그런.

우산을 펼쳐들고 젖지 않으려고 바람 방향에 따라 이리 저리 돌리기도 하면서, 한 쪽 어깨 어딘가가 젖더라도 함께 우산을 받고 걷는 길, 축축하게 비 맞은 몸이 마르면서 김이 오르는 어깨 어디쯤을 보는 일, 물기를 머금어 생기를 띠며 깨끗해지는 풍경을 함께 보는 일도 올 해는 마지막이다. 치장같은 나뭇잎 없이 홀로 굳세게 바람을 맞게 된 나무들, 양육을 마치고 휴식에 들어간 들판, 흐름이 느려진 강물은 가을을 지나 겨울로 가는 길목의 달라진 풍경들이다. 가을의 끝과 겨울의 초입에 이런 느린 쉼으로 숨통을 틔우는 시간이 있다니.

구름이 낮게 내려와 느리게 움직거리는 하늘에서 어째 어린 시절이 떠올랐을까. 어둑한 빛의 기억 때문일까, 조도가 낮은 등잔불 아래 자연 오순도순일 수밖에 없던 시절, 머리가 하얗던 할머니 손등을 만지작 대던 어린 날, 시멘트로 발라놓았던 부뚜막, 불이 빨갛게 방고래로 빨려들어가던 고쿠락, 부엌에서 안방까지 그 때 엄마는 음식을 어떻게 날랐을까, 그 여러 명이 먹는 음식들을 상에 올려서 들었을까. 무럭무럭 자라는 게 내 과업의 전부인 근심없던 어린 날, 할아버지는 때때로 깨끗한 두루마기를 걸치고서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장이나 잔치집에 다녀오기도 하고, 아버지는 손님처럼 어렵기만 하던 그 때. 할머니가 마루에 앉아 물레로 실을 잣는 걸 본 건 어쩌면 전설 속 이야기처럼 현실감이 없는데. 일하는 어른들 곁에서 바늘 귀에 실 꿰어 주는 일 같은 잔심부름이나 하면서 앉고 눕고 근심없던 한 시절. 비오는 날처럼 흐릿한 기억 속에서 여전히 굳건한 풍경처럼 떠오르는. 기억처럼 지금 들판과 나무는 한 시절의 수고를 끝내고 온전히 쉬는 중일까.

올 해는 가을을 길게 누렸다. 옆의 학교에 가는 일정을 만들어서 널따란 교정 여기저기를 걸었다. 나무들이 수려하게 자란 길을 목적없이 걷는 건 책임져야 하는 시간들에서 놓여난 듯 흔연했다. 나무가 많고 통행이 적은 좁은 길은 천천히 아껴가며 걸었다. 내밀했다. 계절이 바뀌면서 여름 내 단일한 초록으로 세상을 채우던 나무들은 각자 숨겨두었던 비의처럼 여러 색들을 내밀었다. 그건 나무의 정체성 선언같았다. 비로소 드러나는 자신의 색들. 나뭇잎의 생에서 가장 휘황한 시절일까, 모두가 푸를 때는 모르던 빛을 자신도 확인하고 남들에게도 보여주는 그런. 잎새의 모양은 다르면서도 똑같이 푸르러야 하는 여름의 법칙을 넘어서서 자신이 낼 수 있는 빛으로 물들어 하늘거리는 찬연한 시간이라니. 햇빛 아래 투명하게 빛나던 색들은 기쁜 환호, 푸름을 마치고 완결로 가는 안도의 한숨같은 것이었을까.

한 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다던 목월 시인의 싯구처럼. 햇살 아래 빛나는 나뭇잎들은 땅에 떨어질 일을 앞 둔 빛나는 시절을 보내는 셈이었을지. 내 인생의 어느 때도 그처럼일까 싶어 나무 밑을 걷다 서다 했다. 계절이 깊어가면서 나뭇잎은 쇠락해갔다. 삶이 어렵다지만 한 쪽에는 시내가 흐르고 다른 쪽은 잘 자란 나무들이 그득한 오솔길을 길을 걷는 날만 같다면 어려울 것도 없을 듯했다. 그토록 현실이며 현실 넘는 시간에는. 들큰하게 감상적인 한 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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