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윤 청주시세정과주무관

이정윤 <청주시세정과주무관>

(동양일보)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날이 있다. 2013년 7월 그날이 나에게는 그런 날이다. 팀원들과 같이 야근하고 밤 12시쯤 퇴근했다. 피곤한 몸을 침대에 묻고 배를 쓰다듬는데 오른쪽 가슴 아래 호두만 한 큰 덩어리가 만져졌다. 이게 뭐지?

설마, 설마 하며 찾아간 병원에서 암이란 진단을 받았다. 가족력도 전혀 없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던 병이라 충격이 컸다.

치료병원을 서울의 한 종합병원으로 정하고 올라갔다. 주치의는 바로 수술 날짜를 잡고 MRI, PET 등 각종 검사를 지시했다. 검사 결과 유방암 3기 말.

생각보다 상태가 좋지 않아 수술을 미루고 항암을 먼저 시작하기로 하고 나는 혈액종양내과로 옮겨져 수술하기로 한 날짜에 첫 항암주사를 맞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 같아 너무나 무서웠다. 중3 아들과 중1 딸을 생각하니 꼭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일었다. 운동만이 살 길이라고, 여태 생활했던 방식을 180도 바꿔서 생활하라고 하는 주위의 충고에 따라 그로부터 6개월 동안 여덟 번의 항암을 맞으며 거의 매일 운동을 했다. 오전엔 구룡산에서 2시간, 저녁엔 퇴근한 남편과 동네 공원을 1시간씩 산책했다.

항암 약의 부작용인지 발가락에 물집이 계속 생겼다. 걷기가 힘들어 산책을 피하고 싶었지만 남편은 소독한 바늘로 물집을 터뜨리고 반창고를 붙여가며 산책을 종용했다.

머리가 다 빠지는 슬픔과 구내염으로 잇몸이 헐고 피가 나는 괴로움과 온몸을 두드려 맞은 듯한 근육통을 겪어내며 6개월간의 항암치료를 잘 마치고 수술 날짜를 잡았다.

그런데 여태 내 몸의 암 덩어리를 없애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꿋꿋하고 씩씩하게 버텨왔던 마음이 수술 날짜를 잡으며 한쪽 가슴을 다 도려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그만 무너지고 말았다.

여자로서의 인생이 끝난 것 같아 며칠 동안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다. 바빴던 직장생활과 고된 육아로 제대로 즐길 수 없었던 나의 삶에 대한 연민과 내 병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그러면서 나의 이 모든 절망이 남편의 탓으로 돌려졌다. 급기야는 아무도 없는 공원 벤치에 앉아 옆에 있는 남편에게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갖은 욕설을 퍼부어대며 꺼이꺼이 목 놓아 울었다. 그렇게 한바탕 눈물의 소동은 카타르시스가 돼 다시 예전의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나는 무사히 수술을 마쳤다.

10여 일의 입원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온 날 나는 샤워가 무척 하고 싶었다. 수술 부위에 방수 테이프를 붙여야 하나 오른팔을 제대로 쓸 수가 없어 무심코 남편에게 도움을 청했다. 남편은 칼자국만 남은 없어진 가슴 위에 방수 테이프를 붙이며 목이 메어 한 마디 한다.

“내... 가슴이... 너... 무... 아... 프...다...”

순간 이 고통이 나만의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면서 나의 불행을 온전히 함께해 온 남편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측은함과 고마움에 목이 메어 조용히 눈물만 흘렀다.

수술 후 어느덧 5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사이 큰 아이는 씩씩하게 자라 군 입대를 했고 딸아이는 올해 수능시험을 치렀다. 난 복직해 다시 예전의 직원들과 함께 일하는 소중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세상 나쁜 경험은 없다는 말처럼 나의 투병생활은, 가끔 재발과 전이의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는 없지만, 아침에 눈뜨면 오늘도 살아 있음에 감사할 줄 알게 되는 겸손을 알게 해줬고 삶에 대한,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의 시선을 보내는 도량을 갖게 해줬다.

특히 날 위해 온전히 가슴 아파해주는 남편이라는 소중한 사람이 옆에 있음에 감사한다.

그대가 곁에 있어 나는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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