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산남중학교 반지아 주무관

(동양일보) 우리 주위에는 유난히 실수가 많은 사람이 꼭 한명씩은 있다. 그것이 공적이든 사적이든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은 본인이 저지른 실수를 수습해야하기에 실수가 없는 사람보다 삶이 버거워 보인다. 그나마도 수습이 되는 실수면 다행이다. 수습이 되지 않는 실수는 두고두고 누군가의 기억과 어딘가의 기록으로 남아 그 사람을 졸졸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그렇게 충분히 스스로 괴로워함에도 불구하고 실수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반복되는 실수에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도 얼마나 답답할지를 알기에 무턱대고 이해해달라고는 할 면목도 없지만, 가끔은 ‘넌 정말 대책이 없다’ 와 같은 평생 상처로 남을 수도 있는 말과, 경멸하는듯한 시선을 마주 할 때면 실수의 의미를 너무 사전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 번 두 번 아니 무한 반복하여 조심해도 실수는 일어난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말하듯 살면서 실수 한번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이렇게 실수에 대해 관용을 베풀지 못하는 걸까?

배변훈련중인 아이가 이불에 실수를 하면 세상이 무너질 듯 한숨을 쉬고, 수능 날 실수 몇 개로 원하는 점수가 안 나와서 대입이 조금 늦어져도, 삶을 살다보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먼저 그 길을 걸어왔기에 잘 알면서도, 학생들의 12년이라는 학창시절동안 그렇게 실수하면 안 된다고 압박을 하고, 본인들도 수많은 실수와 그로인한 질타, 그리고 절망으로 오르고 올라 그 자리에 있으면서 똑같은 절차를 밟고 있는 아래 직원을 이해하지 못하고 똑같은 절망을 안겨주고.

그래서 우리는 늘 스스로 힘을 내야한다. 스스로를 다독이고 위로하며 또 다시 벌어지는 실수에 차디찬 무시를 당해도 찬란하게 펼쳐질 우리의 앞날을 두고 삶의 마지막 발자국을 허공으로 내딛지 않도록.

나는 실수가 아주 많은 사람 중의 한명으로서 우리 사회가 조금은 실수에 관대해지길 기대한다. 우리는 고의로 실수하지 않으니까. 실수가 벌어진 것을 깨닫는 순간 잠자리에 누워 이불킥을 하며 온갖 자책과 후회를 하며 하얗게 밤을 지새우는 것도 당신이 아닌 바로 우리니까. 당신의 답답한 마음을 용암처럼 분출하기 전에 한번만 참아주면 우리는 깎이고 깎여 당신들이 바라는 제 자리를 찾을 기회를 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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